[Review] 이 세상이 무대이자 광장이라면, 연극 [보도지침]

글 입력 2016.04.03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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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지침2.jpg
 

  수현재씨어터에서 연극 <보도지침>을 보고 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속시원하면서도  복잡한 마음을 들게 하는 연극은 오랜만이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스포가 들어있으니 주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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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보도지침>이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5공화국 시절 언론을 통제하는 수단이었던 보도지침에 대한 재판장 속 법정 드라마라는 것은 이미 모두 알고 있지만 연극은 보도지침에게만 비판세례를 날리고 있지 않습니다. 모두의 과거와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모두가 각자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누구 하나 비판할 수 많은 없는 딜레마가 있다는 게 연극이 보여주려는 메세지에 가깝습니다.

    재판에는 판사와 원고 측과 피고 측, 즉 검사와 변호사와 피고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건의 정황을 설명해줄 많은 증인들도 이들의 재판을 뒷받침해줍니다.이 재판은 신기한 점이 크게 두 가지 있습니다. 우선 이 재판은  관객들에게도 배심원이라는 캐릭터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또 현실과는 거리가 있겠지만 재판에 참여하는 이들이 모두 대학교 때부터 연극부로 이어진 사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재판 속의 그들의 발언은 젊은 날 그들의 발언과 행동과도 대조됩니다.

  관객 중 한 사람인 저는 그다지 공명정대한 배심원은 못되었습니다.  어떤 편견도 갖지 않도록 정의의 여신인 디케의 눈은 가려져 있다고 하는데 저의 눈은 제가 보고 싶은대로 보는데 충실했으니까요. 이미 연극을 보기 전부터 검사는 언론을 통제하는 국가의 하수인에 불과하고 변호인과 언론인은 시대에 투쟁했던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선악구도를 머리 속에 두고 있었고, 변호인과 검사에게 각각 박수를 쳐주는 경쟁구도에서 저는 괜히 힘을 실어주고 싶어서 변호인 쪽에 잔뜩 박수를 쳐줬습니다. (참 우스운 일이죠) 

 실제로 제가 일명 '보도지침' 사건과 연관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제가 그렇게 열심히 힘을 실어줄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기에  연극을 보면서  많이 공감되었던 인물들은 바로 마음과 다른 행동을 해야 했던 세 사람-증인들, 검사, 그리고 판사-입니다. 우선 증인들에게는 검사와 언론통제를 하는 국가만큼이나 피고인 김주언 기자와 변호사 모두가 나쁜 사람입니다. 보도지침을 처음 발견했을 때  김주혁 기자는 같이 일하는 직원을 통해 보도지침을 얻고 이를 '독백'이라는 월간지에 내면서 직원에게 '법이 보호를 해 줄 것이니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합니다. 법으로 증인이 보호받는 것은 맞지만 피해가 가지 않게하겠다는 것은  안일한 생각이었습니다. 직원이 아무리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말하고 싶어도 그녀는 보이지 않는 협박과 고초에 질려 진실을 말할 수 없었으니까요.


베르톨트_베르히트.png
 

  검사와 판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연극부 시절 등장인물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검사 최돈결과 변호사 황승욱, 월간 '독백'의 발행인 김정배, 사회부 기자인 김주혁 그리고 판사 송원달 이들 모두는 같은 대학교 연극부의 동기 혹은 선후배사이입니다. "연극은 시대정신!"이라는 구호를 몸소 익히면서 친해졌지만 그들은 당시 금기시되던 사회주의권 국가 동독의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갈릴레오의 생애>라는 연극 작품을 올리면서 고문을 받게 됩니다. 갈릴레오가 부조리한 절대 권력에 저항하고자 한 멋진 지성인의 모습이었던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사회주의 국가 동독과 관련되었다는 것이니까요.  

  당시 연극부 출신이었던 교수이자 학과장이었던 송원달 덕분에 그들의 고문은 깊게 들어가지 않고  마무리되었고 그 사건이 각자에게 중요한 가치를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최돈결은 정의를, 황승욱은 진실을, 김정배는 마음의 소리를, 놀랍게도  김주혁은  무엇을 좇겠다 말도 하지 못하고 쥐죽은듯이 지냈습니다. 어쩌면 아무말도 하지 않았던 김주혁이 훗날 기자가 되어  '정의'롭지 못한 국가라는 '진실'을 만나고 나서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따라 보도지침을 폭로한 일이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검사 최돈결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재판에서 친구였던 황승욱, 김정배, 김주혁이 농담인듯 장난인듯 던지는 말들에는 옛날 자신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요. 한 때 그는 정부 없는 언론이 언론 없는 정부보다 낫다고 열심히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그는 정의를 찾는다고 검사가 되었고 자신도 말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친구들의 맞은 편에 서서 강제성을 가진 '보도지침'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선택하게 하는 '보도협조사항'이라고 주장해야 합니다. 재판을 이기기 위해서는 진실에 혼란을 주기 위한 비열한 트릭도 마다하지 않고, 국가의 이미지와 안보를 위해서  고위 관료층의 부조리와 부정의를 덮어주면서  국민들이 꼭 알지 않아도 되는 사실이라서 굳이 알리지 않았다는 궤변을 늘어놓아야 합니다. 그도 알고 있습니다. 재판장 변호인과 맞은 편에 위치한 그 자리는 '인간' 최돈결의 자리가 아니라 '검사' 최돈결이라는 가면을 써야 하는 무대라는 것을요.

   시간이 지나면서 가장 괴롭고 가장 이해가 잘 가는 마지막 등장인물은 판사 송원달입니다. 그는 부조리할 수도 있는 절대권력과 자신의 소신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가 명망있는 교수였기에 그나마 무릎 한 번 꿇는 것으로 제자들의 고문을 멈출 수 있었고, 이번 재판에서도 판사라는 명예로운 자리에 있기에 양쪽의 입장을 조율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갖고 그가 내린 판결은 애매합니다. 애당초 너무나 큰 문제를 개인 한 사람에게 맡기는 것도 무리인 것 같지만 국가 대 국민이라는 엄청난 재판에서 많지도 적지도 않은 벌을 주면서 그는 비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유죄라는 건지, 무죄라는 건지 누가 잘못이 있다는 건지 모두가 그를 몰아세웁니다. 

  공연의 서두 부분에서 판사는  허례허식을 버리고 양쪽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해보자고, 이 재판장을 연극무대이자 광장인 것으로 치고 하고싶은 말을 가득하자는 멋진 말을 남깁니다.  그마저도 거리를 줄이지 못하고 허례허식을 버리지 못했고, 재판은 시원시원하게 자기 말을 하고 애매하게 끝나버리지만 그래도 그의 말은 맞는 것 같습니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누가 옳고 그르고 확실히 알 수 없더라도 재판장이 무대이자 광장이었고 그 기록이 남아있었던 것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 곳곳이 무대이자 광장이 된다면 좋을텐데요.


-이 글은 문화의 생산자와 소비자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는 ARTinsight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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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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