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보도지침'은 단순 과거의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멀티걸의 “그분” 목소리 연기가 최고였다.-스포주의!
글 입력 2016.04.03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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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공연명 : 연극 <보도지침>
일시 : 2016년 3월 26일 토요일 ~ 6월 19일 일요일
장소 : 대학로 수현재씨어터
관람 시간: 110분
관람 연령 : 만 13세 이상
티켓가 : 전석 5만원
예매 : 인터파크 (1544-1555, www.interpark.com)
       예스24 (1544-6399, ticket.yes24.com)
기획/제작 : ㈜엘에스엠컴퍼니
운영/홍보마케팅 : 벨라뮤즈㈜



 (이 리뷰 글에는 의도치 않은 스포일러가 넘치니 주의하세요.)



연극 <보도지침>은 제 5공 시절 매일 아침 언론사들에게 은밀하게 시달되던 보도 지침과 그 재판 과정을 새롭게 각색한 법정드라마다. 당시의 보도 지침은 언론에 대한 정부의 통제방식으로, 기사 작성 시 어떤 내용으로 어느 면 어느 위치에 싣고 어떤 제목을 써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지시했던 것이다. 이를 견디다 못한 몇몇 언론인들은 뜻을 모아 월간지 <말>에 보도지침을 폭로하고, 이로 인해 재판에 서게 되고 결국은 실형을 구형 받는다. 크고 작게 각색과 변형을 거쳤지만, 언론계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되던 권력의 하부구조와 소통, 성장의 과정은 그 어느 작품보다 사실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무대는 피고인석과 검사석, 변호인석, 그리고 재판장으로 법정을 구성하며 연극이 시작된다. 공연 중 휴대전화에 관련한 에티켓을 지켜달라는 안내 멘트가 끝나자마자 한 관객이 일어나 무대 위의 두 기자 사진을 찍어 널리 알려달라고 말한다. ‘이게 뭐지?’ 싶은 순간, 연극이 시작됨을 알게 되었고 100분이 넘는 공연 내내 몰입하는 나를 발견했다. 순수하면서도 뜨거웠던 대학시절 연극반 동아리에서 함께 했던 네 친구가 수 년 후 각자의 위치에서 대립하고 있다. 매일 아침 언론사의 팩스로 전달되는 보도 지침을 폭로하며 국민들의 “진정한” 알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울부짖는 피고인 김주혁 기자와 김정배 편집장, 그들을 변호하는 황승욱 변호사가 있다. 최돈결 검사는 그들의 반대편에서 명분과 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그들의 연극반 선배이자 최연소 학과장인 판사 송원달은 자신이 겪었던 고문을 후배들이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힘 없는 약자들이 세상을 쉽게 바꿀 수 없다는 “어쩔 수 없는 균형”을 알려주기 위해서 네 주인공과 갈등한다. 무엇보다 연극 <보도지침>은 한마디의 대사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전개된다. 조명의 밝기, 배우들의 목소리 톤 등으로 넌지시 알 수 있다. 여기서 멀티맨과 멀티걸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웃음 요소를 이끄는 인물이기도 하고, 뼈 있는 말을 간단하지만 강력하게 내던진다. (무엇보다 멀티걸의 “그분” 목소리 연기가 최고였다.-스포주의!)





어떻게 보면 용감했고, 또,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바로, 지금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참으로 다양하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더 넓은 차원에서 서로 다른 집단 간의 합의와 연대가 필요할 정도다. 끈끈한 연대체계에서 활발히 의사소통을 이루어야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사회 문제에 대한 합의점을 보다 더 쉽게 찾을 것이다. 다가오는 재작년의 그날을 앓고만 있을 순 없다. 국가-국민 간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국민은 정부에 대한 불신만 남아있다. ‘헬조선’이니 ‘이민이 답’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다만, 더욱 소통이 단절되는 사회가 되고 국민은 절망에 빠져 자책하고, 국익은 더 이상의 국익이라 할 수 없고 권력을 가진 소수의 이익이 될 뿐이다. 이 시리고 격렬한 고통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더 단단하게 모여야 한다. 그리고 하나의 큰 목소리를 외쳐야 한다. 정부가 그 목소리 마저 ‘나 몰라라’하고 도망간다면 물러설 자리가 정말 없을 것이다. 소통할 통로가 막혀 참으로 답답하다. 더 큰 국가적 위기가 닥친다 했을 때 서로의 힘을 모으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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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다양한 개인들이 모여 문제가 일어났다면 다양한 개인들이 뭉쳐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독립적인 개인들이 서로 결사하고, 이성을 통해 사유한다면 국가가 개인에게 행사하는 폭력에 서로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문화적인 공통분모를 기반으로 서로의 ‘다름’을 이용해 더 많은 절차를 걸쳐 하나의 보편적인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고 하버마스는 주장했고, 그 예로 대화와 타협, 그리고 토론을 들었다. 그는 구조적으로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꾸준한 대화를 통한 상호교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며, 하나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최적의 수단으로 의사소통 합리성을 가리킨 것이다. 잘못되어가고 있는 무언가에 대해 무관심만을 표한다거나, 무조건적으로 저항만 한다면 불합리한 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 상호이해와 비판정신을 가져야 비로소 건전한 사회를 만날 수 있다.
 
연극 <보도지침>에서 여러 번 외치는 “연극은 시대의 거울이다.”는 말처럼 말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연극은 존재해왔다.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표현으로 삶의 애환과 시대 정신을 무대에서 표출해왔다. 연극은 당대 국민들이 가져야 할 비판의식을 비추면서, 동시에 우리 개개인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런 의미에서 “당연하지 않은 일을 당연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입니다.” 라고 말하는 연극 <보도지침>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거울과도 같다. 그리고, 시대의 거울인 연극 안에 독백이 있다. “진실을 담은 말은 힘이 있어. 가장 진실한 말, 마음의 소리를 독백이라 불러.” 연극에서 가장 진실한 말인 독백은 정부가 ‘이 기사는 된다, 저 기사는 안된다.’ 지침 내리던 시절 언론인들의 용기 있는 고발과 같다. 며칠 전,우연한 기회로 전북일보 김난곤 사장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기사는 진실과 균형이 생명이라고 생각했어요.
올바른 방향이나 비평도 그 바탕에서 이루어져야 하니까요.
그런 정신을 지키려고 노력했어요.
독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와 가치를 담는 것이어야 하는가를 늘 고민했지요.” 




연극 <보도지침>은 언론의 자유를 위해 노력했던 이들을 잊지 않도록 만들어졌다.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비판의 목소리로 많은 언론인들이 곤욕을 치른다. 그럼에도 언론은 분명한 비판의식이 있어야하고, 권력과 대칭 관계에 서서 옳은 것을 견인해야 한다. 과거 우리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연극 <보도지침>은 단순 과거의 일이 아니다.  





이 글은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의 문화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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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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