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빛을 따라 걷는, '모네, 빛을 그리다' 전시

글 입력 2016.04.02 14:5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PNG
 

   날이 꿀렁꿀렁했다. 이상하게도 전시나 공연을 보러 가는 날이면 날씨가 스산해진다. 친구와 함께 용산역에 내려 모네전 장소인 전쟁기념관으로 향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살짝 무거운 공기, 희끗한 하늘, 그리고 덩달아 센치해지는 기분은 나 자신을 전시 관람하기 딱 좋은 상태로 만들어 준다고. 비오지 않을까 정도만 걱정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다만 곳곳에 보이는 모네의 그림,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맑고 푸르른 하늘을 보며 저 하늘이 오늘 날씨 같았으면 정말 아름다웠을 것이란 생각이 조금 들었다.


 2.PNG

 
   매표소 인근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주말이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줄을 서서 표를 받아야만 했다. 그렇게 표를 받고 나니 드디어 모네의 작품을 큰 스크린과 아름다운 음악으로 만나볼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아마 이 곳을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도 모네를 마주할 기대에 설레이고 있겠지. 함께 온 친구와 들떠서 전시장으로 내려갔다.
 
   전쟁기념관 한 켠 지하에 마련된 전시장이었는데, 이 곳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스케일을 자랑하고 있었다. 머리 위로 한참 올라가는 천장 높이, 길고 넓게 퍼진공간, 그리고 그 벽을 쭉 따라서 둘러있는 큰 스크린. 스크린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빛이 비쳤다. 관람객들은 하나의 큰 물결을 이으며 모네의 세계 사이를 거닐고 흘러가는 중이었다. 나도 조심스레 그 흐름에 합류했다.

 
3.PNG


   모네 전시의 구성은 크게 다섯 파트로 구성되어 있었다. 모네가 캐리커쳐를 그리며 유명해졌던 초반, 본격적으로 빛을 담아내기 시작한 1860년대 즈음, 인상주의가 시작되고 모네의 화풍이 발전된 1870~80년대 시기, 지베르니에 정착하여 연작 시리즈를 그린 무렵, 마지막으로 오직 수련을 그리는 데에 몰두했던 모네의 황혼기. 그리고 중간중간 스페셜 파트를 만들어 모네의 삶을 가까이 들여다보고 작품을 심층적으로 관람할 수 있는 곳들을 마련해 놓았다.
 
   전시장 입구 부분에는 첫 번째 파트인 ‘이해의 시작’이 전시되고 있었다. 모네가 성장한 과정과 화가로써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모습, 그리고 외젠 부댕과의 만남을 통해 본격적으로 그림에 집중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스크린 속에서 움직이는 영상을 통해 캐리커쳐가 그려지는 과정을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었고, 완성된 후에 보여지는 캐리커쳐의 위트있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모네가 초반에 이런 그림을 그렸다고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모네의 새로운 면을 발견한 것 같아 즐거웠다.
 
   그 다음 파트는 두 번째 파트로, ‘영혼의 이끌림’이었는데, 부제는 ‘나의 친구, 나의 연인, 나의 색채’였다.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모네가 미술 공부를 시작하고 르누아르, 시슬레 등의 거장을 만나며 인상주의의 기반을 닦기 시작한 때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세잔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모네는 단지 하나의 눈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얼마나 대단한 눈인가!’
 
   빛을 머금은 자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자 했던 모네를 정말 잘 표현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전시관에서는 모네의 화풍으로 담아낸 아름다운 자연과 풍경의 모습을 장르별로 관람할 수 있었다. 점점 화풍이 자리잡아가는 그림들을 하나의 흐름 속에서 감상했다.

 
4.PNG

 
   개인적으로 모네의 작품 중 양산을 든 여인을 정말 좋아한다. 그 작품도 전시관 내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부드럽게 부는 바람, 바람에 맞추어 흔들리는 풀잎들, 우아한 몸짓으로 양산을 들고 있는 모습이 입체적인 느낌으로 내 앞에 다가왔다. 디지털 기법을 통해 재해석한 전시는 이번이 두 번째이지만, 정말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다. 기존의 전시 형식보다 흥미롭고, 집중도 더 잘되는 느낌이다. 하나의 3D 영화를 관람하는 것과도 비슷했다.

 
5.PNG

 
   세 번째 파트, ‘인상의 순간’에서는 모네의 유명한 작품인 ‘인상, 해돋이’로부터 본격적인 인상주의 사조의 시작을 엿볼 수 있다. 태양이 아침 안개를 뚫고 떠오르는 느낌을 강렬한 주황색으로 표현하면서 붉은빛의 하늘과 푸른 바다를 절묘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재현하는 대상을 명확하게 보여내는 것이 아니라, 느슨하고 고르지 못한 거친 붓질, 그리고 빠른 터치로 나타내는 특유의 화풍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그림은 기존의 예술적인 관습들을 타파하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세간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모네와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은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그대로 담아내고자 하며, 진실 그대로를 표현하는 그림을 꿋꿋하게 그려내었다.
 
   모네가 보았던 아름다운 빛의 풍경과 그림자들의 표현 및 형태, 그 속에 담긴 의미와 생각이 부드러운 음악과 함께 전해졌다.
 
   그리고 이어서 전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두 번째 스페셜 파트, ‘자연의 거울 : 수면 위의 수련’을 관람하게 되었다. 이 부분은 실제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된 것과 같은 모습으로 전시관을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마치 수면이 움직이는 듯한 아름다운 터치, 은은히 비치며 번지는 수면 위의 빛과 그 빛을 받아 수면과 어우러지는 수련은 볼 때마다 감탄을 뱉게 만든다. 모네는 수련 ‘대장식화’를 비롯하여 크기와 주제가 다양한 여러 작품들을 그리는 데에 집중했으며, 이 과정에서 모네의 작품은 점점 더 크고 길어졌고 그 어떤 한계조차도 벗어버리게 된다. 수련을 이해하기까지 수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는 모네. 모네가 큰 화폭에 담아낸 것은 마치 신비롭고 아름다운 꿈 속의 세계 같았다.
 

6.PNG
 

   마치 동굴처럼 이리저리 이어지는 전시관을 따라 걸으면 자연스레 그 다음 장소에 도착한다. 전시의 네 번째 파트인 ‘비밀의 정원’에서는 모네가 파리 근교의 지베르니로 이사한 후, 일본식 정원을 가꾸게 된 때를 설명해 준다. 이 곳에서 모네는 무려 43년 동안 연못과 정원을 만들고 가꾸는 데에 열정을 가지고 임한다. 말하자면 영감의 원천이 된 장소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앞서 보고 온 수련 대작을 그리는 데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시기였다.
 
   네 번째 파트에서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장치가 있었다. 모네의 연못을 재현해놓은 듯한 부분이 바닥에 있었는데, 프로젝터를 통해 바닥에 투사되는 형식이라고 해도 상당히 특이했다. 연못 부근으로 발이나 손을 올리면 그 움직임을 인식하고 물결이 흔들렸다. 모네의 연못은 이런 느낌이었을까 상상하며 손을 움직여보았다.
 
   다섯 번째 파트, ‘모네의 빛 : 지금 그리고 영원까지’에서는 현대미술에 많은 영향력을 끼친 모네의 작품들을 만나며, 모네가 오직 수련을 그리는 데에 집중했던 시기로 당시에 그렸던 여러 연작을 살펴볼 수 있었다. 중앙에서 퍼지는 부드러운 음악과 그에 맞춰 흘러가는 여러 연작은 마치 개별적인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긴 작품을 관람하듯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푸른 빛임에도 이상하게 따듯한 느낌이 감돌았다.
 

캡처.PNG


   전시 끝 무렵 전체 전시의 마지막 챕터와 더불어서 세 번째의 스페셜 파트를 통해 루앙 대성당 연작을 관람했다. 입체적인 조형물 위에 3D 맵핑기법을 적용하여 시간에 따른 다양한 빛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성당 벽면의 색채 톤의 변화와 대기의 변화가 은은히 이어지며 모네가 바라본 빛의 변화를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기회였다.
  
   전시를 다 보고 나와서 하늘을 보자 여즉 어두운 풍경을 펼치고 있었다. 전시에서 본 모네의 아름다운 푸른 하늘을 그 위로 겹쳐보았다. 물 고인 웅덩이는 모네가 찬란한 빛의 반사로 담아낸 연못이 되었다. 긴 시간을 건너, 앞으로도 다시없을 찬란한 풍경을 우리에게 전해준 모네. 색과 빛에 대한 모네의 진실된 시야는 세상을 더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창을 열어 준 것이었다.




[신은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30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