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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빈집



랭보의 시를 읽고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있다. 
랭보의 우울함을 가늠할 수 없어 깊은 탄신과 함께
들숨과 날숨 사이사이가 소름끼쳤던 적이 있다. 

그 뒤로 나는 랭보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기형도의 시를 접하고 또 한번 소름이 돋았다.

혹시 우울이 사람이라면 그와 같을까.
그 우울이 글을 쓴다면 그의 시와 같을까.

 우울이 짙어저 까마득한 공허함이 되면 
그 탁한디 탁한 공기들이 숨을 뱉어내 
그의 것과 같은 글을 쓰겠다.

기형도 시인은 슬프지만 일상적이지 않고
먹먹하지만 차마 다가갈 수 없는
그런 날카롭고 짙은 우울을 쓴다.
 


곰곰이 내 어두움을 생각한다, 어디선가 길다란 연기들이 날아와
희미한 언덕을 만든다, 빠짐없이 되살아나는 
내 젊은 날의 저녁들 때문이다.

한때 절망이 내 삶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그 절망의 내용조차 잊어버린 지금
나는 내 삶의 일부분도 알지 못한다.

기형도/10월



나는 그의 시를 읽으며
내면의 바라보는 법을 배운다.

아주 날카롭고 아주 여린 것들을 일깨우는 방법을 배운다.

그의 시는 나에게 사색이라기보단 
동질감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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