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광기의 사랑 혹은 욕망의 유령[시각예술]

글 입력 2016.03.2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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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령이 살 법한 집은 언제나 우리에게 온갖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이 작품, <크림슨 픽> 또한 그런 상상력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유령의 집을 테마로 한 만큼 분위기가 매우 음산하다.

 사실 크림슨 픽 저택이 나오기 전인 이디스가 어머니의 유령을 만나는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그 분위기가 잡히기 시작된다. 하지만 본격적인 시작은 이디스가 샤프 남매를 따라 크림슨 픽 저택으로 이사오면서부터이다. 크림슨 픽 저택은 등장부터 심상치 않다. 저택 천장은 뚫려있어 눈과 먼지가 쉬지않고 떨어지며 저택 밑은 붉은 액체성 광물로 가득차 있다. 내부는 낡아 삐걱거리며 저택은 수시로 기괴한 소리를 뿜어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저택의 미로 같은 구조이다. 저택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 만큼 크림슨 픽 저택은 영화 내내 배경으로 사용되지만 이 저택의 정확한 구조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미지의 것에 대한 불안감이 이디스와 관객들이 가장 공포를 느끼게 되는 요소가 된다.


 이 정도 레벨의 유령의 집에서 유령을 못 본다는 게 신기하지만 애초에 유령보는소녀였던 이디스는 바로 당일 유령을 느낀다. 여기서 생기는 의문점은 유령들이 왜 이디스에게 점진적으로 다가서는가 라는 것이다. 영화를 다 본 우리는 유령들이 이디스에게 경고를 하고자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분명 이디스에게 겁을 줘서 쫓아내려는 것이였다는 것을 어머니 유령이 이디스에게 다짜고짜 꺼지라고 소리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유령을 좀 봐온 이디스는 거기에 겁을 먹지 않고 오히려 사건을 파헤친다. 이에 놀란 유령들은 합심해 이디스에게 계속 힌트를 건네기 시작한다. 이 힌트에 힘입어 이디스는 사건을 완전히 알아낼 수가 있었다. 이렇게 보면 유령들은 사건해결의 도우미이며 따라서 추리영화로서의 극의 재미를 위해 점진적으로 이디스에게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또한 호러영화에서의 직접적 공포요소로도 작용하기 때문에 호러영화로서의 극의 재미를 위해서도 점진적인 접근밖에 허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유령이라는 소재로 두 가지 장르의 매력을 담아낸 이 영화는 아주 영리했다.


 유령은 이렇게 좋은 소재로도 쓰였지만 이 영화에서 중요한 상징적 역할 또한 수행한다. 사실 이 영화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 것들이 많이 등장한다. 우선 저택 안의 벽난로만 봐도 우리는 그것이 등장인물들의 감정 상태를 나타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토마스와 이디스가 사랑을 나눌 때, 루실이 앨런을 찌를 때 그리고 루실이 분노와 질투심으로 토마스를 찌를 때 또한 벽난로가 유난히 강하게 타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저택 밑에 있는 붉은 액체 광물이 피를 상징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일단 짚고 넘어가며 무너져가는 집은 <어셔가의 몰락>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그럼 이 영화의 핵심 소재인 유령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바로 흔적으로서의 상징이다. 흔히 한국의 귀신들은 한을 품어 이승에 남았다고 한다. 이들은 억울한 감정의 흔적을 남기려고 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의 잊을 수 없는 감정에 대한 상징이 바로 유령인 것이다.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 억울하게 죽은 여인들의 한, 못다 이룬 사랑의 감정까지 이 영화에서는 그들 각자의 유령으로 표현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유령에게서 공포를 느끼기보다는 그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징성을 가장 잘 표현한 장면이 바로 영화의 마지막 신이다. 이 장면에서 이디스의 나레이션은 감정은 절대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피아노를 치는 루실의 유령이 화면에 비춰진다. 참으로 친절한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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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 유령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이 영화를 한 여자가 유령의 집에서 겪는 호러스토리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 영화는 누가 뭐라해도 사랑 이야기다. 물론 그 사랑이 많이 뒤틀려있기는 하다.

 이 영화에서는 두 가지의 사랑이 주를 이루는데 첫번째 사랑인 이디스와 토마스의 사랑도 시작은 뒤틀려있었다. 영화 후반부에야 밝혀지는 것이지만 토마스는 이디스의 재산을 목적으로 이디스에게 접근하고 사랑하는 척을 했던 것이였다. 하지만 토마스는 이디스와 계속 지내다보며 이디스에게서 그 전의 여자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고 결국 진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디스의 이 '다름'은 아마 그 시대에 맞지않은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상이였을거라 추정된다. 토마스가 이런 신여성상에 끌리게 되는 것 또한 다 이유가 있다. 샤프 남매의 어머니는 남편에게는 학대를 당하면서도 반항하지 못하고 어린 자식들에게 그 화풀이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모습을 보며 자랐으니 순종적인 여성상에 대한 반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누나인 루실 또한 자신이 처한 위험을 처리해가는 적극적인 모습(물론 매우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적극적이다)을 보여주며 자신을 구했기에 더욱 그 모습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여기서 두번째 사랑인 루실과 토마스의 사랑이 등장한다. 사실 둘은 남매지간이라 어쩌면 사랑한다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다르다. 앞서 말했듯이 토마스는 구원자이기도 한 루실에게 사랑까지는 아니여도 남매이상의 무언가를 느꼈을 것이다. 이디스가 밤마다 깨어났을 때 토마스가 잠자리에 거의 없었던 걸로 보아 매일같이 루실을 찾아가 같이 잠자리를 했을 것이다. 특히 루실의 사랑은 확실히 광적인 부분이 있다. 토마스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이 강하며 자신이 재워주고 키워준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모성애까지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런게 자신이 낳은 아이를 가차없이 죽여버리는 것으로 보아 이미 모성애를 토마스에게 쏟아부은 것이 확실하다.

 이 두 사랑의 주인공인 토마스는 결국 이디스와의 사랑을 택하게 되고 비극은 여기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디스만 죽고 끝났을 이 이야기는 파국으로 치달아 결국 이디스만 살아남게 된다. 권선징악의 냄새가 살짝 나긴하지만 이야기는 루실의 광기에 힘입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광기의 사랑은 결국 욕망만 남아 유령으로 남게 되었다. 


[권중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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