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스봉은 이름이 뭐예요 [시각예술]

글 입력 2016.03.16 11: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 미스봉 나이스! "
 
 
영화 베테랑은 지난 해 관객 수 천 삼백만명을 기록하며 역대 한국 영화 관객 수 3위를 기록하였다. 형사 서도철(황정민)과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의 대립구도를 중심 축으로 하는 전형적인 오락영화로서 배우들의 연기 호흡과 팽팽하면서도 유쾌한 연출이 더해져 큰 인기를 몬 것으로 생각된다.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존재감을 드러내는 여자 캐릭터는 미스봉(장윤주)이다. 미스봉은 형사로서 다른 남자형사들 못지않게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해내지만 이럴 때 마다 시종일관 돌아오는 대사는 “미스봉 나이스!”일 뿐이다. 
 
 
 
영화를 보며 한바탕 웃고 극장을 나오는 길에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그래서 미스봉은 이름이 뭐지? 영화 속에서 언급이 되었는데 내가 놓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인터넷에 검색해보았지만 배우 장윤주는 미스봉 역이라고 되어있을 뿐이었다. 영화에 활기를 더하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의미를 가진 감독의 장치였을지는 모르겠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나에게는 왜 미스봉은 이름이 없는지, 아니면 적어도 윤형사, 오팀장과 같이 O형사라는 직책으로라도 불리지 않고 “미스봉”이라고 불려야 하는지에 대해 어딘가 찝찝함이 남았다.
 
 
 
 
 
 
noname01.jpg
 
 

누군가는 이 작은 부분을 가지고 베테랑을 성차별적인 영화로 정의하는 것은 비약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지나칠 수 있는 작은 부분인 동시에 넘겨버리기엔 중요한 문제이다. 문화 콘텐츠는 시대의 문화를 반영하지만 동시에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일부 집단에 대한 차별적인 담론을 깨뜨리는 데에 이바지하는 것도 문화 콘텐츠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남성 중심적 영화에 대한 반성의 일환으로 미국의 여성 만화가 엘리슨 벡델은 벡델테스트라는 영화 성평등 테스트를 고안하였다. 벡델테스트를 통과하려면 1. 이름을 가진 여자가 두 명 이상 나와야 하고, 2. 이들이 서로 대화해야 하며, 3. 대화 내용에 남자와 관련된 것이 아닌 다른 내용이 있어야 한다.(참조 : 네이버 지식백과) 스웨덴은 이미 2012년 이후 이 테스트를 영화산업에 도입해 모든 영화에 이 기준을 적용시키고 있다. 기준이 너무 단순하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를 통해 평등에 대해 사람들이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참조 : 씨네 21 1043호) 벡델 테스트 이후에도 영화의 성평등 정도를 계량하기 위한 다양한 기준의 테스트들이 고안되었다. 마코 모리 테스트, 섹시 램프 테스트가 그 일례이며 성소수자에 대한 평등한 시선을 부여하는가에 따른 루소테스트도 고안되었다. (참조 : https://en.wikipedia.org/wiki/Bechdel_test) 
 
 
 
 앞서 말한 베테랑은 물론 벡델테스트의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다. 하지만 한국의 다른 흥행 영화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매거진 M에서 통계조사를 해본 결과, 2015년 흥행 영화 22편 중 8편만이 벡델테스트에 통과하였다. 또한 이 도식화된 테스트를 고사하고라도, 대부분의 국내 흥행영화에서 여성 캐릭터의 역할은 미미하며 그 미미한 역할마저도 소녀, 요부, 어머니 등의 정형화된 인물이라는 점도 아쉬움을 남긴다. 
 
  
 
10개벡델테스트.jpg
 
 벡델테스트도 한계와 비판의 여지가 많음은 사실이다. 벡델테스트의 3가지 기준을 통과했다고 해서 성평등한 인식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라고 단정할 수 없으며, 반대로 여성 캐릭터에 대해 주체적으로 묘사한 영화임에도 이 테스트에서 탈락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테스트만으로는 여성 캐릭터의 주체성, 중요도 등을 확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누군가는 예술, 이 경우에는 가상현실인 영화가 왜 그러한 의무를 지녀야 하는지 그 자체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나 역시 이 벡델테스트가 절대적인 지표가 될 수 없으며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또한 아직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도 양성평등을 실현시켰다고 말하기에 한참 뒤떨어진 마당에 영화에만 그러한 기준을 강요하는 것이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되어질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문화예술, 특히 국민의 4분의 1이 관람하는 흥행영화는 사람들의 인식의 생산과 재생산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이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과 성찰의 시선, 그리고 대화들이 오고가는 것이 더 좋은 사회로 가기 위한 작은 실천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박지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5.01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