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교실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책장에 꽂힌 얇은 두께의 자서전을 한두 권 쯤 읽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내 머릿속에 가장 선명히 남아있는 자서전에 대한 기억은 초등학생  때 유관순 열사의 자서전을 읽은 일이다. 그 책은 처음으로 내게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이미지를 심어주었으며 내가 한국사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렇듯 누군가의 인생은 그것이 길었든 짧았든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더 나아가서는 인생을 변화시킬 만한 큰 울림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한 사람의 인생은 그것이 실화든 픽션이든 문화예술의 소재로 꾸준히 등장해왔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작품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유관순 열사나 아인슈타인처럼 어떤 업적을 세웠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고 이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대단한 업적을 세우지 못한 사람의 인생은 문화예술의 주제로서 가치가 없는가? 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내놓은 특별한 영화가 하나 있다.





 2006년에 제작된 나카시마 테츠야의 작품인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카와지리 마츠코라는 여자의 일생을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마츠코가 죽기 전까지도 그녀의 존재를 몰랐던 조카 쇼라는 인물이 고모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가는 방식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마츠코의 인생은 한 마디로 기구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53년 일생을 2시간의 러닝타임으로 줄였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파란만장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그녀의 인생은 평범한 구석이 없었다. 
  

noname05.jpg▲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이미치 캡쳐 발췌
 

 어린 시절 마츠코는 몸이 약한 여동생 때문에 아버지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자랐다. 그래도 아버지를 사랑했기에 아버지가 원하는 교사가 되었지만 절도 혐의로 교직을 박탈당하고 집을 나와 가족하고도 연을 끊었다. 이후 그녀는 많은 남자들을 사랑했지만 결국 그네들에게 모두 버림받았고 화류계에 종사하기도 했으며 사람을 죽여 8년을 감옥에서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사랑에 배신당하고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그녀는 수년 간 은둔생활을 하다가 어처구니없이 살해를 당해 생을 마감한다. 

  
 영화 속 마츠코를 두고 어떤 이는 바보 같은 선택 때문에 평생을 망쳤다고 말할 것이다. 다른 이는 마츠코같은 사람도 있는데 내 인생은 이 정도면 괜찮다며 스스로를 위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의 끝머리에서 내 머릿속에 맴돌았던 생각은 마츠코의 삶에 대한 평가도, 마츠코의 삶을 통한 자기위로도 아닌 한 가지 의문이었다.

“왜 마츠코여야만 했을까?”





'마츠코의 인생에서 나를 찾다’

noname04.jpg▲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이미치 캡쳐 발췌


 쇼는 주로 마츠코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녀의 삶에 대해 듣게 되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사와무라 메구미이다. 교도소에서 만난 친구이자 마츠코에 대해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인 그녀는 쇼에게 그런 말을 한다. 
 
 “너 마츠코랑 닮았어.”
 과연 쇼가 마츠코의 조카라는 이유만으로 닮았다는 것일까?


 마츠코의 인생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을 살면서 절대 겪지 않을 일들로 가득찬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하지만 마츠코가 살아온 삶의 질곡은 다를지언정 그녀가 느꼈던 감정들은 쇼는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인 쇼와 같은 사람이 있듯이 마츠코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마츠코는 작가 지망생인 테츠야나, 오카노, 미용사 청년, 그리고 류와 사랑을 나눌 땐 행복해했고, 노래를 흥얼거렸으며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었다. 하지만 그 이상이 좌절되었을 때, 그녀는 절망했고 세상을 향해 울부짖었고, 무기력해졌으며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다. 영화 속의 쇼처럼 말이다. 


 우리 모두는 꿈을 가지고 있고 때로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하기도 하며 때로는 세상으로부터 버려졌다는 생각에 좌절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마츠코는 대단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사람이지만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영화 전반에 걸쳐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마츠코의 모습에서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고, 그녀와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메구미가 한 말은 마치 우리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너 마츠코랑 닮았어."





'마츠코의 인생에 담긴 가치' 
 
"사람의 가치는 무엇을 받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주었느냐로 결정된다."
쇼의 전 여자 친구가 쇼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마츠코가 이 말을 들었다면 그녀의 인생이 조금 달라졌을까? 저 말대로라면 마츠코의 가치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높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는 누군가에게 받기 보다는 주는 것이 익숙한 여자였다. 
 

noname03.jpg▲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이미치 캡쳐 발췌

 
 마츠코가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남자였던 야쿠자 류 요이치는 마츠코와 동거를 하는 동안 그녀를 폭행하고, 야쿠자 일에 이용했다. 그럼에도 마츠코는 그를 사랑했기에 류가 교도소에서 형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홀로 남겨지는 것이었다.
 이후 다시 교도소로 들어가 무미건조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류는 ‘신은 사랑이십니다.’ 라는 문구에 왠지 모를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신부님에게 그 말의 뜻을 묻는다.

 그러자 신부님은 이렇게 말한다. 
“용서할 수 없는 자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신이다.”
 
 훗날, 류는 쇼를 찾아가 이렇게 말한다. 
“마츠코는 나의 신이었다.”

 마츠코는 사람을 사랑했다. 그것이 누가 되었든, 자신에게 어떤 행동을 하든 자신이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믿었다. 그럴수록 마츠코의 몸과 마음은 병들고 너덜너덜해질 뿐이었지만 상대를 미워하지 않았으며, 사랑해주기 바빴던 사람이었다. 


noname02.jpg▲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이미치 캡쳐 발췌


 영화가 끝이 날 때쯤, 마츠코가 53년의 시간을 살면서 화류계에서 만났던 사람들, 교도소에서 만났던 사람들, 사랑했던 남자들이 마츠코가 좋아했던 노래를 차례차례 부르는 모습이 등장한다. 그들에게 마츠코의 노래가 어렴풋이, 그리고 아련하게 남아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마츠코가 준 사랑 때문이 아니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살았다'는 것의 척도로 삼는 업적, 부, 명예와 같은 측면에서 마츠코의 인생은 볼품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을 주었느냐'와 '얼마나 인간적이었느냐'로 그녀의 삶이 지닌 가치를 따져본다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마츠코의 일생은 별 볼 일 없어보였지만 별 볼 일 있었던 것이다.

 



 마츠코를 멍청하고 현명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 나 역시 동감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츠코의 인생은 우리네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마음 속에 잔잔한 울림을 주었다. 또한 일생에 거쳐 많은 사람들을 사랑했고, 보듬었고, 그래서 그들의 마음 한 구석에 노래로, 신으로 자리 잡았기때문에 충분히 가치가 있는 삶이었다. 


 문화예술이 어떤 이의 인생을 담아내야한다면 반드시 업적을 이룬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존경을 받는 인물이 아니어도 좋고, 대단한 부를 쌓은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마음의 잔잔한 공감과 잔물결을 일으키는 사람의 인생이라면, 그 나름대로의 가슴 먹먹한 가치를 지닌 사람의 인생이라면 문화예술의 주제로서 훌륭하지 않을까. 마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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