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들개, 폭탄을 품은 청춘 [시각예술]

글 입력 2016.02.24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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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볼 계획이 있으신 분은 보고 난 뒤 읽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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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출발을 앞둔 2월, 청춘들은 낯선 환경에 던져질 채비를 시작한다. 단순히 대학교 1학년 학생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방학의 끝자락에 서 있는 모든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매일같이 낯선 환경을 맞이하는 이십 대, 그리고 더 나아가 모든 청춘들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우리 모든 청춘들은, 매 순간 마주하게 되는 낯선 환경에 적응을 해야만 하니깐 말이다.

동주의 박정민, 미생의 변요한. 각자의 작품 속에서 1900년대의 청춘과, 2000년대의 청춘을 대변한 두 인물은 매 순간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또 맞서기도 하는 우리의 모습들을 그려나간다. 그리고 두 배우가 함께 만난 영화 들개, 그들은 다시금 새로운 시작선 위에서 청춘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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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정구(왼, 변요한)와 효민(오, 박정민), 두 인물의 관계로 인해 시작된다. 심리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정구라는 인물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는데, 그 시선 속으로 나타난 낯선 효민의 등장은 생기가 넘쳐 흐른다. 사제폭탄 제조자지만 평범한 대학원생인척 현실에 녹아드려는 정구의 모습이 반쯤 꺼져가는 생명력 같았다면, 자신의 모습을 자유자재로 그려나가는 효민은 끊임없이 타오르는 커다란 불씨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사회 앞에서 두 인물의 태도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데, 어떻게든 현실에 적응하려는 정구는 송곳니를 숨기며 고개를 숙이지만, 효민은 끝까지 송곳니를 드러내는 선택을 한다. 효민은 ‘사회부적응자’라는 낙인 앞에서 들개처럼 싸우기를 결정한 것. 하지만 정구는 살기 위해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품 안에서 폭탄을 꺼내는 효민을 폭파 현장 한 가운데로 밀어 넣는다. 자신이 사제폭탄 제조자임을 아는 효민이 끝까지 들개이기를 선택한다면, 정구는 자신이 생존할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 둘의 미묘하고도 안쓰러웠던 관계는 효민의 죽음으로 인해 끝이 난다. 마지막 폭발과 함께, 관객의 머릿속을 실컷 헤집어 놓으며 말이다. 하지만 세상을 향한 효민의 발악은 끝까지 남아있었다. 그것이 옳았던 옳지 않았던 말이다. 그래서 나는, 모두가 집중했던 정구가 아닌 효민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우리 모든 청춘들이, 정구처럼 끝까지 숨겨야 했던 마음 속의 폭탄과 들개를 대신하여 마음껏 세상에 드러내 준 효민의 이야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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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

모든 것이 가능할 것이라며, 언제나 희망차야 했던 청춘들을 대신하여 정구는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고 외친다. 너무 부정적인 것일까. 언제나 희망찬 메시지를 마음 속에 품고 살아야 한다 믿었던 나는, 효민에게 어떠한 반박도 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라는 문구가 휘갈겨져 있던 벽 앞에서, 모두가 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인정하기 싫음에도, 효민이 그 말을 한 이유에 공감 또한 할 수 밖에 없었기에. 

혹여나 누군가가 나타나 불가능에서 ‘불’이란 단어를 지워주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가져봤지만, 끝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쩌면 그 문구가 실현이 된 걸지도 모르게 효민은 불가능과 함께 눈을 감았고, 그 외침은 사그라들었다. 잠시 뿐이었지만, 그럼에도 효민은 억눌린 청춘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높여 주었다.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는, 억척스러운 고집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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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목표는 ‘사망신고’

참 독하다 싶을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사망신고’가 목표라던 효민의 말. 몸소 실천한 첫 번째 계획은 지문을 없애는 것이었고, 그 행동 안에는 그가 목표를 이루어내겠다는 질긴 고집 같은 게 담겨있었다. 어떠한 환경이 도대체 그런 목표를 쫓게 만든 것일까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그가 악에 받쳐 부리는 객기 같은 것이 아님은 명확히 전달되고 있었기에 그 의문은 머릿속에서 잠재울 수 밖에 없었다. 적어도 나에겐 그런 목표가 타당해 보였고, 우습겠지만 어딘가 한 편에 숨어 그를 응원하며 목표를 이루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었다. 그래서일까, 끝까지 정구의 인생을 망치려는 것처럼 보이던 악착 같은 효민의 행동에서 측은함과 절실함이 더욱 느껴졌던 걸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억누르면서까지 세상에 소속되기 싫었던 효민의 발악이었지만, 그 행동과 다짐 안에는 수많은 위로가 필요했을 지도 모르기에, 그 선택에 어떠한 비난도 할 수 없던 이유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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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좋았다고 할 수 있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대학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구와 효민이 바라보는 세상을 비슷한 나이에, 비슷한 경험에서 바라보고 있었기에 그들의 말과 행동, 생각에 더욱 공감하려 들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얼마나 좆같이 살았는데!’라며 절규하는 정구에게 어떠한 위로도 건넬 수 없었지만, 그 말을 나 또한 그대로 읊고 싶었다. 나는 결코 폭탄을 터뜨릴 용기가 없었고 그들의 행위가 사회에서 보듬어 줄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들이 못되고 나쁜 인간이라고는 끝내 말할 수 없었다. 대학생과 대학원생, 청소년과 사회인 사이의 어정쩡한 인물 둘이 보여준 어떠한 묘한 감정은, 결국에 나의 내면에서 충돌하고 있는 두 가지 이면이 아닌가 싶었다.

결국에 영화 속에서, 효민이라는 이면은 죽었고 현실에 순응하려는 정구의 이면만이 남았다. 이를 드러낸 채 죽은 효민이 진정한 들개였을까, 이를 숨긴 채 현실로 돌아온 정구가 진정한 들개였을까. 들개이기를 선택한 효민이지만, 그럼에도 진정한 ‘들개’의 의미 앞에서 어떠한 확신도 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정구와 효민을 통해 우리의 내면 속에 숨겨진 들개를 보듬어 주는 것일 테니 말이다.
 


 
[고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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