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성의 욕망 혹은 개인의 욕망 [문학]

글 입력 2016.02.24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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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로 매년 3월 첫 주는 여성에 관한 이슈들로 미디어가 뜨겁게 달궈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여성인권에 대한 다양한 견해, 미국 뉴욕에서 진행된 대규모 거리행진과 같은 캠페인 혹은 행사가 열리고 보도되었다. 그런데 그뿐이다. 여성인권문제는 유행성 이슈로 3월이 지나가면 더는 뜨겁게 논의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21세기 현재에도 여성의 문제는 홀대받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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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마담 보바리』가 출판된 1857년 프랑스의 분위기는 역동적이었다. 사회정치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이것은 곧 문학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자유의 체제 아래 문학은 아무런 제한 없이 다루어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마담 보바리』는 대중적이고 종교적인 윤리와 미풍양속에 대한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법정에 출두하는 사건을 겪고, 프랑스에 그렇게 부도덕한 여자가 어디에 있느냐는 비난을 받았다. 이렇게 부정적 인식을 받기도 했지만 『마담 보바리』는 보바리 부인의 슬픔, 권태와 비참함을 통해 19세기 여성의 상황을 표현함으로써 당시 여성들의 공감을 얻기도 했다. 『마담 보바리』는 페미니즘적 요소를 지닌 작품인 동시에 억압된 여성의 이미지가 다분히 묻어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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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드릭 콜롬의 『Nordic Gods and Heroes』에서 이둔은 청춘의 여신이자 신들의 젊음을 유지시켜주는 사과나무를 관장하는 일을 한다. 그녀는 로키의 꾀임에 넘어가 납치를 당하게 되고 신들은 사과를 먹지 못해 늙어가게 된다. 이 에피소드는 여성은 아름답고 동시에 무지한 존재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두고 있으며 독자에게 그 인식을 심어준다. 이러한 신화적 요소가 작품에 녹아들듯 여성의 이미지를 아름다움과 무지로 삼는 것이 『마담 보바리』에서도 잘 드러난다. 보바리 부인은 레옹과 로돌프 등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아름다운 여성이다. 그녀는 더욱 아름다워지기 위해 사치를 일삼고 마침내 파산까지 이르게 되는 무모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이는 보바리 부인이 ‘여성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보편화된 이상을 따르기 위해 사치는 그녀의 입장에서는 필수불가결한 행동이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무모하리만큼 사치를 부리는 그녀의 행동은 독자들로 하여금 공감하기 힘들게 하고 따라서 보바리 부인은 행동에 따른 책임과 결과를 모르는 무지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면모는 작품에서 다른 여성들에게도 보여진다. 보바리 부인이 죽고 그녀의 문상이 치러질 때 하녀 펠리시테는 ‘아직도 저렇게 예쁘시다니! 금세라도 깨어날 것만 같군요!’라고 말한다. 고인에게도 아름다움의 중요성이 적용되는 것이다. 또한, 르프랑수와 부인은 보바리 부인의 사체에서 시꺼먼 액체가 흘러나오자 옷이 더러워 질 것을 걱정한다. 르프랑수와 부인은 자신의 아름다움에 방해가 될까봐 걱정하는 것으로 르프랑수와 부인의 이러한 행동은 문상에서 걸맞지 않기 때문에 경솔하다는 이미지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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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동시에 『마담 보바리』에서 페미니즘적 면모가 드러나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여성을 어떤 역할의 대상이 아닌 개인으로서 묘사한다. 보편적으로 여성은 가정에 충실하고 남편과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의 역할로 그려진다. 즉, 여성은 곧 어머니로 여겨지고 ‘어머니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그런데 보바리 부인은 집안일에 충실하기는커녕 사치에 빠져 전 재산을 날리고 파산에 이르게 하고 딸에게 무심한 어머니이다. 『마담 보바리』에서 보바리 부인은 전형적인 여성의 역할로 묘사되기보다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묘사된다. 수도원 생활에서부터 시작된 그녀의 욕망이 보바리 부인의 핵심적 요소이고 그녀의 부유한 생활과 로맨스에 대한 욕망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보바리 부인이 당데르빌리에 후작댁에 초대받은 뒤 그녀의 욕망은 불이 지펴지게 되었고 그녀의 남편이 성가시게 느껴지고 점차 그녀는 삶에 권태를 느끼기 시작하며 가사를 일체 돌보지 않게 되었다. 또한, 그녀는 자식에 무한한 애정을 쏟는 전형적인 어머니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녀가 딸을 돌보는 장면보다 그녀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더 부각되어 나타난다. 보바리 부인이 로돌프로부터 이별을 통고받은 후 딸을 챙기는 모습이 나타나지만, 이것은 모성애가 아니라 이별을 통고받은 그녀의 아픔을 스스로 달래기 위한 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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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마담 보바리』는 페미니즘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만 한계점이 있다. 보편적인 여성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은 보바리 부인이 마치 벌을 받듯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결말은 개인 혹은 주체로서의 여성은 허락되지 않는다는 점을 의미한다. 보바리 부인은 자살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타인에 의한 죽음이 아닌 본인 스스로 택한 죽음은 보바리 부인이 자신의 행동, 즉 개인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어머니로서의 삶을 살지 않는 것이 잘못되었음을 암묵적으로 시인하는 것을 뜻한다. 뿐만 아니라 보바리 부인이 파산을 맞고 자살을 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여성은 문제해결능력이 없는 무능력한 존재, 행동에 따른 결과를 책임지지 못하는 존재로 재현된다. 또한, 그녀의 죽음 이후에도 주변인들은 평화롭게 살아가는데 이는 보바리 부인의 욕망은 헛된 것임을, 보잘것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류층 마누라들은 그녀의 검소함을, 환자들은 그녀의 예의바름을, 가난한 사람들은 그녀의 자비로움을 칭찬했다. 그러나 그녀는 탐욕과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2011년도에 ‘미스 리플리’라는 드라마가 흥행했다. 이 드라마를 통해서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용어가 사람들 사이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이는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면서 마음속으로 꿈꾸는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반사회적인 인격장애를 뜻한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성공하겠다는 욕망은 끝이 없고 그녀의 이상에 이르기엔 그녀의 현실이 너무나 초라해 끝없이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녀는 거짓사랑으로 남자를 이용하여 승승장구한다. 여성 대통령, 국무총리가 존재하는 21세기는 확실히 『마담 보바리』가 출판되던 1857년에 비해 여성의 권리가 존중된다. 그러나 ‘미스 리플리’와 같은 흥행 드라마를 비추어 보면 여전히 사회 속에서 여성은 제한적인 존재이며 그로 인해 과대망상 혹은 자기 환상을 뜻하는 ‘보바리즘’은 계속해서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마담 보바리』의 페미니즘적 요소와 억압된 여성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내용은 여성의 현실을 보여주며, 19세기의 도서인 『마담 보바리』가 지금까지 중요하게 여겨지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이유이다.

[김미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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