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공연 "겨울나그네", 절절한 이별 심정의 노래들

글 입력 2016.01.30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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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2일 밤 조재은과 백재혁의 슈베르트 <겨울나그네>를 감상했다. 공연은 IBK 챔버홀에서 열렸는데, 예술의 전당에 몇 번 와봤지만 다시 IBK 챔버홀에서 공연을 보게 된 건 몇 년만이었다. 홀 앞에 비치된 책자를 보니 조재혁 피아니스트가 4개의 즉흥곡을 연주할 예정이었다. 

<4개의 즉흥곡 D.899(Op.90)>인데 이 즉흥곡들은 슈베르트 말년의 예술적 경지를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네 곡 모두 ABA의 3부 형식을 취하며 제 3번 Andante(안단테)를 제외하고는 모두 Allegro(알레그로) 계열의 빠르기를 가진다. 이 곡들은 슈베르트가 세상을 뜨기 한 해 전인 1827년에 작곡된 것으로, 생전 출판된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슈베르트가 즉흥곡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니고, 출판사에서 <즉흥곡>이란 표제를 달아 출판된 것이다. 그래서 즉흥연주의 느낌과 동시에 정제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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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66&contents_id=1205) 


사실 <겨울 나그네>처럼 이미지가 떠오르는 제목이 아닌 <즉흥곡>같은 설명식 표제는 클래식을 잘 모르는 나로썬 어떤 방향으로 감상해야할지 감을 잡을 수 없게 만든다. 도중에 슬퍼해야할지 기뻐해야할지, 이 곡이 얼마나 훌륭한 곡인지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가이드가 없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내 감상은 클래식 지식을 바탕으로 한다기 보단, 다분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감상이라고밖에 할 수 있다.

즉흥곡 2번 내림 마장조의 알레그로는 도입부가 나에게 익숙하게 들렸다. 알레그로의 빠르기로 명랑하게 시작되면서도 어느 정도 정제된 느낌을 준다. 음이 하강하는 도입부의 멜로디 진행은 곡이 끝날 때까지 전체를 아우르면서 연주되고, 끝마치는 부분에서는 도입부보다 더 밝은 분위기로 끝맺는다. 그리고 즉흥곡 3번 내림 사장조 곡은 편안하고 안정감 있는 곡이라고 생각했다. 4개의 즉흥곡 중 가장 겨울밤에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개인적으로 서정적인 선율을 좋아해서 그런지 기억에 남는 곡이다. 사실 조재혁 피아니스트의 연주 모습을 보면서 좀 멍해지기도 했는데, 아마도 여유로운 피아노 연주에 긴장이 풀려서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만약 피아노를 매우 잘 친다면 이 즉흥곡들의 연주가 더 즐겁게 들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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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본격적인 <겨울 나그네> 노래가 시작되었다. <겨울 나그네>는 원어의 뜻을 살려 근래에 ‘겨울여행’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프리뷰를 쓸 땐 몰랐던 사실인데 이 작품은 독일 시인 빌헬름 뮐러의 연작시에 곡을 붙인 작품이라고 한다. <겨울 나그네>는 슈베르트의 대표적인 연가곡으로, 연가곡은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완결적 구성체를 가진 가곡 모음이지만, 사실 어떤 일정한 서사가 노래 전체에 줄기를 이루고 있다기보단 짧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는느낌이었다.

<겨울 나그네> 전체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사랑에 실패한 청년이 추운 겨울날 연인의 집 앞에서 이별을 고하고,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들판으로 방랑의 길을 떠난다. 눈과 얼음으로 가득한 추운 들판을 헤매는 청년의 마음은 죽을 것 같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허덕인다. 그리고 어느덧 까마귀, 숙소, 환상, 도깨비불, 백발과 같은 죽음에 대한 상념이 마음 속에 자리잡게 된다. 마지막은 늙은 악사에게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많이 알려진 제 5곡 이나 제 11곡은 잠시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이것은 더 슬프게도 화자의 과거 회상, 꿈에 불과한 것이다. 현실에 대해 좌절감을 느끼거나 죽음에 대한 동경을 노래하는 모습은 당시 가난과 병으로 고통 받고 있던 슈베르트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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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91&contents_id=76459) 


<겨울 나그네>의 곡들은 슬프고 비극적이며 암울한데, 무대 위에 가사가 나와서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가사에는 이별을 겪은 남자의 마음이 절절하게 드러나있다. 연작시에 곡을 붙인 작품이라 그런지 가사가 시적이기도 하고, 읽다보면 쓸쓸한 정경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것 같다. 자연물 하나하나에 자신의 상황을 빗대거나 비교해가며 비극을 느끼는 모습, 슬픔을 못 이기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화자의 모습이 안타깝다. 그리고 그 슬픔을 메조 소프라노의 중저음 목소리가 더해주었다. 가사 하나하나에서 메조 소프라노의 깊은 감정이 묻어나와 더 쓸쓸했던 것 같다. 백재은 메조 소프라노의 표정을 보면 정말로 실연을 당해 비참해하는 인물을 보는 것 같다. 그래서 마치 배우를 보는 듯한 느낌도 받았는데, 그만큼 곡에 몰입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나는 보리수 같이 유명한 곡들도 기억에 남지만 ‘까마귀’를 부른 게 가장 인상 깊었다. 까마귀에게 왜 내 머리 위에서 떠나지 않고 맴도는지 묻고, 자신은 더 걸을 수 없다고 고백하는 내용이다. 정말로 까마귀에게 말을 건네듯이 허공을 쳐다보며 노래했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이별의 상황이 아니라 24곡 내내 감정이입을 할 순 없었지만, 만약 그런 상황이었다면 연가곡을 듣는 내내 매우 절망적이었을 것 같다. 듣는 사람도 그럴텐데 하물며 노래하는 사람은 어떨까. 지금 생각해보면 백재은 메조 소프라노가 오랜 시간을 쉬지 않고 24곡을 노래했다는 게 대단하다. 24곡을 연달아 부르다보니 중간에 힘들어보이기도 했지만, 메조 소프라노가 깊게 몰입하며 절망을 잘 노래한 덕분에 나와 같은 청중들은 감동을 받았고, 큰 박수를 보내주었다.
 
    
[이해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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