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담담하지만 강렬한 재조명 - 연극 '해피투게더'

글 입력 2015.12.28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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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9일 토요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20일까지 상연했던 연극
'해피투게더'를 관람했습니다.



해피투게더_포스터.jpg
 


 '해피투게더'는 한국 현대사의 문제적 사건 중 하나인
1987년의 '형제 복지원' 사건을 재조명한 작품입니다.



'형제 복지원' 사건이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 고아들을 부산에 위치한 형제 복지원에 불법감금하고 강제 노역을 시킨
대표적인 인권 유린사건입니다.
형제 복지원은 약 3천 명을 수용한, 당시 전국에서 가장 큰 부랑인 수용시설이었습니다.
길거리 등에서 발견한 무연고자들을 끌고 가 불법으로 감금하고
강제노역은 물론 구타 등의 학대와 암매장까지 하는 등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습니다.
실제로 형제 복지원의 운영기간인 12년 동안
2014년 3월까지 확인된 사망자만 551명에 달합니다.

형제 복지원 사건은 1987년 수감자 35명이 탈출을 하고 
그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비로소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복지시설에 억울하게 갇혀 각종 폭력과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551명이 사망하고 사체 일부는 해부 실습용으로 매매까지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시 사회는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만행에도 불구하고
박인근 형제복지원 이사장은 7번의 재판 끝에 1989년 3월,
징역 2년 6개월이라는 가벼운 면죄부만을 받고 사건은 금세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원생들에 대한 불법 감금, 폭행, 사망 등에 대해서는 기소조차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연극은 '해피투게더'라는 제목만큼이나 신선한 전개와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로
잠시라도 눈을 뗄 수 없이 몰입하게끔 하는 강한 힘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고 있었습니다.



연극이 시작되면 어둡고 조용한 무대 위로 한 남자가 걸어나옵니다.
남자는 차분히 관객들을 응시하다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죠.

'사랑하는 애인과 함께 길을 가고 있는데,
길거리의 한 부랑자가 내 애인을 음흉하게 쳐다보고 있다면?'

'서울역에서 담배 한 대 잠깐 태우고 싶은데,
한 노숙자가 다가와 구걸을 한다면?'

이라는 질문을 남자는 관객들에게 던집니다.
남자가 이야기하려는 것이 무엇일까, 하며 그의 말에 귀기울이던 관객들은
머지않아 알게 됩니다.

이 남자는 형제 복지원의 원장이며,
그는 지금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변명과 궤변을 늘어놓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웹상세_해피투게더2_700.jpg
 



이렇게 악당이자 가해자인 복지원장을
논리적이고 확신에 가득찬 1인칭 화자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
저에게는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은 보통
그 참혹한 사건에 의해 고통받은 피해자들이나,
혹은 그 사건을 지켜보는 제3자의 시선에 의해 전개되곤 하죠.
하지만 '해피투게더'에서는 가해자인 복지원장의 입장이
극의 시작에서부터 등장하고 있었어요.
이를 필두로 극이 전개되며 피해자들과 주변인들의 객관적 진술이
점차 교차되고 있었습니다.

이는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들이 감상적인 분노와 연민에만 치우치지 않고
주체적으로 성찰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만드는 극적 장치를 제공합니다.
피해자에 대한 감성적 동조와 연민에서 잠시 거리를 둠으로써
사건의 참혹함 자체에 압도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묻고, 따지고, 생각할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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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종선과 누나, 그리고 아버지.
육교에서 구걸하던 아무개 씨.
포항제철에서 근무하던 서상렬 씨,
원양어선을 타던 김민효 씨,
부산 연산동에 살던 이명렬 씨,
취직차 부산에 왔던 한아무개 씨 ....



1980년대 부산의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강제로 경찰에 끌려갑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부산시 북구 주례 2동 산 18번지, 형제복지원이었죠.
사회의 골칫거리인 부랑자와 노숙자, 무연고자 등을 구제한다는 명목 하에
형제복지원에서 자행된 일들은 상상보다 훨씬 잔혹하고 비인간적이었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끌려온 많은 이들이 겪어야만 했던 이 끔찍한 기록들은
배우들의 사실적이고 실감나는 연기를 통해 효과적으로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웹상세_해피투게더2_700.jpg
 



제가 '해피투게더'를 보고 나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바로 마지막 장면이었어요.

복지원장과 원장의 아내는 예수님이 오신 날을 기념해
수감자들에게 먹을 것을 던져주죠.
그리고 곧 하늘에서 눈이 내립니다.
복지원에서의 끔찍한 기억들로 인해 무너질 대로 무너진 수감자들은
흰 눈을 보며 아이처럼 좋아합니다.

복지원장은 수감자들에게 눈싸움을 하자며
있는 힘껏, 죽을 힘을 다해 눈을 던져보라고 말하죠.
수감자들은 원장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며
관객들을 향해 눈을 필사적으로 던져댑니다.
그 모습은 마치 '우리는 아직 여기 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있다'는 소리없는 절규와 같았어요.

하지만 이들이 던진 눈은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코 앞에서 힘없이 떨어집니다.
(연극에서 눈은 흰 종이들로 표현되었어요.)
형제복지원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만행을 지켜본 관객들을 향한, 그리고 사회를 향한
이들의 마지막 몸부림은 결국 절망적으로 스러져갑니다.




복지원장은 말합니다.
자신은 그저 이 땅의 수많은 버림받은 자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주고 싶었다고.
그건 자신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명령이었다고요.

하지만 관객으로서, 그리고 우리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지켜본
형제복지원에서의 수많은 일들은
구원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과 착취, 강제노동, 그리고 살인.
어떻게 하면 이 모든 만행들이
'사회의 골칫덩어리인 수많은 부랑자들은 대대적으로 격리 수용되어야 한다'는 명목만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건지,
저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연극 '해피투게더'는
그 동안 형제 복지원 사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저에게
큰 충격을 주고 각성시켜준 매우 뜻깊은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형제복지원 사건은
그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나오고 있는
현재진행형인,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이라는 점에서
'해피투게더'는 더욱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해피투게더'의 기획 의도로 리뷰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1975년과 1986년 사이, 아무 이유 없이 형제복지원에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 날의 기억들은 결코 추억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들의 몸부림을, 그리고 형제복지원의 진실을 기억하는 것은
결국 남겨진 우리들의 몫임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 취임사에도, 국회의원 당선소감에도, 각부 장관의 취임인사에도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국민 모두가 잘사는 세상, 국민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 만들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외친 ‘해피투게더’가 현실 속에서 실현된 적이 있었을까요?  
<해피투게더>는 그들이 외친 ‘해피투게더’가 과연 누구를 위한 해피투게더였는지, 
진정한 ‘해피투게더’를 위해서는 과연 무엇이 필요한지,
속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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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 형제복지원 사건
연극 '해피투게더' 보도자료





서포터즈6기_양수진.jpg
 



[양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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