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멍 때리기 대회’를 중심으로 본 대한민국 문화트렌드 [문화전반]

space-out competition
글 입력 2015.12.14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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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0월 27일 서울 시청 앞에서 ‘제1회 멍때리기 대회’가 열려 뜨거운 화젯거리가 됐었다. 아무 생각없이 가만히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은어 ′멍때리다′를 대회 이름에 붙인 것은 각박한 도시생활, 우리 자신에게 휴식을 주자는 의미로 기획됐다. 멍때리기 대회(space-out competition)’는 프로젝트 듀오 웁쓰와 저감독(예명)이 만든 도시놀이 개발자 ‘전기호’가 주최하고 황원준 신경정신과의 후원으로 진행됐다. 대회를 기획한 퍼포먼스팀 ‘전기호’는 “빠른 속도와 경쟁사회로 인한 현대인들이 스트레스에서 멀리 떨어지는 체험을 하는 것”이라며 이번 대회의 취지를 설명했다. 현대 사회에서 ‘멍 때림’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가치 없다’고 규정한 것을 가치 있는 일로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다.
 
 
 
 
  ‘멍때리기 대회’의 심사기준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가장 정적인 존재’로 ‘누가 가장 오랫동안 아무 생각 없이 넋을 놓고 있는지’를 겨룬다. 심박수가 가장 안정적으로 나오는 사람이 우승자가 되며, 크게 움직이거나 딴 짓을 하면 실격패를 당한다. 첫 대회 우승자는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김지명 어린이였는데, 평소 하루 6곳의 학원을 다닐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냈던 것으로 알려져서 이 대회의 취지에 가장 잘 부합한다고 이슈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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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대회를 개최한 지 불과 8개월 정도 만에 중국 베이징에 두 번째 대회가 열려 국제 대회 규모로까지 발전했다. 행사 최초 기획자인 우리나라 웁쓰와 저감독이 1회 대회 성공에 자신감을 얻어 중국의 공공미술 예술가 그룹인 부슈메이슈관, 언론 계열사 요이쓰 차이나와 손을 잡으면서 규모가 커지게 된 것이다. 그만큼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을 공감하게 만든 대회였기 때문에 이렇게 회자될 수 있었으며, 앞으로의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이외에도 ‘평평한 가슴대회’, ‘사무실 의자를 타고 누가 빨리 달리는지 겨루는 대회’, ‘여성 겨드랑이 털 콘테스트’ 등 다소 우스꽝스럽고 독특한 시도를 하는 대회나 콘테스트들이 많이 개최되고 있다. 사실 지금 우리가 유명하다고 극찬하면서 배우는 예술 작품이나 역사적으로 굵직한 사건들도 당시에는 이렇게 신선한 충격과 호기심, 거부감 등 여러 감정들과 맞부딪혀왔기에 기록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무기력증, 만성피로, 일 중독, 결정 장애 등 ‘현대인의 만성질환’을 극복하려는 이색 이벤트가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더 응원하는 바이다.
  
 
  ‘멍때리기 대회’의 우승자는 조각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본뜬 ‘조선시대 갓을 쓴 멍 때리는 사람’ 트로피를 받게 된다. ‘멍 때리다’라는 말이 아무 생각 없이 넋을 놓고 있는 상태를 표현할 때 쓰인다는 것을 고려하면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은 그저 역설적인 웃음을 주기 위한 장치쯤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대회에 관심이 많아 자료들을 찾아보는 과정에서 ‘생각하는 사람’은 단순히 ‘역설’과 ‘반전’의 웃음을 터뜨리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생산성이 없다고 여기는 ‘멍때리기’와 가치 있다고 판단되는 ‘생각하기’는 사실 표정이 멍한지, 심각한지로 구분된다. 사색과 멍때리는 행위는 한 끝 차이인데 이 차이로 가치가 전복되었다. 아마 프로젝트 듀오 전기호도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멍때리기 대회 우승상품으로 선정한 이유도 이러할 것이다. 그들의 인터뷰를 보면 멍때리기를 많은 사람이 참여 가능한 페스티벌 등의 형태가 아닌 ‘등수’를 매기는 대회 형태로 개최한 것에 대해서도 “멍때리기는 매우 쓸모없는 행위로 여겨진다. 따라서 쓸모없는 행위에 가치를 불어넣으려 고민하다보니 순위를 매겨 의미를 부여하는 대회형태로 개최하게 됐다” 와 같은 이유를 들어 설명하기 때문이다. 앞서 사색과 멍때리기의 한 끝 차이라는 말을 보면, 사담이지만 내 인생의 모토는 ‘인생은 한 끝 차이’이다. 미술 사조나 공연계의 흐름만 보아도 평론가나 대중의 말 한 마디에 작품의 가치가 뒤바뀌며, 살아가면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사고만 보아도 정말 한 끝 차이로 삶이 전복되는 것을 많이 봐왔기에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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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나도 빨리 변하는 시대, 이미 나올 건 다 나와 새로운 것에 대한 의미가 작아진 시대, 그로 인해 뭘 해도 감흥이 없는 매너리즘에 빠진 이 시대에 이 ‘멍때리기 대회’는 그 취지가 매우 좋다고 할 수 있다. 요즈음 주변 일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소재를 이용하는 것이 트렌드인 만큼 일명 ‘대세’를 잘 따랐으며, 그 결과나 목적이 어떻든 간에 시도 자체는 박수쳐 줄 만하다. 이것이야말로 ‘힐링’이라는 말이 난무하는 시기에 그리고 너무나 많은 것에 의미부여하는 것에 피곤하고 지친 사람들에게 진정한 휴식이 아니었다 싶다. 또한 많은 새로움들 속에서 과거의 것을 새롭게 재해석한 예술 작품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창극, 퓨전 사극 등이 그 예이다. 이는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도 하면서 계속하여 앞으로만 전진하는 인간들에게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반작용인 것 같다. 르네상스, 신고전주의, 인상주의 등 과거 역사와 미술사조만을 살펴보아도 이러한 흐름은 마치 유행처럼 반복되기 때문이다. 패스트푸드가 나오면 다시 슬로우푸드가 강조되고, 초고속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가 나타나며, 그렇게 촌스러워보였던 딱 달라붙는 스키니진이 지금은 일상복인 것처럼 트렌드는 정말 변화무쌍하고 어떻게 다가올지 예측이 불가능한 것 같다.
 
  나는 이러한 ‘멍때리기 대회’와 같은 현상이 앞서 말했듯이 문화예술의 흐름에도 영향 미친다고 생각한다. 너무 거시적인 흐름으로 일반화시켰다고도 볼 수 있지만, 요즘 시대가 이런걸 뭐 어쩌겠나 싶다. 소유와 정기고의 ‘썸(some)’이라는 노래처럼 지금은 그런 듯 아닌 듯 애매모호한 것들 투성이이기에 뭘 갖다 붙여도 다 맞는 것 같고 이상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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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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