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대학로에 대한 단상 - 삐끼덕에 대학로는 삐그덕 삐그덕

대학로 불법호객행위를 말하다
글 입력 2015.12.1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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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 개찰구에서 교통 카드를 찍고 나오는 순간부터, 나는 비장해진다. 여태껏 잘 해왔고, 이번에도 무사히 통과할 것이다. 미간에 힘을 주고 입술을 굳게 앙 다물어 애써 굳은 표정을 짓는다. 이렇게 하면 내게 가까이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출구를 향해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수록 여느 때처럼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오늘은 그냥 조용히 넘어갔으면, 짧은 순간 생각한다. 나보다 앞서서 성큼성큼 계단을 오르고 있는 다른 이들이 나를 위한 방패막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이윽고 지상에 발이 닿자, 바깥 공기보다 나를 먼저 반기는 목소리가 들린다. 매번 다른 목소리이지만 참으로 한결 같다.

“예매 하셨어요?”
 

  
  대한민국에서 ‘연극’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바로 ‘대학로’다. 2011년 기준 국내 연극 시장 매출액의 87%을 차지하고 있는 이 곳엔 100개가 훌쩍 넘는 공연장이 있으며 한 해 동안 500개가 넘는 작품이 상연되었다. 가히 대한민국 연극의 중심이라 할 만 하다. 10여년 전 엄마 손에 이끌려 연극을 보러 자주 왔었던 기억이 꽤 생생하다. 시간이 지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로를 다니고 있는 지금, 꼭 공연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 혜화역으로 자주 간다. 어렸을 적부터 오던 곳이라 친숙한 점도 있고, 온갖 음식점과 카페, 기타 상업시설이 즐비하고 있어 그만큼 선택의 폭도 넓다. 북적북적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이유도 있다.  

  놀러 오든 연극을 보기 위해서든, 내게 대학로는 이따금씩 찾게 되는 친숙한 곳이자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장소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곳에 올 때마다 은근히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이들이 있는데, 속칭 ‘삐끼’라고 불리는 연극 홍보판매원들이다. “공연 보러 오셨어요? 예매는 하셨고요?”, 막을 새도 없이 훅 들어오는 이들을 떨쳐내긴 쉽지 않다. 혼자일 땐 그나마 괜찮다. (혼자 온 줄 다 알고 물어보지도 않긴 하지만) 내 쪽으로 온다 치면 땅에 고개를 푹, 박고 스치듯 지나가면 된다. 하지만 친구와 함께 있을 때면 족히 2,30 미터는 가볍게 에스코트 해주시는데, 그 지극정성에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다. 브로슈어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판매원들 뒷편엔 ‘호객행위는 불법입니다’라는 포스터가 처연하게 서 있다. 그저 아르바이트를 열성적으로 하는 사람이겠거니, 별 생각 없이 지나갔지만 그게 불법이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갈등의 기운이 등 뒤에서 스멀스멀 느껴진다. 



  홍보인가 불법호객행위인가 

  과도한 행동이 눈살을 찌푸리게 할 때도 있지만, 사실 일반인인 내 입장에선 그저 연극을 홍보하는 사람들인 것만 같았다. 사실 홍보하는 게 뭐 그리 나쁜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의구심도 든다. 홍보행위를 ‘불법’이라며 단죄하는 저 포스터가 되려 보수적인 것 같기도 하다. 무엇이 문제가 되고 있고 누가 맞는 걸까. 금요일 오후, 점차 대학로로 사람들이 몰려들 즈음 때 맞춰 모습을 드러낸 판매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홍보하는 분들을 가리켜 ‘삐끼’라고도 하는데, 
이런 시선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실 저희 입장에선 말 그대로 홍보를 하는 것 뿐이에요. 저희가 하는 일도 많은 홍보의 방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고요. 오면서 노란 부스 봤죠?(불법 호객 행위를 반대하는 연극인들이 만든 좋은 공연 안내센터) 사실 저쪽 사람들은 우리 때문에 자기들이 망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거든요. 저쪽도 홍보를 하면 되는 건데 그만한 자본이 없으니까, 그쪽 사정으로 홍보를 못하는 것뿐이죠. 오히려 불법이라고 신고하고 사진 찍는데 그게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꽤 많은 아르바이트생 분들이 이 일을 하고 있는 걸로 보이는데, 특별히 이유가 있나요? 쉬운 일 같지는 않아 보여서요.”

“이유야 뭐, 사람들 만나는게 재밌으니까 하는 거죠. 다른 일에 비해 편하기도 하고. 
그래서 이 일이 잘 맞는 애들은 계속 이것만 해요.”



  티켓 판매원의 입장으로서 그들의 일은 홍보 그 자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를 반대하는 다른 사람들의 입장은 어떨까. 이번엔 ‘좋은 공연 안내센터’라고 쓰인 부스 안에서 공연을 안내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말을 건네 보았다. 호객 행위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어 왔다고 하니, 할 말이 한 두 마디가 아닌지 불쑥 찾아온 사람에게 흔쾌히 안으로 들인다. 단순 공연예술 쪽 관계자인줄로만 알았는데, 그녀가 쓴 각본으로 현재 대학로에서 연극이 상연되고 있으며, 때론 연기까지 맡는 연극인이었다.



“가장 먼저는 첫 인상에 대한 문제에요. 지금 저렇게 불법으로 홍보하는 연극은 하나같이 정말 엉망이에요. ’보기 전엔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가 제 신조라서 몇 번 본적도 있어요. 하지만 연극이라고 하면서 죄다 사람들 웃기려고 말장난만 하는 것뿐이었어요. 또 하루에 4-5회 정도 공연 스케줄이 잡혀요. 보통 공연 한번만 해도 힘든데, 5번이면 말 다했죠. 관객들에게 좋은 연극을 보여 줄 수가 없는 거에요. 대학로에 오는 사람들이 그런 연극들을 보고 ‘뭐야, 대학로 연극 별로잖아.’ 라고 단정지어버려요. 대학로의 첫 인상이 그렇게 굳어지는 거죠.”


“저 같은 경우는 그냥 지나치는 편인데요, 실제로 사람들이 많이 표를 사나요?”

“요즘은 그대로 많이 줄은 편인데,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이 많이 표를 사요. 여러 가지 공연티켓을 파는 척하면서 손님이 자기들 것이 아닌 다른 공연에 관심을 보이면 그거 재미없다, 매진됐다 하면서 다른 공연까지 못 보게 해요. 또 아이들이 있는 가족 단위를 많이 공략하는 편인데, 정말 너무한 건 표를 팔기 위해 아무 공연이나 추천하는 거죠. 아이들이 있는데 야한 농담하는 공연 추천해주고, 나중에 무슨 말 나오면 이걸 애가 알아 듣는다면 그 애가 이상한 거다, 심지어 이런 식으로 얼버무려 버려요. 관객 입장에서도 손해에요. 관객을 보고 살 것 같다 싶으면 가격을 높게 부르고 아니면 그 자리에서 좀 더 깎아서 어떻게든 팔아 먹으려고 하죠.” 

“표 좀 판다 하는 사람은 하루에 80만원어치를 팔아요. 그 판매 수익 중 삼 사십 퍼센트, 30만원 정도를 본인이 가져가는 거구요. 그래서 저렇게 판매하는 사람들이 배우들보다 훨씬 돈을 많이 벌어요. 공연 수익을 분배하는 데 있어 심하게 기형적인 구조인 거죠. 지금 대학로에 저런 삐끼들이 4-50명 정도 있어요. 계산을 해보면 한 달에 약 2억되는 돈이 저 삐끼들이 속한 돈 많은 극단으로 쏠린다고 보면 되요. 사실 여기 대학로의 이렇게 많은 극단들에게 돌아가야 할 돈인데.”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대학로를 둘러싸고 20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이 갈등은 생각보다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대한민국 연극의 자존심, 대학로 연극 문화의 명운이 달린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호객행위는 경범죄처벌법 제3조8항에 따라 1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는 엄연한 불법이다. 그러나 말 그대로 경범죄이고, 신고를 하려면 사기 등의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영상 혹은 녹음 증거를 가지고 직접 경찰에 신고해야 하기 때문에 호객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은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그렇다면 처벌이 강화되면 대학로의 호객 행위가 근절 될 수 있을까? 글쎄, 그보다 더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필요하다.
 
  첫째로는 정당한 홍보 기회가 대학로 모든 극단들에게 공정하게 주어져야 한다. 물론 분명히 연극은 사업이기 이전에 예술이다. 하지만 공연 수익이 누군가에겐 밥줄이며 수익 창출을 통해 탄탄한 공연 자본이 기반이 되어야 공연의 질도 계속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불법호객행위가 문제가 되는 것은 막대한 자본을 마케팅 전략에 수 많은 홍보인력을 투입하고 다른 극단의 공연들을 비하하는 방법으로 관객들을 뺏어오기 때문이다. 보다 더 공정한 경쟁이 연극문화 내에 자리 잡을 수 있어야 한다. 좋은 공연 안내센터의 말을 빌리자면, 현재 연극인들이 할 수 있는 홍보는 많지 않다. 큰 극단은 영향력 있는 평론가를 통해 광고 한번 내면 그만이지만, 작은 극단에겐 기껏해야 포스터를 붙이고 인터넷 카페의 회원들을 초대하는 정도다. 사람들 눈에 잘 띄도록 가로등에 현수막을 걸어 놓는 것도 만만찮은 비용 탓에 엄두도 못 낸다. 실제로 대학로 연극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곳은 길거리에 지저분하게 붙어 있는 몇몇 포스터와 대학로 내 좋은 공연 안내센터를 말고는 거의 없다. 보다 더 폭 넓은 홍보 기회와 효율적이고 공정한 마케팅 수단이 작은 극단들에게도 주어져야 한다. 단순히 포스터나 붙이도록 할 것이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이 필요하다. 도시 미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홍보할 수 있는 공간을 늘리고 홍보를 위한 비용도 절감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인터넷, 스마트폰과 같은 온라인 상의 파급효과가 지대한 만큼, 좀 더 이색적이고 효율적인 마케팅 방법을 개발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물론 이 홍보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은 개별적인 극단의 몫으로만 남길 것이 아니라 공연예술계 전체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또한 불법적인 호객행위를 대학로에 퍼뜨리는 상업주의 대형기획사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솜방망이 처벌보다 대중들의 무관심이다. 불법홍보에 대한 무지하고 미온한 인식을 바꾸는 것도 무엇보다 시급하다. 호객행위가 지금껏 지속되어온 것은 사람들이 그만큼 반응을 보이고 실제로 표를 샀기 때문이다. 그들이 단순히 남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좋은 공연을 볼 수 있는 관객의 권리를 빼앗는 것임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대학로 일대가 상업주의라는 이름의 큰 물살에 수몰되어 옛 도시처럼 사라지기 이전에, 대학로를 찾는 우리가 똑똑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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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1번 출구 인근. 노란색 복장을 한 공연지킴이가 호객행위 근절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는 중에도 인근에서는 판매원들이 공연티켓 판매를 위해 서 있다.
(사진 출처 : 파이낸셜 뉴스 <연극계, 길거리 티켓판매 극성 ' 골치'>)  http://www.fnnews.com/news/201509161725442887




[윤정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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