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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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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치정을 보고 왔다. 제목을 듣고도 나는 크게 심상치 않음을 느끼지 못했다.
 치정? 아… 그렇고 그런 그거? 다 아는 거잖아. 나도 이제 사회의 이면에 그렇고 그런 일이 실재한다는 걸 다 들어서 알고 있지.
 처음에는 15금이었다가 19금 공연으로 바뀌었다던데. 19금이라니까, 그럼 예상 할 수 있는 몇몇 장면이 포함된 건가? 그래도 원래는 15금이었다던데 뭐.. 문제 있겠어? 사회고발적인 내용인가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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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시작은 알아 들을만하다. 마치 롤러코스터가 미친 듯이 돌기 전에 꼭대기로 천천히 올라가듯이.
 연극의 시작은 <자유부인>에 대한 논란으로 시작하는데, 나름 당시 사회상을 뒤집어 까발렸다는 <자유부인>에 대한 논란장면은 그 실제에 비하면 너무나 고고하기까지 하다. 또한 그것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은 뒤에 이어질 수많은 장면에 비하면 순수해 보이기까지 한다. 멋들어진 남녀의 사교댄스 퍼레이드는 눈가리고 아웅 식으로 우리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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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지는 어지러운 장면들을 정신없이 보고 난 소감은 마치 처음 해부학 실습을 끝내고 해부실에서 막 나온 레지던트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이해하기 위해 눈을 똑바로 뜨고는 있지만 좀처럼 알아듣기가 힘들다.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온통 뒤섞여서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구분하기도 힘들다. 여러 관계 속에 내재하고 있는 권력관계, 애정관계가 폭력으로 이어지고 정치관계로 또다시 파생되고, 다시 살인으로 이어지고… 빠른 전개는 나의 이해력을 넘어서서 나중에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들려오는 말들을 그냥 소리로, 하나의 이미지 자체로 이해하기로 했다. 내가 놓치고 있을 수많은 메세지들때문에 억울해서 짜증도 났다.

 중간 중간의 에피소드가 이해되거나, 어떤 유머에 웃음이 터져 나올 때는 나 스스로가 대견하기만 하다.
예쁜 크리스마스 장식들 뒤에 감춰진 관계와 권력의 이면을 모두 낱낱이 펼쳐놓듯 무대 위에는 여러 에피소드들이 펼쳐지고 어느 것 하나 서로 어울려 배치된 것이 없다. 그리고 연극이 진행될수록 각 에피소드들이 벌려놓고 간 소품들은 치워지지도 않은 채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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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또 이것은 사회 고발이 아니다. 이것은 사회 해부다. 왜 해부를 했을까? 고치기 위해서? 아니다. 심지어 이 연극은 사회상을 고발하거나 사회를 고치자 거나 하는 그런 메세지를 던지는 것도 아니다. 그냥 마치 개구리 해부하듯이 사회의 면면을 까발려서 넓은 무대 위에 그냥 널어놓았다. 그런 면에서 이 남산예술센터는 최적화 된 극장이다. 3면이 관객들로 포위된 프로시니엄 무대 형식이기 때문이다. 쌓여가는 부산물들을 치우지도 않는 걸 보면 딱히 나만큼 불쾌하지도 않은가 보다. 보란 듯이 펼쳐 놓은 걸 보면 잊어버리지 말고 더 자세히 보라는 의미 같기도 하다. 온갖 실험적인 장치를 사용하여 스크린에 나름 자세히 설명도 해준다. 

 어떤 목적도 메세지도 없이 그냥 그 실제를 목격한 관객들은 너무나 불편하다. 이것도 진실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더욱 불편하다. 선악의 해석도 없이 어떤 목적도 없이 우리에게 이런 것을 목격하게 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것인가에 대해 마음속으로 이런 저런 꼬투리를 잡으며 극장을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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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은 항상 우리 사회에 벌어지는 감춰진 이면에 대해 이야기한다. 항상 관계와 폭력, 그안의 정치와 치정에 대한 논란은 우리 삶의 또다른 중심이 되어왔고, 그에 관한 많은 입담이 오르내리지만, 그것들이 일어나는 실체를 마주한 적은 별로 없다.
 하지만 치정의 실체, 그로 인한 죽음의 실체를 마주한 사람들은 ‘치정’이나 '죽음'이라는 말 자체가 얼마나 낭만적이며, 그것들의 실체를 얼마나 아름답게 포장해 왔는지 깨닫게 된다. 치정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정치적이다. 
 죽음을 실제로 마주하는 순간에는 그것을 죽음이라는 간단한 말로 그것을 표현하기 어렵다. 오히려 말을 잃게 된다. 이 연극을 본 내가 그랬다. 연극은 치정이라는 말로 멋지게 포장한 진짜 치정의 실체를 무대 위에 벌려놓았다. 연출의 의도가 어떠했든 나에게 이 연극은 치정이라는 말 넘어 진짜 치정을 보여준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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