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3) 변강쇠歌 2015 사람을 찾아서 [시각예술, 아트 스페이스 풀]

글 입력 2015.11.3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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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강쇠歌 2015 사람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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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강쇠歌 2015 사람을 찾아서


일자 : 2015년 11월 12일(목) ~ 12월 13일(일)

시간 : 10:00 ~ 18:00 (월요일휴관)  

장소 : 아트 스페이스 풀 

티켓가격 : 무료

주최 : 아트 스페이스 풀

후원 : 서울문화재단




문의 : 02 396 4805





<상세정보>


묶을 수 없는 비체들
 
안소현(큐레이터)
 
불편할 것이다. 여지없이 불편할 것이다. 영상에서는 리게티(Gyōrgy Ligeti)와 메시앙(Olivier Messiaen)의 장중한 음악을 배경으로 식민지 주민, 징용민, 전쟁포로, 대학살과 참사의 희생자들, 종군위안부들의 이미지들이 한치의 망각도 허용치 않고, 무의식의 밑바닥까지 긁어올릴 기세로, 숨가쁘게 지나간다. 게다가 애달파해도 모자랄 이 이미지들 사이사이에는 뜻밖에도 저속하고 음탕한 내용들로 가득한 판소리계 소설 <변강쇠가(歌)>, 염세적 공상이 가득한 최인훈의 <회색인>, 식인의 기운이 감도는 미야자와 겐지의 <주문이 많은 요리점> 등에서 가져온 기괴하고 음습한 텍스트들이 섞여 불편함을 더한다. 어두운 방안에는 웅숭그린 온갖 여자 두건들이 텅 빈 시선을 던지고, 그 두건들 위로 주홍빛 <노처녀가(歌)>의 선뜩한 문장들이 파고들면 터럭이 쭈뼛거린다.
 
이들에게는 낯설긴 하지만 꽤 적절하게 번역된 말, “비체(abject, 卑體)”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역사적 비극의 희생자들은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은 하나의 사건으로 뭉뚱그려질 뿐 개별적 주체로서의 자리를 상실했고, 적나라한 욕동(欲動)과 잔인한 죽음들을 생생히 담고 있는 텍스트들은 공상과 과장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에서 빗겨난 것들로 치부된다. 따라서 이 말을 정신분석학 및 기호학의 개념으로 만든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의 규정들은 이번 송상희의 전시를 설명하는 데 상당히 유용해 보인다. 비체는 주체도 객체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기피와 매료가 공존하는 것으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밖으로 던져진(ab-ject)”을 의미하는 이 단어의 어원은 걸러낸 역사의 밖으로 밀려나는 송상희의 ‘사람들’을 묶어내기에 절묘해 보인다.
 
그러나 송상희의 비체들이 주는 진짜 불편함은 바로 그런 사변적이고 개념적인 ‘묶음’에 우리가 만족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정신분석학과 기호학이 보편의 학문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며, 라틴계 어원이 무조건 우리에게 무의미한 것도 아니다. 다만 “역겨움의 미학”이니 “탈주체의 사유”니 하는 추상적인 말들에 가두기에는 그 비극들은 너무 가까이 있거나 진행 중이다. 작가는 이 사건들을 지나간 이야기로 정리해버리거나 편안한 호명으로 만족하지 못하도록 장치를 만든다. 역사책에서는 몇 줄로 요약된 사건의 사진들을 굳이 하나하나 눈앞에 늘어놓기도 하고, 직접 희생자들의 얼굴을 그려 그 비극의 장소를 찾아가 영사(映寫)해서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이들을 불러내는 이미지의 초혼을 행한다. 송상희는 역사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인간의 야만의 흔적들을 끌어올려 우리의 감각 앞에 펼쳐놓음으로써 그것들이 추상화되는 것을 방해한다.
 
물론 송상희는 펼쳐놓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한다. 그러나 의외의 방식으로 연결한다. <변강쇠歌2015: 사람을 찾아서>(2015)를 구성하는 4개의 영상들은 걸러진 역사에서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맞물려 있다. 이사벨라 버드(Isabella Bird)의 구한말 조선인에 대한 세밀한 생물학적 묘사와  콜레라균의 현미경 사진은 묘하게 비슷한 배제와 두려움의 시선을 공유한다. 식민지를 찾는 눈은 화성을 더듬는 탐사선의 시선과 닮았다. 태평양 전쟁 당시 오키나와 전투의 민간인 희생자들의 모습에는 2015년 지중해를 떠돌고 있는 난민들이 겹쳐진다. 이런 연결은 역사적 사실관계나 인과관계에 의한 분류가 아니라 인간의 사라지지 않는 야만성으로 인해 생긴 서글픈 인접이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몇 마디 말로 묶어낼 수 없는 비극적 개체들이다.  
 
송상희의 비체들은 개체들이다. 작가가 비체들의 이미지에 날 것의 통속과 비극으로 가득한 <변강쇠가(歌)>의 텍스트를 배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걸러낸 역사가 담아내지 못한 비체들의 개별적인 삶 혹은 죽음은 오히려 과장과 공상으로 가득한 끔찍하고 세세한 묘사로 더 잘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인네의 두건들 위로 작자 미상의 조선 후기 가사의 텍스트가 쏟아지는 <노처녀가(歌)>(2015)에서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역사의 비극의 순간마다 언제나 가장 멀리 밀려나고 희생되는 여성들의 삶에 주목하지만 그것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하지 않는다. 대신 온갖 질곡으로 인해 결혼을 하지 못한 노처녀의 구구절절한 한탄이 조각조각 흩어져 펼쳐지게 한다. 송상희는 비체들을 제각각의 개체로 보고 개체성이 넘쳐나는 텍스트들을 늘어놓는다. 그래서 묶을 수 없는 그 비체들은 망각의 관성을 지분거리고 의식의 침전들을 일깨운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송상희의 비체들의 불편함을 견뎌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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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희, 드로잉-변강쇠歌, 2015, 종이에 오일 크레용,
12점, 각 40x50cm, 50x70cm, 55x85cm, 70x5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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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희, 드로잉-변강쇠歌, 2015, 종이에 오일 크레용,
12점, 각 40x50cm, 50x70cm, 55x85cm, 70x50cm
 

The Story of Byeongangsoe 2015 In Search of the Others.jpg

송상희, 변강쇠歌 2015: 사람을 찾아서, 2015, 4채널 영상,
사운드 및 무빙 스포트라이트 설치, 컬러/사운드, 24분


[나유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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