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생은 꿈, 꿈 같은 인생을 사는 비결

극단 작은신화의 연극
글 입력 2015.11.2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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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작은신화의 연극 <인생은 꿈>
스페인 희곡 특유의 화려한 수사법과 칼 데론의 작품 철학을 생생한 연극으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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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다는 것은 예측불허의 연속이며, 모든 개인은 그 예측할 수 없는 일들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있다. 우리는 TV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을 보면서 예상치 못한 행운이 나에게도 오기를 은연 중에 바란다. 반면 우리는 불행이 닥칠 것을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행운이든 불행이든 갑작스레 나타난 인생의 굴곡 앞에서 우리는 일제히 꿈을 외친다. ‘이건 꿈일거야’ 혹은 ‘이게 꿈은 아니겠지’하고. 연극 인생은 꿈 같은 현실, 현실보다 더 잔인한 꿈을 오가면서 무엇이 진정한 삶인지,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해질녘, 어둠이 드리우고 있는 산을 배경으로 남루한 여행자 차림의 두 사내가 나타난다. 로사우라와 그의 하인 클라린은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던 중 저 멀리 탑으로부터 나오는 희미한 빛에 이끌려 그곳으로 향한다. 탑에 올라가자 두 사람이 맞닥뜨린 것은 다름 아닌 한 죄수의 절규였다.
 
  남자의 사연인즉 보기 드문 기구한 팔자이다. 태어남과 동시에 첩첩 산중 우뚝 솟은 탑에 갇혀 홀로 지낸 지 수십 년, 아는 사람이라곤 이따금씩 그를 찾아와 이런 저런 지식을 알려주며 그를 감시하는 클로탈도 뿐이다. 죄라면 태어난 게 죄, 새들보다 못한 자유를 가진 죄수 세히스문도는 완전한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 누구도 그 죄수의 존재를 알아선 안 되는 것지만, 우연은 운명처럼, 세히스문도가 로사우라를 만나게 하고, 이를 발견한 클로탈도는 로사우라가 자신의 딸임을 알게 된다.

  극의 흐름은 지체할 것이 없다는 듯 빠르게 진행된다. 가련한 세히스문도는 죄수가 아니라 뽈로니아 왕국의 왕자였다. 폭군이 되어 나라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는 예언 때문에, 그의 아버지 바실리오 왕은 아들의 존재를 숨긴 것이다. 세월이 지나 왕은 노쇠하고 왕위를 물려줄 때가 되자, 왕의 사촌인 아스톨포와 에스트레야가 왕좌를 잇기 위해 나타난다. 하지만 왕은 세히스문도의 존재를 온 나라에 밝힌다. 자신이 비천하고 불쌍한 죄수인줄로만 알고 있는 세히스문도에게 진실을 밝히고 그가 정말 나라를 위험에 빠뜨릴 포악한 사람일지 아닐지를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예언대로 세히스문도가 악인이라면, 그를 다시 탑에 가두고 ‘모든 것은 꿈이었다’고 믿게 만들 치밀한 대안까지 세워둔다. 극적인 전개에 따라 극중 인물들의 복잡한 관계가 드러나고 관객의 의식은 분주해진다. 

  하루 아침에 왕자가 된 세히스문도, 자신을 버린 남자(아스톨포)를 다시 찾아와 복수를 다짐하는로사우라, 왕이 되고자 하는 욕망에 연인을 버린 아스톨포, 자신에게 사랑을 다짐하는 아스톨포를 믿지 못하는 에스트레야, 복수심에 불탄 딸과 혼란스러워하는 세히스문도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왕의 충실한 신하 클로탈로, 예언이 두려워 아들을 버린 연약한 왕 바실리오까지, 얽힌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꼬여 있는 인물 간의 갈등 구조는 복잡한 우리네 인생사를 압축적이면서 극적으로 보여준다.

   왕자가 된 세히스문도는 억눌려 있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신하를 창 밖으로 던지는 등 포악한 모습을 보인다. 결국 바실리오 왕은 세히스문도를 다시 감옥에 가두고, 모든 것이 꿈이었다고 믿게 만든다. 절정으로 치닫는 전개 속에서 세히스문도는 꿈과 현실 사이, 절망의 끝에서 절규한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고 했던가. 숨겨진 왕자의 존재를 알게 된 급진적인 백성 세력을 통해 세히스문도는 감옥에서 풀려나고, 꿈인줄로만 알았던 것이 꿈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결국 왕자는 자신을 지지하는 반군 세력과 함께 전쟁을 일으키고 마침내 바실리오 왕과 아스톨포를 제거할 수 있는 기회를 손에 넣게 된다.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기서 상상도 못할 반전적 요소가 나타난다는 것인데,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세히스문도의 선택이 그것이다. 그의 현명한 선택으로 모두가 행복하게 되는, 해피앤딩으로 끝맺는다.

  
  극을 지배하는 메시지는 제목대로 ‘인생은 꿈’이다. 감금된 왕자 세히스문도는 왕자로서의 화려한 삶과 죄수로서의 비참한 삶을 일 순간에 경험하면서 어느 것이 진정한 삶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왕자가 되어 권력을 손에 쥐고 이성을 잃고 억압되어 있던 분노를 거칠게 표출한다. 하지만 다시 감금되어 화려한 삶이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다시 감옥에서 풀려나 진짜 진실에 마주하고도 혹시 이것도 꿈일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움으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제어하기 시작한다. 





“산다는 것은 단지 꿈을 꾸고 있다는
그토록 분명한 세상에 있으니.
살아가고 있는 인간은 깨어날 때까지
현재의 자기를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열정.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환상이자
그림자이며 허상이다.
그리고 최대의 선도 부족하다.
모든 인생이 꿈이며
꿈은 단지 꿈일 따름이다.” 

“내가 잠에 든 것이라면 나를 깨우지 말고
이것이 현실이라면 나를 자게 하지 마라.
그러나 현실이든 꿈이든
중요한 것은 잘 행동하는 것이다.”





  ‘현실이든 꿈이든 중요한 것은 잘 행동하는 것이다’ 라는 대목에서 세히스문도가 모든 인생사는 한낱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깨달음과 내면에 도덕성을 확립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극단적인 허무주의도, 도덕성을 강조하는 교훈도 아니다. 작가의 진짜 메시지는 세히스문도의 마지막 선택에 있다. 무엇이 꿈이고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는 세상에서 나를 규정하는 운명을 뛰어넘어 ‘진정한 나’로 살아가는 비결이 바로 그것이다. 왕이 세히스문도 앞에 항복했을 때, 자신을 평생토록 감금했던 존재를 단번에 처단하고 자신의 왕국을 오롯이 세울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굳게 믿고 있는 예언대로라면 왕의 목은 그 자리에서 떨어져야 했다. 그러나  세히스문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왕에게 맡긴다. 예언과 정 반대로, 아니 예언을 뛰어넘는 선택을 한 것이다. 아버지의 왕위를 위협하고 폭군이 될 거라던 예언, 즉 자신을 규정하는 잔인한 운명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되려 왕의 명예를 다시 세워주고 아버지인 바실리오를 존중하는 결정을 한다. 더 이상 절망의 노예가 되지도, 권력에 눈이 멀지도, 복수심에 불타지도 않았다. 세히스문도에게 중요한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이기는 것이었다. 바실리오에게 목숨을 맡겨 자신이 죽게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끝이 아니라 진짜 내가 되는 것이었다. 산다는 것은 그저 시간을 보내는 데에 있지 않고 찰나의 순간이라도 그 시간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에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연극으로 본 ‘인생의 꿈’은, 고전 희곡의 특성상 은유적인 표현이 많고 문체가 경직되어 있어, 보는 동안 다소 어색한 느낌을 받게 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지루하고 어렵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스페인 희곡을 생생한 연극으로 보여 준 극단 작은 신화의 정통 연극을 향한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윤정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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