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 인생은 꿈(La vida es sueno) >

글 입력 2015.11.24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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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1일 토요일 저녁, 아트인사이트(www.artinsight.co.kr) 초대로
대학로 여우별 씨어터에서 연극 <인생은 꿈>을 보고 왔다.
스페인의 저명한 극작가 칼데론의 작품이자 바로크 문학의 정수라 평가되는 이 작품이 어떨지 매우 기대하며 갔는데
현대 연극과는 또다른 고전미가 풍부한 극이어서 매우 재미있게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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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별 씨어터의 외관과 입장하는 통로
 
 
 
 
시놉시스

점성학에 매료된 바실리오왕은 자신의 아들인 세히스문도(Segismundo) 왕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보여준 여러 가지 징조들을 통해 자신의 나라인 뽈로니아에 재난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바실리오왕은 왕자가 태어나자마자 죽었다고 발표하고 왕자를 산속 깊은 탑 안에 숨겨서 자라도록 한다. 세월이 흘러 왕자가 장성하자 왕은 비로소 왕자가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 밝힌다. 
왕은 충실한 신하인 끌로딸도에게 만약 세히스문도가 예언대로 재앙을 가져올 악인이라면 다시 잠을 재워 그가 왕자였던 잠시의 순간을 ‘꿈’이라고 믿게 만들자고 제안하는데...




 
 

이 연극을 함축적인 두 단어로 표현하자면 간극과 모순의 연극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각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살펴보면 이들의 관계가 온통 자기 이해로 둘러 쌓여 있어 상호 간에 큰 간극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 모순된 상황에 직면하여 극이 전개되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먼저 뽈로니아의 왕 바실리오와 그의 아들 세히스문도의 관계를 보자. 이 둘의 관계는 극을 전개시키는 가장 근본적인 모순의 관계이다.
바실리오는 자신이 사랑하는 학문(사실 학문이라 표현하기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표현을 빌자면 학문인) 점성학에 의거하여 아들인 세히스문도가 폭군이 될 것이라 선언하며 그가 태어나자마자 외딴 산골 속에서 감금하여 키운다. 아들이 탈선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나라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뒤엉켜 부정(父情)이 왜곡된 방식으로 표출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만일 그에게 눈꼽만큼의 부정도 없었다면 그는 당장에 그 예언을 확인한 순간 세히스문도를 죽였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바실리오는 장성한 세히스문도를 궁으로 불러들인다. 그 예언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올바르게 자랐다면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판단 하에서다. 바로 이것이 바실리오의 궁극적인 모순이자 이 극의 폭발적인 전개를 추동하게 된다. 바실리오는 아들 세히스문도를 산골에서부터 왕궁으로 불러들임으로써, 자신이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예언을 실현시키는 우를 범하기 때문이다. 변덕 투성이이자 완벽한 예측이 불가능한 미래를 온전히 자신의 선택으로 예언의 방향대로 흐르게 했다는 점에서 바실리오는 모순을 안고 있는 인물이다.
 
원래대로라면 왕자인 세히스문도는 어떠한가. 그는 오이디푸스처럼 아버지를 몰아붙였고 압살롬이 다윗을 추격하듯 아버지를 곤궁으로 치닫게 만든 인물이다.
자유가 구속된 인간으로서 쇠사슬에 묶인 채로 동굴에서 자유를 갈망하다가 왕의 심복 끌로딸도에 의해 왕궁으로 이송된 이후 그는 감정이 격화되어 극단적인 행동들을 저지른다.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고 좋은 것을 먹고 입히며 대접하니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마음에 입바른 소리를 하는 병사를 죽이기도 하고 동굴에 갇혀 있던 자신을 훈육했던 끌로딸도를 죽이려는 모습도 보인다. 이런 격한 모습에 상심한 바실리오 왕이 그를 다시금 동굴로 보내버렸고 궁에서의 모든 것이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끌로딸도가 말하자, 세히스문도는 권력욕과 복수욕을 모두 내려놓고 인생의 허망함을 느낀다. 그 허망함의 끝에서 그는 이렇게 독백한다. "인생은 꿈이고, 꿈은 꿈일 뿐이니까."
 
탑 속에 갇혀 있던 그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반 아스똘포 공작파가 그가 갇힌 곳으로 찾아와 반군의 우두머리로 추대했을 때 세히스문도는 그들과 함께 세상으로 나아간다. 다시금 왕궁에서의 극단적인 행동들처럼 폭력적인 행동들을 취할 것 같았던 세히스문도는 끝까지 바실리오를 추격하여 마치 예언에서와 같이 아버지를 자신의 발 아래에 꿇게 만들지만 그를 처단하지 않고 바실리오의 손을 잡아 일으킨다. 마지막 즈음 세히스문도의 방백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세히스문도는 아직까지도 이것이 꿈일 지도 모르기에, 현실일 수도 있지만 꿈이라 하더라도 올바른 선택을 내려야한다는 것을 이전의 경험을 통해 절감했던 것이다.
자유를 갈망했으나 실제 자유를 얻었을 때 타인의 자유를 무자비하게 짓밟는 것에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았던 모순적인 인물이었지만 세히스문도는 현실과 꿈을 오간 듯한 경험을 통해 인간다운 인간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면 끌로딸도와 로사우라의 관계는 어떠한가.
바실리오왕의 심복인 끌로딸도는 왕의 명을 받들어 세히스문도가 있는 산 속에서 그가 외부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지키던 와중에 자신의 딸 로사우라를 만난다. 그는 타국에서 여인을 만나 아이를 가졌으나 그 여인을 자신의 조국으로 함께 데려가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칼을 주며 아이가 태어나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거든 이 칼과 함께 오라 전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로사우라가 그 칼을 가진 것을 보며 자신의 아이임을 알게 되었고, 동시에 외부로 노출되어서는 안되는 세히스문도의 공간에 침입한 로사우라를 왕의 명대로 죽여야 하는 현실에 절망하였다.
 
이런 면에서 끌로딸도는 바실리오왕과 간극이 생기는 인물이라 볼 수 있다. 그는 (비록 처자식을 외국에 두고 홀몸으로 조국에 귀국했다는 문제가 있지만) 바실리오와는 달리 올바른 부정을 품은 사람으로서 자식을 온전한 방법으로 지키고자 한 인물이다. 아비로서의 정과 왕에 대한 충성이라는 간극 역시 품고 있지만 극의 매상황 가운데서 그는 그 어느 쪽도 배반하지 않는 선택을 항상 내렸다. 바로 그 점에서 바실리오와 끌로딸도는 군신관계의 가장 가까운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품은 부정의 방향에 있어서는 극과 극을 이루는 것을 알 수 있다.
 
 
로사우라는 어떤 인물인가. 그녀는 남장을 하고 뽈로니아로 입국한다. 연인이었으나 신분의 이유로 자신을 버리고 뽈로니아의 왕이 되기 위해 에스뜨레아 공주와 결혼하러 뽈로니아로 떠나버린 아스똘포 공작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다. 세히스문도의 공간에 자신도 모르게 침입했다가 끌로딸도에 의해 체포되어 왕도로 이송된 그녀는 무사히 풀려나게 되고 끌로딸도의 도움으로 궁에서 에스뜨레아 공주의 시녀로 일하게 된다.
 
여기서 그녀의 모순이 드러난다. 사랑하는 연인을 빼앗긴 대상이 바로 뽈로니아 왕의 조카 에스뜨레아 공주인데, 로사우라는 모순되게도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그 공주를 위해 일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사실상 전 연인 아스똘포 공작에게 애증의 상태였던 그녀로서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로사우라는 자신의 삶을 불행하다고 여기고 불행은 떼지어온다며 부르짖지만 그 불행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최대한 개척하려는 매우 적극적인 여성으로 그려진다.
 
 
 
 
 
마지막으로 에스뜨레아 공주와 아스똘포 공작의 관계를 되짚어보자.
에스뜨레아 공주는 바실리오왕의 조카이다. 극의 전개를 위한 장치였겠지만, 분명 칼데론이 살았던 시대에는 여왕이 등극할 수 있었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에스뜨레아 공주는 단신으로서는 국왕이 될 수 없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그래서 바실리오 왕은 만일 세히스문도를 왕궁으로 불러들였을 때 그가 부적절한 모습을 보이거든, 에스뜨레아와 아스똘포 공작을 혼인시켜 왕으로 추대할 것이라 말한다. 극 중 모든 상황을 관철하는, 그녀의 고고함이 관객들에게는 매우 명약관화한데도 불구하고 단신으로서는 왕좌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 그녀가 가진 첫번째 모순이 아닐까 싶었다.
 
또한 에스뜨레아는 아스똘포의 진실되지 않은 청혼, 목적에서 비롯된 청혼을 매우 치가 떨리게 싫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녀에게 청혼할 때마다 아스똘포는 목에 다른 여인의 초상화(로사우라의 초상화)가 걸린 로켓을 건 채로 프로포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아스똘포의 청혼을 싫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왕좌 때문일까 아니면 어차피 결혼하게 되리라는 체념 때문일까, 에스뜨레아는 아스똘포에게 로켓을 자신에게 건네고 다시금 청혼하라며 종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이 그녀가 가진 두번째 모순이다.
 
 
아스똘포 공작 역시 모순을 안은 인물이다. 그는 왕궁에서 에스뜨레아의 시녀로 일하는 로사우라의 뒷모습과 목소리만으로도 그녀가 로사우라인 것을 알아볼 만큼 그녀를 사랑한다. 에스뜨레아에게 청혼하는 순간마저도 로사우라의 초상화를 담은 로켓을 벗지 못할 만큼 그녀에 대한 마음이 크다. 그러나 그녀의 신분을 알 수 없다는 이유로 그는 로사우라와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가 가진 첫번째 모순이었다.
 
로사우라와 결혼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차에 바실리오 왕이 뽈로니아로 와서 에스뜨레아와 결혼하여 왕이 될 것을 제안한다. 그러자 그는 망설임없이 뽈로니아로 넘어오고 진실한 사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에스뜨레아 공주에게 자신의 진심을 역설하며 계속 구혼한다. 아스똘포의 두번째 모순은 결국 에스뜨레아와 로사우라 두 여인 모두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을 극 전반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이처럼 아스똘포 공작은 여인들과의 관계에서는 모순 그 자체를 보이지만 왕에 대한 충성심만큼은 왕의 심복 끌로딸도에 비할 만큼 열성적이었다. 반란군이 세히스문도를 앞세워 왕을 코앞까지 추격하는 그 순간에도 아스똘포는 왕의 옆에서 그를 지키는 모습을 보였다. 아스똘포는 사랑 앞에서의 모습과 충성 앞에서의 모습이 매우 간극이 큰 인물이기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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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층적인 사건의 전개. 화려한 수사. 웅장하고 품위있는 고전극의 면모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었다.
기존에 접했던 연극들은 단선적인 전개로 구성된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단선적인 전개라고 해서 그것이 작품성이나 완결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것은 단연코 아니다.
그러나 역시 다층적이고 복잡다단하게 사건과 상황, 인물들이 얽히는 전개가 내 취향인 것 같다.
13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고 대사 하나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작품이었다.
 
 
 
후기에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이 연극은 결말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는 작품이다.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결말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결국 이렇다. 동화같은 결말이라는 것.
칼데론은 아마도 휴머니스트여서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또한 극 중에서 감초 역할을 한 끌라린을 빼놓을 수 없다. 정확히 모순이나 간극을 보여준 인물은 아니기에 인물관계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빼놓았지만 끌라린은 극 중 여러 장면에서 긴장감이 폭발하거나 대립의 구도가 격화될 때에 등장하여 극단으로 치닫는 극 중의 감정들을 일부 상쇄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굉장히 귀여운 역할이기도 하다. 그를 보며 더욱 더 즐겁게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아쉬움을 언급하자면, 배경음악의 사용에 있어서다.
배경음악을 사용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고전극다운 풍미가 물씬 나는 이 작품에 배경음악이 너무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사소한 아쉬움은 차치하고, 이 작품은 간만에 고전 작품을 맛보고 싶은 관객들에게 매우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현대극에서보다도 훨씬 풍부한 수사, 그리고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담겨 있는 철학적인 사색들이 압권이다.
특히 극의 도입부에 세히스문도가 손발에 사슬을 매단 채로 자유를 갈구하며 울부짖는 독백에서는 자유의 가치, 그리스 시대의 철학과 르네상스 이전까지 이어져 온 영혼관까지도 내포되어 있다.
가능하다면 대사 하나 하나를 메모하고 싶을 정도로 고전미가 풍부한 작품이다.
이와 같은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극단 작은신화의 탁월한 작품선택에 새삼 감탄하며 이들이 다음 번에는 어떤 작품을 무대에 올릴지 기대가 된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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