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앙리 루소 - 소박파의 꿈 [시각예술]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앙리루소의 꿈속의 정글
글 입력 2015.11.16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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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루소
- 소박파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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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배경

앙리루소는 19세기말과 20세기 초 파리에서 활동했으나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았고 서양미술사에서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특이한 작품을 그린 작가이다.
앙리루소(Henri Rousseau. 18844~1910년) 는 프랑스의 북서부 마엔주의 라발 시에서 직인의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중학교 졸업후에 1863년부터 1869년까지 군대생활을 했고, 제대 후 파리의 입시세 징세사무소에 들어가 15년동안 근실한 수세관리로 일했다. 이 직업 때문에 루소는 평생 세관원이라는 뜻의 '두아이에(Le Douaner)'라고 불렸지만 사실상 두와니에라는 것은 외국에서 수입되는 상품에 관세를 매기는 관리를 말하므로 입시세를 걷는 관리를 두와니에라고 하지는 않는다.앉아서 기다리는게 대부분 일과였던 말단공무원직을 수행하면서도 그는 스스로도 본인을 두와니에라고 자처했다.이런점에서 루소의 성격을 엿볼수 있다. 그가 그림을 그리게 된것은 수세 관리로 일하던 무렵부터, 따라서 처음에는 전형적인 '일요화가'였다. 현재 알려진 그의 가장 이른 작품은 1880년에 그려진것이기때문에, 그는 30대 중반을 넘기고서야 어느정도 제대로 그림에 힘쓰게 되었다고 할수 있다. 루소는 오로지 앙데팡당전을 발표의 무대로 삼았다. 징세사무소를 그만두고 나서 루소는 전업화가가 되었다. 그러나 예술가로서의 영광을 찾은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의 일이다. 아폴리네르나 피카소등 루소를 깊이 경애하여 그를 기리기 위해 만찬회를 열거나 했던 일은 널리 알려져있다. 젊은 피카소에게 언젠가 루소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네와나는 현존하는 최대의 화가야. 양식으로 보자면 자네는 약간 이집트풍이고 내가 현대풍이지만'

사람들은 루소의 이 말을 악의없는 소박한 발언으로, 웃으며 받아들였다. 그러나 어쩌면 루소는 누구보다도 제대로 역사를 통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떠한 정규적인 교육도 받지않고 스스로 한 말처럼 자연 밖에 다른스승이 없던 것이 오히려 독창성이 밑거름이 되었다. 공식 데뷔한 다음해인 1886년부터 사망한1910년까지 거의 매년 독립 미술가전 앙뎅팡당을 통해 작품발표를 한 그가 남긴 작품은 180여점이다. 그당시 많은 그림들이 유사한 스타일로 새련되게 그려졌던것과 달리 아마추어가 그린듯한 단순한 형태와 원근감을 무시한 기묘함, 이질적인 색상 대비등이 오히려 주목을 받게 된다. 그시대 대부분사람들은 그를 아마추어 화가, 일요화가, 우수꽝스런 기인으로 여겨졌지만 루소본인은 자신을 위대한 화가라고 진지하게 믿고, 자신감이 있었다. 

앙리 루소의 가정사는 다사다난하다.앙리 루소는 스물 다섯에 열다섯인 클레망스 브레타와 결혼했다. 그리고 일곱자녀를 두었지만, 다섯자녀는 제대로 걷지 못한 채 사망하는 비운을 겪었다.유일한 아들도 열일곱살이 되던해 죽었다.그의 아내 클레망스마저 서른살이 되던해에 숨지고 말았다. 그는 10년후 조세핀이라는 여인과 재혼하지만 그녀마저 4년후에 사망한다.쉰 네살에 다시 사랑에 빠졌다. 그녀를 마중나가기 위해 역으로 나가다 소나기를 만났고, 그한기로 인해 폐결핵으로 숨지고 만다. 죽기 직전까지 짝사랑했던 여인은 그의 사랑을 거부했다.불안정하고 초라하며 외로웠던 인생은 그로 하여금 낯선 세계와 상상의 세계에 몰입하게 하고 그를 그림으로 표현했던것 같다.



잠자는 집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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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Rousseau-The Sleeping Gypsy
캔버스에 유화, 130×178cm, 뉴욕 현대미술관


'아무리 사나운 육식동물이라도 지쳐 잠든 먹이를 덮치는것은 망설인다'
이런 부제를 붙인 작품은 잠든흑인여인, 사자가  등장한다.배경은 창백한 달빛에 비친, 지구상의 어디인지도 알수없는 사막이다. 배경역시 창백하게 빛나는 깊은 호수가 보이고, 인간이 오를수없는 이상한 위용을 보이는 산맥이 솟아있다.인간세계로부터 뚝 떨어진것같이 두려울 만큼 쓸쓸한 장소로 보인다.그사막 모래위에 지팡이를 손에쥔 집시여자가 만돌린을 옆에 두고 조용히 자고있다. 그녀의 옷에는 빨강, 파랑, 노랑,녹색, 주황 등모든 화려한 색의 줄무늬가 있는데 달빛을 받아 무지개처럼 밝게 빛난다. 손에는 지팡이를 소중히 쥐고있고, 다른 팔은 마치 달빛에 녹아버린듯 우리눈에 보이지 않는다.머리맡에는 악기와 큰 물병 하나가 놓여있다.고요히 잠든 여자 뒤쪽에서 갑자기 사자 한마리가 나타난다. 발빛에 갈기와 눈을 금색으로 번쩍이고, 사자는 꼬리를 쭉 편채 집시 여자쪽에 얼굴을 들이밀고냄새를 맡고 있는데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여자의 바로옆에 맹수가 있는데도 집시여자는 불안한기색도 없이 편안하게 자고있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이러한 정경을 세부까지 꼼꼼히 그리는소박한 화풍으로, 더구나 아주 대담한 구도로 재현하고있다. 대체 루소는 이그림을 그리면서 무슨꿈을 꾸었을까?이 그림을 극찬한 프랑스 시인이자 영화감독 장 콕토 Jean Cocteau 는 이 그림에 이런 말을 한다.' 아마 사실 사자와 강은 잠자는 사람의 꿈일 것이다. 디테일에 소홀하지 않았던 화가는잠자는 여인의 발 주변 모래에 발자국을 그려넣지 않은 것은 무심코 그렇게 한것이 아닐것이다. 집시는 거기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는 거기에 있다. 그녀는 시의 비밀스러운 영혼이다.''잠자는 집시여인'은 도난된후 훼손된 상태로 나타난것을 이후 무명의 피카소를 알아보았던 칸바일러가 재구입하고 복원하였다고 한다.



뱀을 부리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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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Rousseau-The Snake Charmer
캔버스에유화, 169x189.3cm, 오르세미술관


이 작품은 루소가 화가 로베르 들로네의 어머니를 위해 그렸는데, 인도를 다녀온 한 사업가의 이야기로부터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루소만의 독특한 개성은 이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음악으로 뱀을 부리는 인도 남성은 루소의 그림에서 밤에 나타난 신비한 흑인 여성으로 변했다.그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숲속에 뱀을 부리는 여인이 서있고, 그녀의 목에는 뱀이 둘려 있다. 피리를 불고있지만, 달빛과 강의 잔잔함을 보면 어딘가 적막해 보인다.산세베리아와 오동나무의 꽃과 줄기가 서로 엮어 있다. 굽이치고 있는 갈대와 넝쿨의 모습에 보아 구렁이 또아리와 앵무새가 생기를 불어넣는다. 식물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장면은15세기 태피스트리 작품의 바탕에 수놓아진 무수한 꽃과 식물에 비교되었다. 이러한 평가는 1907년 '살롱 도톤전'의 장식예술부문에 그의 작품이 받아들여지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림의 왼편에 보이는 물가의 숲에서 나타나는 무질서와 대조되어 지평선상의 안정적인 분위기를 발산하고 있다. 물, 공기, 땅, 불꽃과 같은 형태의 산세베리아가한가운데로 모이는 지점에 여인이 서있다. 그녀는 플롯을 연주하며 숲속의 새와 파충류를 유인한다. 흑인 여성으로서 그녀는 최초의 예술가. 즉 그리스의 오르페우스 신화를 전복시키고 있다.이브 또는 살랑보의 이미지와 연관된 이 여성 오르페우스의 신체는 길고 빽빽한 머리카락으로 덮여 눈과 가슴 부분만 보이고 마치 하나의 검은 조형물처럼 서있다. 형태가 극도로 단순화되어 여인이 작품속의 동물뿐만 아니라 관객을 향해서 유혹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듯 느껴지는데 이로 인해 최면적인 분위기가 확대 되었다.미신을 가까이 했던  루소는 벨 에포크 시절, 의식의 원시적 상태에 근접하려는 근대적 수단으로 개발되어 그 당시 유행했던 최면술에 민감했던것으로 보인다.식물을 풍성하게 묘사함으로서 일단 관객의 시선을 끌고 그 시선을 검은 여인과 창백한 달이라는 신비로운 지점으로 유인하면서 루소는 충격과 환영의 경험으로 관객을 이끈다.말할 나위도 없이 이것은 모두 화가 자신이 창조해 낸 이미지다.

' 불가사의한 주제를 다룬 작품을 그리고 있던 어느날, 나는 창문을 열어야 했다. 두려움이 나를 덮쳐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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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i Rousseau-The Dream
캔버스에유화, 298x204cm, 뉴욕 현대미술관


그가 사망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1910년에 앙뎅팡당전에 출품한 꿈 역시 열대 정글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그 자신이 적절하게 이름을 붙였듯이 정글이나 열대는 그에게 꿈의 세계에 지나지 않았다.그러나 그 꿈은그에게 일상의 현실 이상으로 생생한 현실성을 갖는 꿈이었다. 긴 의자에 요염하게 앉아 호랑이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여자는 실존인물인 야드비가이다.야드비가는 루소가 젊은 시절 사랑했던 폴란드 여인이다. 현실의 소파에 누워있는 야비가드와 파랑 빨강 노랑 줄무늬 옷을 입고있는 피리를 불고있는 정체모를 흑인,그앞에 호랑이가 등장한다. 
이작품은 앙리루소 작품의 정글에서 가장 다채로운 색감을 가진작품이다. 색상을 다양하게 사용하였지만 꽃과 식물들은 어딘가 모르게 흠뻑 젖어, 무거운 느낌을 내고 있는것 같다..사랑하는 이를 모두 떠나보낸 앙리 루소의 마지막 꿈, 사랑하는 모두가 저세계로 떠난 뒤 이 세계의 끝, 그 쓸쓸한 소파에서 잠시 꾼 늙은 화가의 몽환의 꿈, 현실과 환상을 가로지르는 고요한 피리소리숨은그림처럼 배치된 여러가지 동물들과 식물들, 조용한 숲의 몽환적인 피리소리등 신비로움으로 가득차있다.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루소가 한편의 시를 함께 써냈다.

' 야드비가는 깊은 잠에 푹 빠져 꿈을 꾸었습니다.
땅꾼이 부는 풀피리 소리를 들었지요.
달은 꽃들과 푸릇한 나무들을 비추고 있습니다.
뱀은 피리의 아름다운 소리를 즐깁니다.'

이 작품에 관해서 어느 비평가가 루소에게 왜 정글 한가운데에 이런 근사한 긴의자가 놓여 잇는지 물었더니 루소는 당장 그 비평가에게 편지를 보내 '그것은 이 여자가 긴 의자 위에서 자고 있다가 밀림으로 옮겨진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루소의 작품은 몽환적이다. 정교하고,테크닉적인 그림이 아니지만 루소의 그림은 넋놓고 바라보게 되는 매력이있다. 꿈이라고도 현실이라고도 할수없는 괴상한 세계로 끌려 들어가고평소의 일상적 감각은 완전히 침묵해 버린다. 모든작품이 현실에서 떨어져있지만 이상하게 생생하다. 루소의 그림에 나오는 이국적인 식물들도 잘보면 우리 주위에서 볼수 있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어떤 연구자의 조사에따르면, 그것들은 모두 프랑스에서 볼 수 있는 식물들이며, 열대 식물이 아니라고한다. 루소의 추억을 들은 주변인은, 루소가 말하는 배 여행 이야기가 한번이라도 실제로 배여행을 했던 사람이라면 결코 모를수가 없는 초보적인 잘못으로 가득 차있었기 때문에 루소의 작품은 상상력의 산물임을 알수 있었다고 한다. 루소는 파리의 식물원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이 식물원 온실의 인공정글을보고 정글의 그림을 생생하게 그려냈던것 같다. 사실 정글을 그린것도, 정글이 루소의 작품중에서도 가장 좋게 평가를 받는것도 원근법을 기술적으로 다루지못하는 그가 파리의 도시 풍경이나 다른 그림을 그렸을때의두드러지는 일종의 결함이 그가 정글을 그릴때면 회화의 장식 기법으로 분류되어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루소에게 정글이란 
' 현실로부터 벗어날수 있는 곳'이고, 화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루소가 유일한 스승인 자연을 그린것이다. 정글은 루소에게 끝없이 샘솟는 창작의 대상이자,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었다.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미술교육을 받을 기회가 전혀 없었고, 결혼한 후로도 그의 생활과 가정사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는 소박파 화가가 될수밖에 없었다.그 당시 미술의 기본을 거의 무시하고 그림을 그렸던 루소는 많은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샀지만 그는 자신을 믿고, 스스로 자신을 최고의 사실주의 화가라고 생각하고 죽기 직전까지 그림을 그렸다.나는 루소의 그림을 높이 평가하고, 작년에 오르세전의 '뱀을 부리는 여인'을 실제로 볼 기회가 있었다. 그때는 앙리루소가 누구인지 몰랐지만 그의 작품을 보고 매력을 느끼고, 그의 인생사를 알게 된후 그의 그림의 가치를 더욱 평가하게 되었다. 만약 역사의 흐름속에서 루소의 자리를 매기려 한다면 꿈세계의 창시자로서 , 르동이나 고갱이나 뭉크 등과 함께 세기말 반자연주의적 경향의 대표적 화가였다고 할수있다.눈에 보이지 않은 영환의 세계를 추구하는 길로 나아갔고, 현실과 비현실을 경계에서 몽환적으로 보는이의 시선을 이끄는 루소의 작품은 계속 기억에 남을것 같다.



[박성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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