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일즈 맨의 죽음 - 누군가의 죽음 [문학]

자살하지 않는 용기
글 입력 2015.10.30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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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hur Miller (1915-2005)

  • 미국 뉴욕 출신의 극작가이다.
  • 아버지는 의류 제조업자, 어머니는 전직교사인 유대인계 가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 소년시절 경기불황으로 집이 몰락해, 고등학교 졸업 이후 여러 직업(접시닦기, 사환, 운전사)을 전전한다.
  • 고학으로 미시간대학교 연극학과 졸업 후 전쟁비판적인 심리극인 <모두가 나의 아들>(1947)로 절찬을 받는다.
  • 이어 <세일즈맨의 죽음>(1949)으로 퓰리처상 및 비평가 단체상을 받고 브로드웨이 2년 장기공연에 성공한다.
  • 이후 <도가니>를 쓰고 여배우 M.먼로와 두번째 결혼 후 이혼을 하게 된다.
  • 그 밖에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 먼로를 모델로한 <전락 후에>등의 작품이 있다.




사회비판극

아서 밀러는 사회 비판극작가로, 그 만의 추구하는 방향성이 있다.
그는 "개인의 문제는 사회적이다" 라는 문장 아래, 개인의 심리적 문제를 속한 사회의 문제로 보편화 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개인이 자아 의식을 찾아가고 가치관을 확립하는 과정 그리고 사회문제를 타파하려는 투쟁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이 새로운 인식을 하게끔 유도한다.


1930년대 심각한 대공황

 - 사회의 경제적인 부분에서의 개인의 위치는 그에게 사회 비판적 요인이 된다. 대공황 이건 경제의 부흥과 더불어 인간사회가 변질 됨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이 부차적/소비적 위치로 전락함으로써 사회가 병들고, 이런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인간은 참된 가치를 찾거나 진정한 자기의식을 확립하는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Arthur Miller의 비극론

- 이전 까지 Aristotle의 시학에 나왔던 비극의 전통적 요소의 핵심은' 주인공=고귀한 신분' 이었다. 그러나 아서 밀러의 비극에서 주인공은 평범한 인간(Common man)이다. 그의 극에서 평범한 주인공이 비극을 맞게 되는 원인은 주인공 스스로가 비극적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성격이나 처한 상황 혹은 운명 등의 요소를 예로 들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의 비극에서 주인공은 개선을 위해 투쟁을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고 부당한 사회에서 공정한 위치를 찾으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마지막엔 결국 파멸하는 형태를 띔으로써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DEATH OF A SALESMAN

줄거리

- Act1 : 60의 나이에 힘겹게 세일즈를 이어나가고 있는 주인공 Willy Loman은 그의 아내 Linda와 25년만에 드디어 진정으로 그들의 것이 되는 집에 살고 있다. 두 아들 Biff와 Happy가 잠시 집에 머무르고 있고 그들은 정착할 나이가 되었음에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혼잣말을 하는 등 정신적인 상태가 좋지못한 Loman의  처지를 이제서야 알게되는 된 첫 째 Biff는 여지껏 아버지와 갈등을 겪고 있었다. Willy 아내 Linda는 그의 자살시도 사실을 두 아들에게 알리며 특히 Biff에게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라고 촉구한다. 이유인즉 Willy의 혼잣말 대부분은 Biff에게 하는 것이고, 증상의 강도 또한 Biff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Biff는 어릴적 아버지 외도 사실을 목격한 이후 허송세월 살고있고, 아버지와의 관계도 악화되었다. 이런 그가 사업을 해보기 위해 몇 달 간의 연락두절 끝에 집으로 돌아왔고 Bill Oliver를 만나 돈을 꾸어 Happy의 사업 아이디어에 동조하고자 한다.

- Act2: 출장판매에 지친 Willy는 Horward를 찾아가 사무직을 요구하지만 그의 무능력함에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몰인정한 태도에 염증을 느끼며 두 아들과의 저녁식사를 위해 이동한다. Bill Oliver를 만난뒤 Biff는 자신의 현실을 깨닫게된다. 저녁식사자리에서 아버지께 모든걸 사실대로 털어놓으려 하지만 그의 강압적인 태도에 실패하게되고 Happy와 함께 여자들과 한바탕 놀음을 즐긴뒤 집에 돌아온다. 그들의 인정머리 없는 태도에 Linda는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Biff는 집을 떠나기로 결심하나 자살을 생각하고있는 Willy는 그에게 보험금을 쥐어주려고 떠나는 것을 저지한다. Biff는 그들의 현실을 깨우치게 해주려 하지만 Willy는 모욕 이라고만 여긴다. 이에 Biff는 울음을 터뜨리고 Willy와 나머지 가족들은 그것이 아버지에 대한 애정의 표시라 여긴다. 이에 자살 결심을 확고히 한 Willy는 그의 의식속에서 Ben을 불러내어 확신을 하고 차를 몰고 나가 생을 마감한다.

-Requiem : Willy의 초라한 장례식. 그의 두아들 Biff,Happy 그의 친구 Charley와 아들 Bernard, 아내 Linda 만이 참석한다. 그의 자살을 허망하고 쓸데 없는 것이라 여기는 Biff와 그의 죽음정신을 받아들이려는 Happy 그리고 세일즈맨의로서의 그의 삶에 대해 이해하는 Charley 마지막으로 남편에게 한없이 순종적이었던 그녀의 태도가 자살을 방관하게 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채 하염없이 슬퍼하는 Linda.  그리고 초라한 집 위로 우뚝 솟은 아파트 건물이 보인다.



Willy Loman의 죽음, low man의 죽음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하루 38명이 자살하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2015년 <세일즈 맨의 죽음>을 처음읽은 취준생은 이 이야기가 결코 1930년 대공황에 어려움을 겪던 미국의 한 노동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품을 읽다보면 지금의 사회를 잘 표현하는 Willy의 대사 한구절이 등장한다. 회사 사장인 Horward 에게 가 선친과 Willy 자신의 친분을 피력하며 다른 일자리를 구하려는 그에게 계속해서 거절을 표하자, 분노에 찬 한마디를 던진다. 
"You can'y eat the orange and throw the peel away - a man is not a piece of fruit!" 
'오렌지를 까먹고 껍질을 홀랑 버리듯 사람에겐 그렇게 할수 없는거야!' 라고 외치는 부분이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예전에 봤던 영화 <베테랑>이 떠올랐다. 비열하고 몰인간적인 사장으로 등장하는 배우 유아인씨의 열연덕에 굉장한 주목을 받았던 씬이 있는데, 바로 체불된 임금을 받기위해 찾아간 사장 사무실에서 한판 시합을 벌이는 부분이다. <세일즈 맨의 죽음>에서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다른 일자리를 요구하는 Willy를 쳐다 보지도 않은 채, 새로 장만한 축음기에만 관심을 쏟는 Horward의 모습은 이미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인간, 기계에 눌러진 인간의 존엄성을 보여준다. 이에 분개한 Willy는 인간은 그저 단물만 쏙, 빨아먹고 버리는 오렌지가 아니라고 처절하게 외치지만 사실 지금의 노동자는 정확히 그 오렌지의 신세라 할 수 있다. 물론 여러가지 직원 복지보장정책이 시스템의 구멍을 메워준다고 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기업 직원이 받는 혜택과 사회 하층민이 받는 그것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대기업 직원이 되기 위해 쏟았던 노력이 청소부의 복지와 같다면 그것은 공평한가? 라는 반박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이 같아야 하느니 달라야 하느니는 제쳐 두고,  Willy가 주장하는 최소한의 인간성은 남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Willy가 가지고 있는 성공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 호감을 주는 외모가 성공의 열쇠라느니, 인기만 있으면 부도덕한 일 어느정도 쯤은 괜찮다느니 하는 -은 (현재 한국 사회에 팽배한) 적자생존, 약육강식에 길들여진 그의 형 Ben으로 부터 나왔다. Ben은 Biff와의 boxing 한 판에서 그 가치관의 핵심을 언급해준다.

"Never fight fair with a stranger, boy. You'll never get out of the jungle that way"

'모르는 사람과 싸울때는 절대 공정하게 해서는 안돼. 너 그런식으로는 정글을 빠져나올 수 없어'. 그가 말하는 정글은 정말 아프리카의 정글을 말하지만 그 함축된 의미는 우리가 사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정글과 다를바 없지 않은가? 각자의 생존을 위해 펼치는 경쟁의 레이스. 이런 현실 속에  Willy의 선택은 자살이다. 그의 자살에는 단순히 '살기 힘들어'의 의미 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살을 통해 얻게되는 2만 3천달러의 보험금은 생전 그가 바랐던 물질적 성공을 이루게 해준다. 한편으로 그의 장례식에  수 많은 조문객이 등장할 것이라는 예상에, 그의 두 아들 (특히 Biff)에게 아버지의 능력을 보여주고자 한다. 무엇보다 노동자들의 고단한 인생 살이를 대변하는 그의 대사가 있다.

"Why? Does it take more guts to stand here the rest of my life ringing up a zero?"

'왜요? 그럼 한 푼 수입없이 여생을 버티는게 용감한건가요?' 그의 질문은 가슴 한켠을 후벼판다. 하지만 동시에 이 시대를 관통하는 노동자의 질문이다. Willy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각기 다를 것이다. 그와 그의형 Ben처럼 '그래 2만 3천달러 정도면 자살할만 하지'라고 여길 수도 있다. 모두가 그의 처지에 차마 '그래도 안되지'라고 말하지 못 할 때 '그래도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이 삶을 마감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용기가 아닐까?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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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guin Books, Death of a Salesman



[박지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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