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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딜리아니.PNG


그의 그림에는 절제된 묘사와 서늘한 외로움이 공존한다. 얼마 전 '모딜리아니, 몽파르나스의 전설 展'이 끝났다. 10월 초에 막을 내린 모딜리아니 전은 국내 최초로 열린 그의 회고전이다. 어렵게 모아진 그의 작품이었다.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뿔뿔히 흩어져 개인소장을 하는 경우가 많기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세계 도처 사십여개의 공공기관과 여러 개인들로부터 작품을 모았다. 필자가 이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하다.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2010년, 소설책을 읽다가 접했는데 좋아하는 소설인 '생의 한가운데'의 표지에 그의 그림이 있었다.

 
인물화.PNG

소녀의 초상(쟌느 에뷔테른느), 1918
55x38cm, 캔버스에 유화, 개인소장


 바로 위의 그림이다. '인물화'를 접할 때에 우리는 실제보다 더 아름답게 그려진 것이나 놀라우리만큼 정확하게 묘사된 그림을 만난다. 하지만 모딜리아니의 '인물화'는 가늘고 긴 목, 긴 얼굴을 특징으로한다. 정확한 묘사의 초상화보다 만화나 일러스트 같다는 느낌으로 낯설게 다가온다. 모딜리아니는 화가이자 조각가였는데, 그림 작품으로서는 거의 인물화를 그렸다. 풍경화도 그렸으나 작품수 중 단 다섯점에 불과하다. 



텅 빈 눈동자, 인물 내면으로의 통로 

 모딜리아니의 작품에는 유독 인물화가 많다. 긴 목, 텅 빈 눈동자, 그리고 아몬드형의 눈은 그의 인물화의 특징이자 모딜리아니만의 독특한 화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인물화를 통하여 타인의 내면세계와 교감하고자 했는데, 이때 동공 없는 아몬드형 눈동자는 상징적인 역할을 했다. 즉, 이런 눈의 묘사는 인물의 내면세계로 통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가만, 그런데 어떤 누드화의 경우에는 눈동자가 살아있다. 이는 모델과의 교감을 중시한 모딜리아니의 가치관의 반영 할 수 있다. 모딜리아니는 말했다. "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 때, 당신의 눈동자를 그리겠다" 


남자의 초상.PNG

폴 기욤의 초상, 1915
74.9x51.1cm, 판지에 유화, 톨레도미술관, 미국


도슨트에 의하면 이 그림을 그리던 시절에 
모딜리아니는 물감값을 아끼기위하여 최대한 효율적으로 물감을 사용하고자 했다. 

 
잔느에뷔테른느.PNG

잔느 에뷔테른느의 초상, 1918
46x29cm, 캔버스에 유화, 트루아 근대 미술관, 프랑스

 
큰 모자를 쓴 에뷰테른느.PNG

큰 모자를 쓴 잔느 에뷔테른느, 1919
54x37.5cm, 캔버스에 유화, 개인소장
 
 

누드화, 절제된 표현과 단순화된 형태


머리를 풀고 누워있는 여인 누드.PNG

머리를 푼 채 누워있는 여인의 누드, 1917
60 x 92.2 cm, 캔버스에 유화, 오사카 시립근대 미술관, 일본


     이 작품은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이 작품은 기회가 있다면 부디 직접 보길 권한다. 풍부한 유화, 반짝이는 아몬드 형태의 눈, 고혹적인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 등. 작품은 고유의 생명력을 뿜어내면서 벽에 걸려있었다. 모니터로는 원화의 그 느낌과 깊이는 알 수 없다. 다른 인물화와는 다르게 '텅 빈 눈동자'가 아니라 선명하게 눈동자가 묘사되어있다. 이는 모델과의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한 그의 생각의 반영이다. 모딜리아니의 누드화는 절제된 표현과 형태와 단순화를 특징으로 한다. 윤곽선을 또렷하게 처리하고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단색 위주로 채웠다. 배경도 단순하게 처리되었는데 이는 인물에 대한 집중성을 높인다. 얼굴을 묘사한 윤곽선은 직선에 가까운 반면, 몸통을 묘사한 선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대비효과를 이룬다. 형태의 단순화와 절제된 표현으로 인물의 누드화는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비극적인 사랑, 잔느와 모딜리아니 


모딜리아니와 잔느.PNG

좌 : 모딜리아니 
우 : 잔느 에뷔테른느
 
 
앉아있는 잔 에뷔테른 1918.PNG

앉아있는 잔느 에뷔테른느, 1918
55x38cm, 캔버스에 유화, 이스라엘미술관, 예루살램


  이 작품은 잔느 에뷔테른느가 임신했을 당시의 작품으로, 과거의 작품에 비하여 밝은 색감이 사용되었다. 또한 이전에는 신경쓰지 않던 공간까지 담아냄으로서 모딜리아니가 인물뿐만 아니라 인물이 있는 배경까지도 소중하게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둘의 사랑은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모딜리아니의 1910년 후반 이후로 급격히 몸이 쇠약해진다. 알코올 중독으로 실신하는 경우도 잦았다. 그러던 1920년, 당시로서는 불치의 병이었던 결핵으로 그는 사망한다. 장례식에는 많은 사람들이 왔다. 잔느는 그녀의 부모님이 데려갔으나, 그의 죽음으로 낙심한 그녀는 이틀 후 5층 베란다에서 임신 9개월째의 몸으로 뛰어 내린다. 잔느는 불같은 사랑으로 모딜리아니와 함께했고, 그 불길은 아직 22살인 어린 잔느를 죽음으로 인도하였다.



그의 후원자, 폴 알렉상드르

 
촐 초상화.PNG

폴 알렉상드르의 초상, 1909
100.5x 81.5 cm, 캔버스에 유화, 도쿄 후지 미술관, 일본






  필자에게 이날 베스트였던 작품이다. '단지 이 작품을 보기위해 모딜리아니 전을 보러왔구나'싶을 정도로 이 작품은 홀렸다. 이 인물화의 주인공은 폴 알렉상드르로, 모딜리아니의 최초의 후원인이자 꾸준한 후원자이다. 1907년 가난으로인하여 작업실에서 쫓겨난 모딜리아니는 폴 알렉상드르를 만나게 된다. 폴 알렉상드르는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근대미술 애호가로서, 그 당시의 화가, 건축가 등을 지원하며 돈을 다 써버리고는 했다. 모딜리아니는 폴 알렉상드르를 위하여 5점의 초상화와 10여점의 소묘를 그렸다.

  모딜리아니는 그림을 그릴 때에 빠른 붓터치를 그 특징으로 하는데, 배경과 인물묘사에 있어 그런 특징이 잘 드러나있다. 얼굴의 묘사가 인상깊다. 실제의 인물보다는 조금 더 굵게 이목구비를 표연한듯하며, 인물을 묘사할 때의 색감은 보이는 그대로 표현했다기보다 모딜리아니만의 관점으로 캔버스에 풀어냈다. 얼굴은 섬세한 묘사와 풍부한 색감으로 묘사한 반면, 허리에 얹혀져 있는 손이나, 뒤에 있는 손에 대한 정밀한 묘사는 떨어진다. 또한 입고 있는 의상에 대한 섬세한 묘사나 입체감도 얼굴 묘사에 비하여 떨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묘사로 인하여 관람객은 자연스럽게 인물의 얼굴에 주목하게된다. 인체의 비례는 정확하지 않아 마치 '정확한' 인물화가 아닌 일러스트같은 느낌도 주지만 그렇기에 더 재미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 작품은 미술책의 작은 도판으로 봤을 때 원작의 아우라는 절대 느낄 수 없다. 기회가 있을 때 작품성있다 일컬어지는 작품은 접하길 권한다. 특히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원화와 영접(?)한 이후 충만함으로 전시회장을 나설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불행한 예술가들이 그랬듯이, 모딜리아니는 가난하게 생을 마감한다. 생전엔 레스토랑에 작품을 팔면서 생활비를 번다. 다른 작가들과 협력해서 부유한 여행객들에게 작품을 팔고자 한적도 있지만 큰 돈은 벌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죽음 이후에 작품은 몇 배로 뛰었다. 그리고 오늘날 그의 누드화 중 하나는 6900만불에 팔리기도 했다. 그의 생애에 성공이 좀 더 빠르게 찾아왔다면? 혹은 그가 그의 시대보다 늦게 태어났다면? 당시 프랑스의 주류적 화풍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만들고자 한 모딜리아니. 그의 작품성이 후대에는 빛을 발해서 다행이다. 


소파에 앉아있는 누드.PNG

소파에 앉아있는 누드, 1917
65x100cm, 캔버스에 유화, 개인소장


이 그림은 2010년 11월 2일 뉴욕소더비 경매에서 
모딜리아니 작품으로는 최고가인 6900만불(765억원)에 팔렸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이 작품과 관련된 스케치만 볼 수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있는 누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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