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술관 건립 정책
1970~80년대, 프랑스 문화부 자크 랑 장관에게 있어 제 1의 과제는 미술지원정책이었다. 국제적인 수준의 미술관을 전국 각지에 건립하여 상호 연결망을 형성하는 것이 문화정책의 최대 관건이었던 것이다. 1977년 퐁피두 센터를 개관한 이래 국가차원에서 추진된 프로젝트는 아홉 종류에 이르렀다. 이들 대규모 프로젝트는 미술관의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 모범적인 운영 방식을 도입한 계획이었다.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위에서 언급한 퐁피두 센터 개관이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퐁피두는 파리 중심지에 미술관이자 조형예술과 영화, 음악, 서적 그리고 모든 창조적 활동의 중심이 될 수 있는 복합문화센터를 지어 프랑스 미술의 전통을 더욱 발전시키고자 했다.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건축 양식을 지닌 퐁피두 센터는 내부로 감춰야 할 모든 구조나 설비를 건물 바깥으로 노출시켰다. 건물 뒤편은 파랑, 빨강, 초록 등 원색의 튜브 모양 설비 배관들이 땅 위에서 옥상까지 연결되어 더욱 독특하다. 이미 30년 전에 21세기형 복합문화공간을 시도하며 탄생한 퐁피두 센터는 파리가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건재함을 증명하는 좋은 예시이다.
2) 메세나 정신
프랑스에서는 메세나 활동을 진작하는 정책 또한 마련되었다. 먼저 소장품 확대 정책으로서의 메세나 활동이 있는데, 소장품은 미술관을 성립시키는 기본적인 구성요소임과 동시에 미술관이 개관된 이후에도 항구적으로 발전하고 보충되어야 할 요소라는 사실에 기반한다. 만일 미술관 소장품이 질적 및 양적으로 성장하지 않고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그 미술관은 맥박이 정지했다고도 볼 수 있다. 프랑스 정부의 경우 미술관들의 원활한 작품 소장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존의 소장품을 보충하고 가능한 한 프랑스가 소유하고 있는 문화유산의 해외 유출을 막는 것이 기본적인 원칙이지만 최근 새로운 영역을 개발해 나간다는 원칙에 집중하고 있다. 여기에서 새로운 영역이란 ‘작품 증여 제도’인데, 이러한 개인 및 단체에 의한 작품 기증은 미술관의 소장품을 확대시키는 방법 중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한평생 수집한 작품을 쉽게 미술관에 헌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프랑스 정부는 사회적으로 메세나 정신을 진작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다음으로 자발적인 메세나 정신 또한 유럽의 문화예술 발전에 큰 기여를 해왔다. 네덜란드 기업들의 경우, 국가의 문화예술을 진정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럽 기업들의 이러한 자발성은 결국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의 재개관과 같은 역사적인 결과를 낳았다. 유럽재정위기 여파로 자금 조달이 원만하게 이뤄지지 못해 리모델링 기간이 예상보다 7년이나 더 걸렸지만, 네덜란드 교육·문화·과학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필립스, ING, 네덜란드 국영항공사인 KLM 등이 적극적인 지원과 협조에 나서며 10년 후 미술관은 완전히 새롭게 다시 태어났다.
바르셀로나에는 카이샤 은행이 운영하는 ‘카이샤 포럼’이 있다. 카탈루냐 지역의 대표적인 금융그룹이 카이샤 은행이 소장한 800여 점의 현대미술 소장품을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국제적인 현대미술을 소개할 목적으로 개관된 곳으로, 지역 주민들이 가지던 미술관에 대한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해왔다. 뿐만 아니라 이 미술관은 본래 공장으로 쓰이다 줄곧 방치되었던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으로, 근래 들어 유럽의 많은 현대 미술관이 리모델링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는 것과 그 흐름을 함께 한다. 카이샤 포럼은 입구에서부터 미술관 내부로 고스란히 이어지는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인 미술관 분위기, 적은 소장품을 보완하기 위한 알찬 기획전, 무료 관람 등의 특징을 통해 바르셀로나 시민뿐만 아니라 외국 관광객의 부담까지 낮추었다.
카이샤 은행은 사회 환원과 문화산업을 통한 기업 이미지 마케팅이 결국 눈앞에 보이는 실질적인 이윤 추구보다 더 장기적이고 효과적임을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기획 전시가 여러 기업의 사내 미술관에서 조그마하게 열리며, 몇몇 기업은 직접 미술관을 개관하며 관람객을 끌어들인다. 그러나 삼성 미술관 리움의 경우 고가의 입장료와 예약제 시스템으로 관람객의 접근이 어렵고, 이 외의 기업 미술관은 경영 적자를 이유로 인건비를 줄여 큐레이터가 부족한 상태이다.
3) 전통적 건물의 재활용
유럽에는 구사치 갤러리나 오르세 미술관, 함부르거 반호프, 드 퐁트 현대미술관 등 옛 기차역이나 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한 미술관들이 많다. 그 중 먼저 유례없이 화력발전소를 리모델링한 영국의 테이트 모던에 대하여 알아보겠다.
제 2차 세계대전 직후 런던 중심부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세운 이 화력발전소는 1981년 석유파동으로 문을 닫게 되면서 거의 방치되어 왔다. 사실 화력발전소 건물은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현대적 건물이었으나, 주변의 많은 건물에 가려져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러했던 건물은 자크 헤어초크와 피에르 드 뫼롱이라는 젊은 건축가들에 의해 기존 건물의 형태, 구조, 재료, 특성, 산업적 성격 등을 온전히 받아들인 상태에서 미술관으로 재활용되었다. 기존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었더라면 훨씬 비용이 절감되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영국인들은 몇 배의 비용과 수고를 들였다. 과거의 전통과 역사를 그대로 보존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미래의 비전을 그리려는 노력이었던 것이다.
스페인 빌바오에 위치한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또한 마찬가지이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에 위치한 빌바오는 본래 철광석 광산과 조선소가 있던 공업도시였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철강 산업이 쇠퇴하면서 도시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던 중 바스크 정부는 빌바오를 재생할 방법이 문화산업이라 판단,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분관을 유치하게 된다. 이전까지 컨테이너 하치장이었던 네르비온 강가의 부지에 프랑크 게리가 해체주의 건축 양식을 도입하여 건물을 탄생시켰다. 티타늄 강판을 사용해 만들어진 새로운 디자인의 미술관은 곧 빌바오의 랜드마크가 되어 버려진 도시를 살릴 수 있었다.
4) 전문인 양성 정책
1980년대, 미술관의 수가 급증하면서 그로 인해 전문인력의 수요 또한 높아져갔다. 이에 프랑스에서는 미술관의 전문인력을 제도적으로 양성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세워진 학제를 ‘국립문화유산보존학교(Ecole Nationale du Patrimoine)라고 한다. 이 학교는 미술관의 전문인력이 미술사의 한 분야에 정통한 미술사가여야 함과 동시에 문화기관을 운영할 수 있는 행정가여야 한다는 발상에서 설립되었다.
오늘날 프랑스 정부가 정하는 큐레이터 양성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4년제의 루브르 미술관 학교를 졸업하고, 전국 각 지의 미술관 중 세 곳에서 각각 6개월간 총 18개월의 연수를 거쳐야 한다. 매년 실시하는 학업 테스트도 더불어 시행되며, 이 모든 과정을 무리없이 통과한 사람에게만 큐레이터 국가고시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진다. 이렇게 매년 20명 안팎의 합격자가 선발되며, 그들이 마지막으로 거치게 되는 과정이 위에서 언급한 Ecole Nationale du Patrimoine이다. 이 곳에서 합격자들은 미술사에 대한 지식을 근간으로 미술관 소장품에 대한 연구와 새로운 기획전시의 조직, 문화행정가로서의 미술관 운영 및 문화행사 추진 그리고 미술 애호가들과의 항구적인 관계를 통한 메세나 유도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
사실 그 전까지는 이러한 양성의 역할을 모두 ‘루브르 미술관 학교(Ecole du Lourve)'가 전담헀으나, 미술사 관련 학위 미취득자에게도 미술관의 문호를 개방해주었기 때문에 그다지 엄격하고 전문적이진 않았다. 현재 미술관 전문인 양성과정이 위와 같이 더욱 제도화된 것을 보면, 그만큼 미술관의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하고 선호되는 직업인지 알 수 있다.
5) 주거 문화 및 환경을 고려한 문화단지 형성
유럽의 미술관들은 점차 인간친화적인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주거 문화와 하나가 되어 미술관이 합쳐진 문화단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 ‘도시 재생 프로젝트’와 같은 정책이 전 대륙에 걸쳐 시행되고 있는 만큼 각 국은 도시성정과 미래의 주체로 도시문화공간을 꼽는다. 즉, 문화와 예술이 도시재생의 핵심적인 요소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도시마다 독자적인 이미지를 구축하고 새로운 경제적 역할을 추구하는 동시에 지역커뮤니티 형성을 촉진하기 위한 도시문화전략이 중요한 정책으로 부상하고 있다. 도시에서 문화의 위치는 서비스시대로 전이하고 있는 현대에 이르러 그 위상이 더욱 확고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네덜란드의 경우 지형의 특성상 항만지역을 기반으로 발전하였던 도시들의 재생사업에 문화를 주요 요소로 도입하고 있다. 물을 ‘극복’하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물을 ‘활용’한 도시계획이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시간이 흐르며 일상에서의 문화가 중요해지고 문화를 영위하기 위한 장소가 필요해지자 국가는 문화시설들이 소규모단지를 형성해나가는 미술관구역을 만들었는데, 대표적으로 암스테르담의 오스터르도크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곳은 19세기에 암스테르담이 대형선박을 위해 도크를 건설하고 도심과 연계된 항만지역을 구축하기 위해 만든 지역이지만, 항만기능이 쇠퇴되면서 점차 낙후되었다. 그러나 문화 재생 산업과 함께 도심에 근접한 ‘수변문화공간’으로 새로운 입지를 굳히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수변지역을 도심확장 및 재생지역에 포함하여 내륙과 함께 수변지역의 발전을 도모하였고,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친수공간을 확보하여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반 고흐 미술관 등과 가깝게 이어지는 복합적 주거지역을 형성하였다. 뿐만 아니라 항만지역 특성을 살린 장소성을 부각하고 역사적 건축물을 재활용함으로써 주민들은 본래 있던 미술관 외에도 새로운 예술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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