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국 서양미술의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 [시각예술]

‘이쾌대’라는 사람과, 그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던 좋은 전시였다.
글 입력 2015.10.26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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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쾌대, 해방의 대서사展>


*그림 출처 글 하단에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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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이쾌대,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 1940년대 후반, 캔버스에 유채 72x60cm. 개인소장1)


지난 16일 금요일, 공강인 날을 이용해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린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전을 감상하고 왔다. 솔직히 이쾌대가 누군지도 잘 모르고, 내가 한국 미술가들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갔지만, 전시회장을 끝가지 다 보고 나왔을 때, 이 전시의 제목인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가 크게 마음에 와 닿았다. 이쾌대의 미술 인생은 정말로,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에 이르기까지의 ‘대서사’로 표현될 수 있을 만큼 역동적인 인생이었다. 이쾌대의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느꼈던 점을 몇 가지 테마로 나누어서 서술해 보도록 하겠다.
 

 
1. 이쾌대와 여성

   1) 여성 인물화

  이쾌대는 여성을 많이 그렸다. 여성이 나타난 그림은 크게 두 가지 종류였다: 여성인물화, 그리고 여성의 누드이다. 먼저 여성인물화에서 독특했던 점은, 정말 서양식의 그림, 서양식의 색채를 사용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림 속에 묘사된 여성의 모습은 전통적인 여성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쾌대의 여성 인물화속에 나타난 여성들은 ‘한복’을 입은 모습으로 주로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부녀도>에서는, 한복을 입은 두 여성들이 전면에 드러나고, 그 뒤로 병풍이 보인다. 하지만 ‘한복’을 입었지만, 전통에 예속된 약한 여성의 모습이 아니다. 여성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어떤 굳은 의지가 있는 강인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특히 각진 눈썹이 ‘강인함’을 더해주는 듯하다. <족두리 쓴 여인>같은 작품에서도 전통적인 여성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누드화이다. 한국에서는 서양처럼 누드가 아름다운 감상 대상으로 존재한 역사가 없다 것이다. 여성의 몸은 많이 그려지지도 않았지만, 그려진다 할지라도 노동하는 모습이나 기녀의 모습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이쾌대의 누드는 그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아름다운 대상으로서의 누드’이다. 이쾌대가 그린 누드는 서양의 전통 누드화처럼 여성을 아름다운 존재로만 바라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결점 없는 완벽한 여성의 모습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쾌대는 이전까지 무시되었던 여성의 아름다움 그 자체를 그리기 시작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2) 이쾌대의 뮤즈, 아내

  이쾌대의 아내인 ‘유갑봉’ 여사는 이쾌대 그림의 뮤즈이다. 이쾌대는 그린 많은 여성의 모습들 중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그의 아내를 그린 인물화이다. 이쾌대가 아내를 그린 모습을 보면, 그가 아내를 정말로 사랑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2인 초상>이었다. 처음 이 그림을 봤을 때는 빨간 옷을 입고 쪽머리를 한 예쁜 여성이 어두운 색을 배경으로 앉아 있고, 그녀의 그림자가 바탕에 드리워져 있는 그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보니 내가 여자의 그림자라고 생각했던 모습은 사람의 모습, 이쾌대의 모습이었다. 보통 부부의 인물화라 하면, 두 사람이 화면에 동등하게 등장하는 모습을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이쾌대는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의 모습을 전면에 내세우고, 자신은 아내 뒤에 있는 듯 없는 듯한 그림자로 표현되어 있다. 이쾌대가 부인을 그린 드로잉들 역시 그의 부인이 그에게 정말로 예술적 영감을 주는 존재임을 말해준다. 전시장 안에는 이쾌대가 아내에게 연애시절 쓴 편지와 함께, 그가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을 때 보낸 편지가 전시되어 있다. 연애시절 쓴 편지는 이쾌대의 로맨티스트적인 면모를 보여줬지만, 정말 감동적인 것은 포로수용소에서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는 읽으면서 가슴이 찡해졌다. 이쾌대는 아내와 자식들이 굶을까 걱정되어, 자신의 물건들, 소중한 그림들을 다 처분하라고 한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남편의 그림을 하나도 팔지 않고 지킨 아내의 모습도 정말 대단하다. 


 
2. 이쾌대의 정체성, 두루마기를 입은 화가

   이쾌대는 한국인이지만, 서양 미술을 배우고 그린 화가이다. 한국인이면서 전통 미술을 하지 않고 서양의 미술을 하는 이쾌대의 정체성은 그의 그림 속에서 나타난다. 그의 작품 <두루마기를 입은 화가>를 보면(글 상단 [그림 1]참조], 그가 생각하는 그의 정체성을 볼 수 있다. 작품 속 그의 모습은 조선의 전통적인 의상, 파란 두루마기를 입었다. 하지만 그가 쓴 모자는 전통적인 ‘갓’이 아니라 서양의 모자이다. 그의 뒤에 배경으로 나타나는 풍경은 지극히 ‘조선’적인 모습이다. 푸른 자연, 농경지, 작은 오두막들, 그리고 한복을 입고 항아리를 인 채로 지나가는 여자들. 반면 이쾌대가 손에 든 미술용품은 서양의 붓, 물감, 파레트이다. 서양화를 하지만, 그가 그리는 대상은 지극히 동양적인, 조선의 모습이다. 그가 정의하는 그의 모습, 그의 예술은 ‘바로 이런 것이야’라고 이쾌대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다. 동양과 서양이 조화된 이런 모습은 <카드놀이하는 부부>에서도 나타난다. 1930년에 그려진 그림인데도 굉장히 현대적인 분위기이다. 밝은 햇빛이 한줄기 들어오는 테이블에서, 부부는 카드놀이를 하는 중이다. 또한 테이블 위에 있는 것은 (아마)와인병으로 보이는데, 작품에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해준다. 하지만 아내가 입고 있는 것은 예쁜 한복이다. 

 
 
3. 이쾌대 작품의 원숙기, '군상' 시리즈

이쾌대의 ‘군상’ 시리즈는 그의 작품이 원숙기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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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이쾌대, 군상1 해방고지. 1948. 캔버스에 유채 181x222.5cm. 개인소장 2)


  ‘군상’을 보자마자, 들라쿠르아가 생각났다. 들라쿠르아의 작품들 중에서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사르나다팔루스의 죽음’ 이런 것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왜 생각났을까 싶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등장한다’, ‘사람들이 쌓아올려 진 듯한, 비슷한 구도’ 이런 요소들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준 것 같다. 가장 인상적인 군상은 <군상 IV> 였다. 이 작품은 조국이 해방된 기쁨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인물들 뒤로 드러나는 검은 하늘에, 한 줄기 빛이 드리우고 있다. ‘군상’ 시리즈가 인상적인 점은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의 자세 하나하나가 굉장히 사실적이고 역동적이라는 점이다. 전시장 안에서 이쾌대의 제자들이 이쾌대에 대해 말하는 영상을 봤는데, 그의 제자들에 의하면 이쾌대는 ‘모델’을 쓰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는 모델을 쓰지 않고도 ‘군상’ 같은, 세부적인 인체 묘사가 드러난 그림을 그릴 정도로 해부학에 능숙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쾌대’라는 사람과, 그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던 좋은 전시였다. 솔직히 최근에 가봤던 전시회들 중에 가장 만족스러웠다. 이런 좋은 화가가 어쩔 수 없이 북한으로 갔다는 이유만으로 알려진지 얼마 안됐다는 것도 안타깝고, 그림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이쾌대의 그림은 그의 삶과 더불어 큰 감동을 주었다.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

장소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1, 2 전시실
관람시간 : 화.목.금.일 10:00~19:00 / 수.토 10:00~21:00
*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의 평일이 휴관
입장시간 :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 가능
관람료 : 무료(단, 덕수궁 입장료를 지불해야 함! 만 24세 미만은 신분증이 있으면 무료 입장 가능하다)







* 이미지 사용출처

1) 2)이미지([그림1], [그림2] 출처 : 국립현대미술관 보도자료(공공누리 제 4유형)
(국립현대미술관 >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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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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