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필경사 바틀비를 아시나요? [문학]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VS "필경사의 방"
글 입력 2015.10.16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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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VS "필경사의 방"


1853년. 아직 인쇄기술이 없을 때 입니다.
인쇄기계 대신에 사람의 인력을 사용해야 했던 시기.
종이와 펜.
그리고 이들을 사용하는 사람.

"글을 베끼는 이, 필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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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적인 저항처럼 성실한 사람을 화나게 하는 것은 없다. 
만약 그런 저항을 당한 사람이 몰인정하지 않은 기질이고 
또 저항하는 사람이 수동성의 면에서 전혀 악의가 없다면,
그렇다면 전자는 기분이 좋을 때에는 자신의 판단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고 판명되는 것을 자신의 상상력으로는 관대하게 해석하려고
애쓸 것이다. (p65) "


"그는 가정대로 하기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인 것이다.(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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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차츰 바틀비와 관련된 이런 고새잉 영겁 전에 모두 예정되어 
있었으며 바틀비는 나 같은 범부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전지한 섭리의 어떤 신비한 목적을 위해 내게 할당되었다는
믿음에 빠져들었다. (p87)"





  필경사는 직업으로 글씨를 쓰는 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바틀비의 삶에 대해 그는 말하고 있다. 우선 작가 허먼 멜빌은 1819년, 미국 뉴욕에서 부유한 무역상 집안의 8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는 근대적 합리성을 거부하는 비판적 사고, 풍부한 상징성을 작품에 담았던 그는 다음 세기에 와서야 단순한 해양모험담 작가가 아닌 친구 호손과 더불어 인간과 인생에 비극적 통찰을 한 상징주의 철학적 작가로 평가받게 되었다. 필경사 바틀비는 그가 34살에 잡지에 기고한 글이다.

결국 여기서 작가는 바틀비의 삶을 통해 미국의 금융 중심지 뉴욕 윌가를 배경으로 산업화, 도시화된 미국 자본주의 사회와 물질주의를 비판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간략히 집약한다면 현대사회에서 ‘일을 하기 싫은 사람’의 모습을 단순히 보여준다고 해도 될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전 세계를 통틀어-에서는 이러한 인물을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바틀비는 직장에서 하기 싫은 일을 거부한다. 상사에게 확고히,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하기 싫은 것은 ‘안’ 하고 싶다고 말한다. 반면에 바틀비는 자신이 막상 ‘하고’싶은 것도 없다. 창백한 얼굴의 그는 수동적 저항으로서 자신에게 할당된 필경의 일만 묵묵히 한다. 화자는 상황이 지남에 따라 “바틀비는 나 같은 범부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전지한 섭리의 어떤 신비한 목적을 위해 내게 할당되었다는 믿음에 빠져들었다.(p87)”고 말한다. 화자를 이렇게 만드는 바틀비의 힘은 무엇일까? 그는 전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이상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도, 교훈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도, 심지어 영웅도 아니다. 차라리 그는 일반인보다 무기력하다. 하지만 그는 현대사회에서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라는 점에서 힘을 얻는다. 불합리한 일들을 하루하루 성공적으로 해내면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우리를 꿰뚫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다. 나는 사회봉사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안내를 하고 있는데 그 곳에서 안규철의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라는 전시가 있다. 한번은 거기에서 전시안내를 맡았다. 특히 내가 맡은 곳은 바로 <1000명의 책>이라는 전시공간이었는데 이는 전시기간 동안 천여 명의 관객이 국내외 문학작품을 연이어 필사하는 필경작업이었다. 웹사이트를 통해 일정을 예약한 참가자들은 ‘필경사의 방’에 마련된 책상에서 각자 1시간씩 주어진 책을 필사한다. 이렇게 여러 사람의 손 글씨로 완성된 필사본은 전시가 끝난 뒤 한정판으로 복제되어 참가자들에게 배포된다고 한다. 지나간 시대의 유물처럼 밀려나 버린, 손으로 글 쓰는 행위의 의미를 되새기고, 서로 모르는 익명의 개인들이 공동의 일에 참여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연대를 이루는 작업이라고 했다. 필경사 바틀비와 너무도 대조적인 듯하다. 물론 시대의 차이도 있고 ‘필경’에 대한 목적도 다르다고 하지만 공통된 질문은 있는 듯하다. 전시관에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글씨를 베껴 쓸까? 초반엔 단지 좋은 전시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서 생각이 조금은 바뀌었다. 필경이라는 의미를 포장만 한 전시가 아닌지 말이다. 바틀비를 죽음으로 몰고 간 필경에 대해 너무 가볍게 접근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이 뭔지도 모른 채, 돌아가는 사회를 우리 모두가 승인한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작가는 바틀비를 통해 질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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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ould prefer not to."



[장연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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