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제 22회 베세토페스티벌, 노이즘의 < 상자속의여인 >

글 입력 2015.09.22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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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제 22회 베세토페스티벌, 노이즘의 <상자속의여인>


베세토 페스티벌 포스터.jpg
 

연극이 시작하기도 전, 무대 위에 카메라를 든 토끼가 있다. 그가 들고 있는 카메라는 객석을 향하고, 카메라에 담긴 광경은 무대의 스크린을 통해 비춰진다. 간접적으로나마 무대 위에 선 관객들. 이들은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비단 무대 위의 인물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일 것임을 예견하는 듯 보인다.

오만했던 여인은 자신을 좋아하던 남자, 자신을 지켜주던 이들에게 버림받고 파멸을 맞이한다. 여인이 비극적인 결말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녀가 줄곧 갇혀있었기 때문으로 들고 싶다. <상자 속의 여인>이라는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여인은 갇혀있다. 무대 위의 상자 속에, 스크린 속에.


노이즘_공연사진1.jpg
 

 연극 전부터 등장한 토끼는 계속해서 카메라로 무언가를 찍는다. 소동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토끼는 계속해서 그 모습을 담는다. 그 모습들은 스크린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스크린에 갇혀있다는 것이 불행의 원인인 이유는 카메라가 단편적인, 그리고 고정된 시선을 전제하기 때문이겠다. 카메라에 담긴 영상은 틀에 박힌 시선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틀에 박힌 시선은 비극을 야기한다.

 후줄근하고 볼품없는 니트족을 상대도 하지 않으려는 그녀와, 그녀에게 접근조차 못 하도록 막는 이들. 이에 니트족은 외양을 말끔하게 하여 다시 돌아오기로 마음먹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프로그래밍을 통해 청사진을 완성하는데, 어쩐지 그 청사진 속 인물, 일명 꽃미남이 살아나 여인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선다. 말끔한 외양에 반한 여인은 꽃미남에게 열렬히 구애한다. 컴퓨터로 완성되어 인간이 아닌, 일명 ‘허수아비 왕자’에 빠진 여인은 자신을 지켜주던 이들과, 니트족을 버린다.

허수아비 왕자는 허상이었고, 이를 깨달은 여인은 돌아온다. 그러나 이미 버림받은 이들이 여인을 환영할 리는 없는 것이다. 결국 여인은 자신을 지켜주고, 좋아하던 이들에게 버림받고 쓸쓸한 공간에 홀로 남는다.


노이즘_공연사진2.jpg
 

 여인이 허상에 빠진 것은 여인은 모든 것을 틀에 박힌 시선으로 바라보았기 때문. 그녀의 눈에 비친 니트족은 볼품없는 반면, 꽃미남은 번듯했다. 아무런 고뇌 없이 틀에 박힌 시선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그녀이기에 허상에 빠져 비극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토끼의 카메라, 무대 곳곳의 다소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눈 모양의 스티커는 틀에 갇힌 시선에 대한 강렬한 경고를 드러낸다. 이러한 경고를 통해 노이즘은 그들이 추구하는 'No-ism', 즉 탈체계적 시선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조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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