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 특별한 관계, 엄마와 딸

사랑스러운 웬수
글 입력 2015.09.19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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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 그 특별한 관계
책 「가을이 오면」으로 본 모녀의 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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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웬수


“엄마! 저번에 산 내 옷, 어디에 뒀어?”
“옷장 왼쪽에 한번 봐라.”
“아이참. 없다니까? 빨리! 어디 있어?”
“잘 찾아 보래두! 넌 네 방 청소 좀 제대로 해! 방 청소를 안 하니까 제대로 못 찾는 거 아냐!”
“에이, 나 시간이 없었어. 주말에 한꺼번에 치울게요. 사랑하는 엄-마!”
“으이구. 저 웬수덩어리.”


  엄마와 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봤을 장면이다. 일상적이고 사소한 대화에서도 사랑과 증오의 뿌리를 느낄 수 있다. 이 ‘웬수’는 청소를 안 해서 미운 웬수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 자체만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사랑스러운 웬수이다.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이기도 하지만, 해법 없는 갈등에 고통 받아야 하는 일도 허다하다.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치유하기도 한다. 작은 것도 나누는가 하면 필요 이상으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한다. 이런 그들의 마음을 깊숙이 들여다보자.

  애증(愛憎). 말만 들어도 벗어나지 못할 굴레에 갇혀있는 느낌이 들게 하는 단어이다. 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나는 이상 그리고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이상 우리는 이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바로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 순수의 결정체인 아기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부모님께 느끼는 원초적 감정이 이 '애증'의 감정이기도 하니까.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자신을 모든 힘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신과 같은 부모에게 무한한 사랑을 느끼는 동시에, 자신이 하고 싶은 본능적 욕망을 사회규제로 인해 못하게 막는 부모의 가르침으로부터 아이는 무한한 배신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렇게 자라온 우리들에겐 자연스레 내제된 감정이지만 낯설기만 하다.

  책 ⌜가을이 오면⌟의 주인공은 일반 가정과는 달리 조금은 다른 가정환경을 가진다. 주인공은 그런 애증을 ‘엄마’에게 느낀다. 그녀는 예쁘기보다 오히려 못생긴 자신에게 ‘로라’라는 이름을 지어준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이 크다. 하지만 로라의 엄마는 남을 의식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며 남편 없이 홀로 딸을 키워야만 했던 사연 많은 불행한 여인이었다. 또한 자신은 절대 엄마와 닮지 않겠다고 발악을 하지만 결국 자기도 모르게 엄마를 닮아가는 모습에 눈물을 흘린다. 그녀는 우연히 자신을 도와준 한 남자를 현재 교회 셋방에서 별거중인 어머니에게 데려간다. 잘생긴 남자와 다닌다는 것을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과 엄마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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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자라서 엄마가 된다


  여자들의 좁고 깊은 관계 중에서 ‘엄마와 딸’처럼 당연하면서도 말하기 어려운 관계가 있을까? 생물학적으로 이어진 관계에서 출발하지만 결국에는 복잡 미묘한 정서적 관계까지 이어진다. 특히 여자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엄마의 인생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 하나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단계 중 1단계에서 보면, 어렸을 때 엄마는 태어나자마자 맺는 가장 중요한 관계고 우리에게 신뢰감을 주는 중요한 존재다. 내가 세상과의 관계를 맺는 첫 대상이 엄마이고 그게 평생 이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최초의 인간관계를 엄마와 맺게 되는데, 이때 엄마와의 관계는 평등하지 않다. 엄마에게서 모유를 얻거나 음식물을 얻어야 생존할 수 있는 상하관계다. 엄마가 하는 것이 곧 법이고 엄마에게 의지해야만 세상을 살 수 있다. 이러한 딸이 엄마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엄마는 딸이 어린 소녀에서 한 여성으로 성장해 가는 모든 시기에 최우선적 역할 모델이 된다. 어떤 친구를 만날지, 어떤 남자를 사랑할지, 결혼하면 어떤 엄마와 아내가 될지 모두 엄마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딸에게 엄마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동시에 가장 벗어나고 싶은 그 무엇이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엄마가 하는 모든 말은 딸에게 잔소리처럼 여겨지고, 내 마음 좀 알아달라는 엄마의 외침은 피하고 싶은 정서적 부담이다.

  반면에 딸은 엄마에게 또 다른 자아다. 엄마는 딸이 자신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더 잘 살았으면 하고 항상 바란다. 또한 그런 마음도 모르고 철없이 제 주관대로 하는 딸이 엄마는 원망스럽게 느껴진다. 여기서 엄마는 같은 자식이지만, 아들과는 조금 다른 감정을 딸에게서 느낀다.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지만 아들은 이성이기 때문에 공감의 정도가 다르고 애인과 같은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딸은 다르다. 동성이기 때문에 나의 또 다른 생명이다. 그래서 자신의 못다 이룬 소망을 이뤄주고 싶은 존재가 된다. 



“결국, 커다란 존재인 어머니도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었고,
소중하고 철없던 딸도 누군가의 커다란 어머니가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와 딸의 서로에 대한 애증과 빛바랜 추억들은 각자의 마음을 울렁인다. 이러한 그들의 애증은 그 어느 관계의 애증보다 훨씬 아름답고 고결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딸은 엄마에게, 엄마는 딸에게 사랑한다고 외치고 꼭 포옹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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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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