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잔에 대해 한 순간이라도 의심을 품어보았다면 3 [예술철학]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적 철학
글 입력 2015.09.16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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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잔의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코스는 바로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이다. 메를로-퐁티에게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주관과 객관의 대립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그는 원초적 지각 속에 신체와 정신, 주관과 객관이 함께 녹아 있는 것으로 보고 지각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초기 철학은 지각의 현상학이라 할 수 있는데, 지각 기능을 독점하는 장소인 신체를 현상학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를 발전시킨 후기 철학은 존재론적인 입장을 취하며, 이는 「세잔의 회의La Doute de Cezanne」, 「눈과 마음L'oeil et L'esprit」에 서술되어 있다.
  
  그의 철학을 살짝 엿보자면, 메를로-퐁티에게 있어 '존재'는 세계, 즉 현상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며 물질과 정신이라는 포괄적인 두 범주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종속적이던 물질-정신 관계를 깨뜨리고 이를 하나의 존재로 존재하는 ‘살’이라고 지칭하였다. 여기에서 ‘살chair'은 가시적 사물이 아니라 비가시적인 것으로, 지각 가능한 구조는 아니지만 모든 구조들의 토대가 되는 개념이다. 메를로-퐁티는 존재가 현상학적 세계의 초월적인 원리나 실재가 아니라 우리의 세계 속 존재를 구성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주장하기 위해 ’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또한, 인간이란 정신과 육체가 분리된 존재가 아니기에 그 존재 내부에 내재된 ’살‘로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사물들 역시 이와 동일한 구조의 ’살‘을 가지게 된다. 이처럼 동일한 존재론적 구조 속에서 상호간의 열림으로 인해 신체와 사물 간에서도 근본적 통일성이 이루어지고, 궁극적으로 세계 또한 ’살‘이 되는 것이다. 즉, 그는 구체적 상황 속의 구체적 육체로 살아가는 인간을 탐구하였기 때문에 지각의 장(場)인 ’세계‘에 대한 탐구 역시 중시하였고, 특히 이와 같은 ’지각하는 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회화‘라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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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 <로브에서 본 생 빅투아르 산>
 

  메를로-퐁티의 지각 세계는 전경과 배경의 구분 정도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뉘는데, 이는 그의 회화론을 밝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먼저, ‘전객관적 세계’에서는 전경과 배경의 구분이 없으며 그 사이를 인간의 의식이 넘나드는 것이 자유롭다. 둘째, ‘삶의 세계’에서는 1차적인 전경-배경의 구조가 형성되어 경험이 안정화된다. 다시 말해 우리는 한 인간으로서 실존하기 때문에 인간은 자유롭지 못하며 이미 운명이 지어진 지각의 장 속에 존재하게 된다. 셋째, ‘객관적 및 과학적 세계’에서는 잠재적 배경이 삭제되고 전경만이 남게 된다. 메를로-퐁티는 위의 세 단계 세계를 구분하며 원초적 표현에 가까이 다가가는 언어로서의 예술은 세 번째 단계의 추상화 및 개념화에 다가서지 않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에게 있어 화가가 보고 그리는 대상과 예술가가 추구하는 것은 가시적인 세계와 직면했을 때, 가시적인 것에 보이지 않게 내재해 있는 비가시적 존재의 ‘실재세계’였던 것이다. 결국 예술가의 작업은 존재의 표현이 되며, 그 표현으로서 탄생하는 예술작품은 존재의 비가시적인 의미를 나타내게 된다. 이와 같은 연계관계는 메를로-퐁티의 말기 저서인 <눈과 마음>에서 명확하게 나타난다.

  한편, 메를로-퐁티는 개념적으로 파악할 수 없으나 실재하는 무언가에 대한 최상의 표현 방법이 ‘예술’이라고 말하였다. 예술가 앞에서 세계는 더 이상 표상을 통해 나타나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예술작품은 존재를 무개념적으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는 회화에서 드러나는 ‘존재에 관한 무개념적 표현양상’을 “회화는 사물들이 어떻게 되며 세계가 어떻게 세계가 되는지를 밝히기 위해 ‘사물들의 덮개peau des choses’를 벗겨냄으로써 어떤 것의 광경이 된다.”라는 문장으로 설명하였다. 요컨대, 회화는 외부 공간에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기교적 표현이 아니라 “빛의 목소리와 같은 마디 없는 외침cri inarticule qui semblait la voix de lumiere”이었다. 이는 예술의 존재론적 특성을 드러내기도 하며, 곧 현상학적 존재론의 연장으로서 예술론을 탄생시킨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작품을 보면서도 볼 수 없었던 ’의미‘와 숨겨진 의미의 현전이 일으키는 무언가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예술의 힘을 느끼게 된다. 또한, 그는 “세계는 언제나 그려지지 않은 채로 있으며 그 세계는 화폭 속에서 모두 정복당할 그런 존재가 아니다”라고 언급하였다. 이는 인간의 창조적인 예술 표현에서 존재의 의미를 드러내는 행위가 ‘드러냄의 완결’을 목표로 하지 않으며, 다양한 의미 해석에 대해 언제나 열려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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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를로-퐁티


[전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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