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FANTASY
애국가 작곡 80주년 · 광복 70주년 · 안익태 선생 서거 50주년 기념 음악회
KOREA FANTASY애국가 탄생 80주년, 광복 70주년, 안익태 선생 서거 50주년 음악회를 통해민족의 동질성과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대국민 화합의 장을 마련하며,더 나아가 해외 문화교류의 계기를 만들고자 한다.<프로그램>1부: 아나운서 / 인사말, 동영상, 안익태 회고, 프로그램 소개, 축하공연Fantasie and Variation “The Carnival of Venice”- Jean Baptiste Arban (1825-1889)(베니스의 사육제에 의한 Trumpet 환상곡과 변주곡)- Trumpet 안희찬Symphony No.9 -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국립합창단, 숭실대 콘서트콰이어, 성악 Solists2부: 안익태 기념공연Lo Pi de Formentor (프로멘토의 소나무)- 수원시립교향악단White Lilly (흰 백합화)- Sop. 한예진, Bass. 임철민Arirang Hill (아리랑 고개)- Alto. 김선정, Ten. 강무림Korea Fantasy(한국환상곡)- 국립합창단, 숭실대 콘서트콰이어, 국민참여합창단
이 날의 공연을 말한다면 2부를 중점으로 두고 이야기 해야 할 것 같다. 낯선 안익태 선생의 곡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였다. 다수의 음원사이트에서 안익태 선생의 곡들이 서비스 되지 않고, 제목부터 생소할 정도로 그의 곡은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다. 이번 공연은 내게 그 낯설음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였다.
애국가 작곡 80주년
안익태 기념재단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조문수 숭실대 교수는 수업 시간에 애국가 1절부터 4절까지 모두 부를 수 있는 학생에게 플러스 점수를 주겠다고 종종 제안하지만 모두 부른 학생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80년 전과 현재 국민들에게 애국가라는 존재와 의미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만 해도 그렇다. 나라의 만세를 바라는 1절, 민족의 기상(충절)을 말하는 2절, 일편단심을 통해 애국심을 이야기하는 3절, 그리고 충성과 나라 사랑의 4절. 1절에서 3절까지는 괜찮다. 근데 4절에서는 갸웃한다. 나라에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은 도덕 시간에 배울 법하다. 나라를 사랑하라는 말은 낯설지 않은데 왜 나라를 사랑해야 하는지 체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나는 왜 나라를 사랑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르는 채 부르는 애국가가 의미 있는지 의문이다.
결혼하여 스페인 마요르카에 정착한 안익태는 한국전쟁의 발발을 계기로 세계 무대로 눈을 돌렸다. 그는 이것만이 조국의 현실을 알리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한국환상곡>을 재검토하여 많은 오케스트라의 문을 두드렸다. 그 결과로 1952년 멕시코 순회연주회에서 <한국환상곡>이 호평과 함께 큰 성공을 거두었고 다음 연주회의 재계약이 이루어졌다. 1955년 안익태는 이승만 대통령의 초청으로 처음으로 고국에서 지휘를 하게 되었으며 <애국가>의 작곡자로서 국민의 환대를 받았고 한국인 최초로 문화포장을 받았다.
안익태 서거 50주년
공연의 1부의 시작으로 애국가가 흘러 나오자 관객들이 기립하여 합창단과 함께 애국가를 제창했다.
그 순간 애국가의 힘을 느꼈다. 가만히 편하게 앉아서,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음악 마냥 들을 수 없는 노래였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애국가를 부르는 것은 처음 봤다. 그 신기함에 가치판단은 잠시 보류해뒀다.
안익태 선생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가 있고 기미가요를 연주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에키타이 안이라는 이름으로 만주국을 찬양하는 <만주환상곡>을 공연한 적도 있다.
창작물에 있어 작품과 작가를 분리해서 보기도 한다. 나 역시 상황에 따라 작가를 배제하고 작품을 감상하기도 한다. ‘국가’로 지정이 되지 않았지만 애국가는 국가와 다름없이 불린다. 친일을 행한 사람이 만든 애국가. 안익태 선생의 친일 행적을 알기 전까지 나에게 큰 의미가 없었던 애국가는 현재 어떻게 판단하여야 할지 애매모호한 위치에 있다.
애국가의 작곡가, 친일 행적을 제외하고 감상한 음악가 안익태의 곡은 예상 이상이었다. <흰 백합화>는 한국적이란 느낌이었다. 안익태 선생의 작곡인 걸 모르고 들었어도 한국의 감성을 느꼈을 것 같았다. <한국환상곡>은 평화로운 조국을 말할 때는 목가적이고 민속적이었다가 일제의 압박에서는 고난과 암울함을 표현했고, 광복에서는 합창이 해방의 감격을, 마지막엔 만세를 기원하며 화려하게 끝을 맞이했다. 감정이 전면에 드러나는 한 편의 이야기 같은 진행이었다.
공연을 보고 나니 안익태 선생을 ‘애국가의 작곡가’보다 ‘음악가 안익태’로 접근하는 쪽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안익태 선생이 애국가로 알려져있기 때문에 그것을 전면으로 내세울 수 밖에 없지만 그것만으로는 안익태 선생을 알리기는 부족하다. 안익태 선생을 알리려 한다면 그의 음악을 대중에게 더 노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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