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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 읽는 문학②
-끊임없는 자기진술, 이청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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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이청준의 소설을 지적 소설, 혹은 감성의 언어가 아닌 이지의 언어로 쓰인 소설이라 칭한다. 그만큼 이청준은 통상적으로 지적인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성을 바탕을 하였다고 하면 어떤 것을 말하는가. 이청준은 자아와 사회 간의 모순, 그리고 이로 인한 병리적 현상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이야기에 담아냈다. 이청준 특유의 미학이 담긴 그의 글은 관념적이면서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을 지녔다. 오늘은 이청준의 소설에 대해 살펴보며 그의 글에 다가가보고자 한다.



①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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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 소설에는 유독 장인이나, 작가, 혹은 예술가가 많이 등장한다. 이를 ‘장인’으로 통칭하겠다. 이청준이 말하는 장인이란 꽤나 주관적이다. 이문열의 ‘금시조’에 등장하는 장인과는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장인들이 천재적일뿐더러 존경받는 존재라면 이청준의 장인들은 그렇지 않다. 가령 <줄광대>, <매잡이>, <예언자> 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각각 서커스 광대, 사냥꾼, 예언자이다. 이들은 환영받거나, 존경받기는커녕 의심받고, 비웃음 당하고, 구경거리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세 경우로 비추어볼 때 이청준이 말하는 장인이란, 높은 사회적 위치나 평판을 지닌 자라기보다는 자신의 일에 경건한 태도로 임하는 인물을 말한다고 할 수 있겠다.



②억압과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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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청준 소설에 등장하는 장인을 포함한 인물들은 좌절한다. 이 좌절은 하려는 것을 하지 못하는 형태로 구현된다. 하려는 것이란, 먹는 것일 수도(<퇴원>), 소설을 쓰는 것일 수도(<소문의 벽>), 그림 그리는 것일 수도(<병신과 머저리>), 기억하는 것(<퇴원>)일 수도 있다. 이러한 것들을 하고자 하나 하지 못하면서 인물은 좌절한다. 이러한 그들의 결핍을 억압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다만 그 억압은 피상적으로 개인 및 스스로에 의한 것일 수도, 외부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줄광대>의 ‘남 기자’가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은 능력 부족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퇴원>의 ‘나’가 먹지도, 기억하지도 못하는 이유는 어릴 적 트라우마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 <병신과 머저리>나 <소문의 벽>의 인물이 글을 완성하거나 쓰지 못하는 것은 사회와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③자기진술에의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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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자기진술에 대한 서술이 필요해 보인다. 앞서, 이청준 소설의 인물들은 말하려 하거나, 그림을 그리려 하거나, 글을 쓰고자 하는 등 무언가를 하려고 하나 하지 못하였다고 했다. 이 하려고 하는 것들은 <소문의 벽>에 이르러서 ‘자기진술’이라는 용어로 구체화된다. 즉 앞선 좌절을 자기진술의 실패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이청준은 계속해서 자기진술에 실패하는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장인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 역시 이와 연관이 있다. 장인에게 있어 자기진술이란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을 말할 것이다. 진술에 실패하는 인물의 대표 유형이자, 작가 자신을 대변하는 인물로 장인을 설정한 것이다. 이를 통해 작가 스스로 글을 쓰는 것을 자기진술이라 여기고 이를 지향하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퇴원>에서 ‘나’는 같은 병실의 여자가 이웃집 처녀의 바람기, 서커스단의 파산 경위와 같은 타인의 이야기를 주구장창 늘어놓으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말하지 못하는 자신과 다를 바가 없다고 했다. 의미 없는 이야기의 나열을 진술로서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에 자기진술이란 본질에 다가가는 것, 나아가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말하지 못하는, 모순과 병리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인물은 불안에 시달린다. 작가는 개인 혹은 사회에 문제가 있음에도 지적하지 못하는 상황을 그려냄으로써 상황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있다.


짐작컨대 이청준은 소설가의 의무를 문제에의 지적, 즉 자기진술이라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작품을 통해 구현된다. 자기진술을 통한 자기진술에 대한 역설이라니 흥미롭다. 한편 자기진술을 가로막는 요인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그것이야말로 이청준 소설을 읽으며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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