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美)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만난 세상 [시각예술]

프란시스코 고야의 ‘1803년 5월 3일’을 통한 미술작품의 사회적 기능에 대하여
글 입력 2015.07.28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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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1803년 5월 3일>
 
 
서(序) : 인간의 오만한 잔혹성을 그리다

  스페인 최고의 화가라 불리는 고야는 페닌술라 전쟁 6년 후 당시 스페인의 비극적 상황을 기억하기 위해 <1803년 5월 3일>이라는 작품을 남겼다. 그는 전쟁의 영웅 프랑스가 아닌 전쟁의 비참한 희생자 스페인을 사실적으로 강조하였고, 그와 동시에 나폴레옹 정권에 대항하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았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프랑스 군인들의 곧게 선 모습과 무장하지 않은 채로 공포에 떨고 있는 양민들의 모습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잔인함과 참혹함을 자아낸다. 순교자,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흰옷 입은 한 시민의 모습, 그리고 땅에 스며들어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있는 총살당한 시체의 피. 스페인을 지키려는 남자의 행동과 주변 시민들의 두려움 역력한 표정은 억압받는 자유와 인간성을 되찾기 위한 부르짖음을 완벽히 전하는 듯하다. 뿐만 아니라 그림 중앙에 있는 등불은 전쟁 당시 참혹한 인간들의 모습과 공포를 그대로 말해준다.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빛'은 인간의 잔인한 측면과 두려움의 대조를 강조해줌으로써, 페닌술라 전쟁이라는 역사적 진실과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화가, 그림에 역사를 흩뿌리다
 
  초기 고야는 화려하고 밝은 느낌의 그림을 그리곤 했으나, 청각을 잃고 페닌술라 전쟁 시기를 지나오는 등 여러 참상을 겪으면서 무거운 주제와 어두운 색조를 담게 되었다. 전쟁으로 인한 화풍의 변화는 전쟁을 반대하는 고야의 의지를 표명하는 부분이다. 다른 많은 화가들이 그랬듯이, 고야 또한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동시대인과 후세에게 역사의 진실뿐만 아니라 그 당시 사람들이 가졌던 생각과 감정까지 전달한다. 이처럼 <1803년 5월 3일>은 고야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에두아르 마네의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과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을 만큼 이 시대 ‘역사 속 전쟁의 참혹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아이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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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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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한국에서의 학살>


잔혹의 역사와 함께 하다 - 미술작품의 사회적 기능

  인류가 살아오면서 전쟁을 하지 않았던 시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잔혹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와 지속적으로 함께 해왔다는 말이 과언이 아닌 이유다. 전쟁은 종교, 민족, 영토 확장 등 다양한 이유로 정당화되어왔다. 특정 집단과 권력이 자신과 같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잔인하게 파괴한 것이다. 마네의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은 <1803년 5월 3일>의 구도, 구성상의 측면에서 매우 비슷하다. 두 화가는 이 구도 속에서 광적인 행동과 무감각한 행동의 연속성을 그려냈다. 아래의 그림 <한국에서의 학살> 또한 총을 든 군인 무리를 인간성을 상실한 로봇처럼 표현하였다. 이처럼 고야뿐만 아니라 화가들은 ‘그림을 그린다’라는 개인적인 행위를 통해 ‘시대사조와 정신의 반영’, ‘현실고발 및 현실비판’ 등의 사회적 기능을 창출해내었고, 지금도 많은 화가들이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결(結) - 그림을 읽고, 과거를 기억하다

  고야의 그림이 없었더라면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페닌술라 전쟁은 단지 나폴레옹 침략의 한 부분으로 남았을 것이고, 1803년 5월 3일 마드리드 시민들의 피는 그렇게 조용히 땅 속으로 스며들어 갔을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미술작품을 통해 ‘미(美)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세상을 볼’ 기회를 선사해주었다. 오늘도 세계의 많은 이들은 그의 저항 정신이 담긴 그림을 보고, 읽고, 느끼며 자칫 불꽃처럼 사그라질 뻔 했던 과거의 눈물 속 한 단면을 마음에 새긴다.

[전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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