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정보화 시대, 타자와의 경계를 넘어서 [문화전반]

공각기동대 (ghost in the shell)
글 입력 2015.07.11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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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기 고유의 정체성을 구성하며 
타자와 경계 짓는 행위를 한다.
현대 정보화 사회에 이르러 이러한 ‘경계짓기’는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었다.

이러한 양상에 대한 모색, 탐구는
고도로 정보화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문화매체에서도 등장한다. 
여기서는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ghost in the shell)’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ghost_in_the_shell2.jpg






1. '경계 짓기' 인간의 본성?


 
 인간이 스스로를 타자와 구별하는 행위는 ‘정신’을 기점으로 행해진다. 인류의 모든 정신사에는 ‘경계 짓기’가 어떤 형태로든 반영되어 있다. 철학을 예로 들자면 근대 철학의 ‘주체’와 ‘타자’개념, 정신분석학 등이 있다.
정신분석학자이자 철학자인 라캉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 정신이 영아시절에는 거울에 비치는 자기 모습을 ‘자신’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이처럼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과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는 상태를 ‘거울 단계’라 한다. 그러나 아기는 행위를 통해 자기 자신을 외부로 던지는데, 자기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으로부터 돌아온 자극은 이질성을 안겨준다. 이러한 기대와 현실의 간극이 주는 충격에 따라 본래의 자아는 분열을 겪고 결국엔 자극을 자기 안으로 체화함으로서 자아는 타자와 분리되고 성장한다.
또한 인간은 ‘투사’를 통해 타자 속에서 자신을 바라본다. 이러한 수용 방식으로 인해 우리 의식 내부는 타자성이 혼재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라는 라캉의 명제를 통해서도 설명된다. 
투사의 욕구는 자기 자신을 바깥으로 끌어내 현상하는 ‘대상화’를 낳았으며 마네킹이나 로봇 같은 인간과 닮은 형상의 발명도 이러한 심리적 맥락이 반영되어 있다.






2. 무한한 정보,'한계'로서의 경계


 
 1995년 개봉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는 인간과 사이보그가 공존하는, 그러나 아직 국가와 민족은 유지되는 근미래의 정보화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이곳은 신체의 모든 기관, 즉 뇌까지 전자화되어 있어 서로의 의식으로 접속이 가능하다. 주인공이자 수상 직속의 특수 부대로서 공안. 감사 업무를 담당하는 공각기동대(공안 9과)의 팀장인 쿠사나기 소령 역시 몸이 사이보그로 되어 있다.


캡처.PNG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부품이 결코 적지 않은 것처럼
자신이 자기이기 위해서는 놀랄 정도로 많은 것이 필요해.

타인이 자신을 구별하기 위한 얼굴과
목소리, 눈, 뜰 때 응시하는 손, 어렸을 때의 기억, 미래의 예감.
그것만이 아니야. 내 전뇌가 액세스 할 수 있는 방대한 정보와 네트의 넓이. 
그것들 전부가 내 일부이고 나란 의식 그 자체를 만들어내고
그리고 동시에 나를 어느 한계로 계속 제약해 “

-쿠사나기 소령


 
 그녀는 자신의 몸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기계화, 정보화된 환경에서 자기 존재에 대한 의심을 품는다. 유일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기억’마저도 조작되는 세상에서는 자신은 하나의 인간으로서 고유한 존재를 가지는 것이 아닌 프로그래밍된 시스템일 뿐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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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라는 것은 정보의 바다 속에서 태어난 결집점과 같은 것이다. 
종으로서의 생명체는 유전자라는 기억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사람의 개개인을 구분 짓는 것은 단지 실체 없는 기억일 뿐이다. 
기억이란 환상 같은 것이지만 인간은 기억에 의해 정의된다. 

컴퓨터의 보급과 그에 따른 정보의 축적은 새로운 형태의 기억과 사고를 탄생시켰다.”

-인형사



  그러나 공각기동대가 포획한 해커 인형사는 자신을 인공지능시스템으로서만 보는 공안국 사람들에게 ‘생명체’의 정의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체는 정보에 의해 구성된다. 기억, 정보로서의 정신만을 가지는 존재 역시 생명체인 것이다. 

 모든 신체는 재단되고 분리되었으며 모든 감각은 설계된 회로를 통해서 전달된다. 정보화 사회에서 완전히 물질화 되버린 몸은 ‘나’라는 고유한 존재로부터 떨어져나갔다. 인간으로서, 하나의 개인으로서 스스로를 규정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감정과 기억이라는 모호한 것에 더욱 의존하는 것이다. 이제는 완전히 정신의 내용, 감각과 감정의 저장고로서의 ‘기억’만이 인간을 구성하게 된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나와 타자와의 경계를 긋는다. 기억의 출발점을 찾아 거슬러 오르는 행위 또한 그러한 맥락이다. 
 그러나 그러한 기억의 뿌리가 흔들린다면, 정보의 바다 속에서 나를 구성하는 기억들이 실은 타인의 것이라면 어떠한가? 타자들로부터 나를 구별하는 행위는 모호한 경계 속에서 ‘나’를 더욱 한정시킨다. 
 진보를 향한 몸짓, 정신마저 완전히 물질화 되버린 ‘고도화’된 시대에 인간의 ‘경계 짓기’는 오히려 한계로 작용하는 것이다.





3. '경계짓기'에서 '경계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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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융합하고자 한다.
생명체는 다양성을 통해 불멸한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그 자신을 희생하기도 한다.“

“내가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보장이 있나?“

“보장할 수 없다. 변화하는 환경에서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
네가 지금의 너 자신으로 있으려 하는 집착은 너를 계속 제약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의 한계에 제약되어 있었다.
이제 제약을 버리고 우리의 의식의 차원을 높일 때다.“



 결말에서 인형사는 쿠사나기 소령과 융합하고자 한다. 그들은 지능을 가진 생명체임에도 자손을 낳아 번식하지 못하기에 불완전하다. 그러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존재가 됨으로서 인간의 번식체계와 같은 기능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자손 생성, 융합이 지니는 의의는 바로 다양성과 개성이다. 
 그러나 끊임없는 변화를 향한 결행, '융합'이라는 선택은 더욱 많은 위험성과 결단이 따르는 것이다 .번식을 위한 결합은 각 개체가 유지되는 것이지만 융합은 분리된 존재로서의 서로를 인식할 수 없다 .즉 나와 타자를 경계 지을 수 없이 온전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는 단순히 나와 타자 간의 경계를 지우는 것이 아니다. 쿠사나기와 인형사 간의 융합체는 각 개체로서 존재했던 때의 기억과 함께 경계의 흔적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 융합의 의의를 갖기 위해 서로가 지닌 결함의 의미, 경계의 의미를 분명히 개념으로 갖는 것이다. '생'을 지니며 자신의 개체를 유지하고자 하는 생명체인 이상 경계를 완전히 지우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융합은 쿠사나기에게 있어 그동안 자신을 괴롭혀왔던 의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고립의 방식으로 자신을 붙잡아 두는 것은 유지될 수 없으며 점차 세상은 변화의 흐름을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갈 것이다. ‘경계 넘기’란 ‘경계 짓기’를 거스르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이 변화와 생성의 원리 속에서 거듭나는 맥락이다. 

 ‘나’와 ‘타자’는 상보적인 관계이다. 경계짓기를 통해 타자의 존재를 상정하는 것은 단지 ‘나’와 구별되는 배경으로서의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다. ‘나’의 존재가 성립하고 유지됨에 있어 타자의 존재는 필수불가결하며 타자를 통해서야 비로소 ‘나’가 완성될 수 있다. 개인이 지니는 본질적인 결함은 타자를 포괄하기 위한 이음새로서 애초부터 상정된 것이다.
‘경계 짓기’는 ‘경계 넘기’로, 우리가 자멸하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 거듭나고 변화한 전략인 것이다,  
 




4.경계짓기와 현대의 문화예술 이슈



  21세기 예술의 화두는 ‘소통’이다. 예술의 새로운 매체로서 떠오른 ‘sns’는 경계 넘기에 관한 다양한 화두를 낳았다. 그 중에서도 ‘표절’은 뜨거운 감자이다. 그러나 표절은 경계 넘기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경계 넘기‘는 무수한 정보들이 자기 안으로 ‘체화’되는 것이며 이전의 경계의 흔적들이 작품의 맥락 속에서 자연스럽게 구성되어 드러난다. 반면에 표절은 의도적으로 본래의 자신과 타인의 것의 경계의 흔적을 은폐하는 의식적이고 교묘한 행위이다.
 사실 예술에 있어 타인과 완전히 다른, 구별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현대의 미디어는 예술의 모든 장르에 파고들었으며 전통 예술도 역시 현대의 매체를 통해 유통되는 상황이다. 미디어를 통해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공유되는 정보들을 우리는 무한정으로 소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경계 넘기’는 불가피한 것인 동시에 가장 효과적인 전략일 것이다. 소비 속에서 일어나는 창조, 무수한 중첩을 통해 이루어진 예술 등 현대 예술의 주요한 양상들은 모두 이러한 ‘경계 넘기’의 차원이다.

 

출처
이미지-namu.wiki , laben.egloos.com
줄거리-네이버 영화
[최인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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