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프리다칼로 展

글 입력 2015.07.06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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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포스터 (2015.06.11).jpg
 

그리 맑지도 그리 흐리지도 않던 6월 29일,
올림픽공원에 있는 소마미술관을 찾았다.
녹음의 물결 한가운데 자리 잡은 미술관은 소박해보였다.

<절망에서 피어난 천재화가, 프리다 칼로 展>
다섯 개의 전시실과 비디오 아트 홀에 담겨있었다.
각 전시실은 그리 넓지도, 높지도 않고 아담했는데
전시를 느끼기에 아주 적합한 사이즈라는 생각이 들었다.
넓고 높은 화려한 홀에 그녀의 작품이 걸려있었다면 어쩐지 낯설었을 것 같다.


첫 전시실은 온통 붉은 색이었고
칼로와 리베라의 생의 연표가 벽면을 두르고 있었으며
그 위로 그들의 사진이 있었고
전시장 한 가운데에는 둘의 영상이 있었다.
영상 속 칼로는 행복해보였는데,
연표 속 그녀의 삶은 너무나 기구해서 확연히 대조되었다.
그 요동치는 삶이 예술가로서의 그녀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같은 여자로서 그녀의 삶은 찢어진 곳을 대충 얼기설기 꿰매놓은 상처처럼 아팠다. 
그래서였을까, 멀쩡하던 나는 갑자기 식은땀이 나고 어지러워
전시 내내 벤치에서 쉬었다 관람하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야 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관람한 것은 왜였는지 잘 모르겠다. 

두 번째 전시실은 대부분 그녀가 그린 자화상들로 차있었다.
수많은 칼로가 사방에서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표정들은 거의 비슷했다.
약간 도톰한 입술은 무표정하게 다물어져있었고,
시선은 눈높이와 비슷하거나 아주 살짝 아래로 향해 있었다.

그리고 눈동자는 먹먹했다.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하면서 차분해보이기도 하고,
체념하는 것 같기도 했다. 
닫힌 입 대신 눈으로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 살았단다.

그렇지만 그녀의 검은 깃 같은 눈썹만은, 눈이 어떤 감정을 담고 있더라도,
짙고 곧게 뻗어있었다. 
그래서 강인해보였다. 
아마도 그 눈썹은,
“이런 날들이 계속 된다면 차라리 내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게 낫지 않을까?”
라고 말하면서도,
 삶이 준 고난을 끝까지 이겨내려고 노력했던 그녀의 의지가 아니었을까.

세 번째 전시실은 리베라와 함께였다. 그녀는 리베라에 대해 
“매 순간 그는 나의 어린아이이자 갓난아기이며,
간순간, 매일이 내 존재 그 자체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 그를 과연 어떻게 표현했을지 몹시 궁금했다.
 
디에고.png▲ <우주, 지구, 디에고, 나, 세뇨르 솔로들의 사랑의 포용>, 프리다 칼로.

<우주, 지구, 디에고, 나, 세뇨르 솔로들의 사랑의 포용>이라는 작품이 가장 뇌리에 남았다.

디에고를 아기처럼 껴안고 있는 칼로,
그녀를 껴안고 있는 어머니 대지, 그리고 모든 것을 포옹하는 우주. 
붉은 드레스 때문에 잘 안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녀의 목에 난 상처에서 
붉은 피가 흐르고 있다. 어머니 대지의 목과 가슴부분에도 상처 같은 게 있고, 
젖이 눈물방울처럼 떨어진다. 

칼로가 겪었던 육체적, 정신적 고통들을 말해주는 듯하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녀는 리베라를 껴안고 있다.
그와 함께 있으면 한없이 아픈데도 놓지를 않는다. 
그녀에게 리베라는 그런 사랑이었나보다, 싶었다.
자신을 한없이 상처내지만 결코 놓을 수 없는 전부.
운명이라는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그 아픈 사랑을 느낄 수 있었지만,
이해할 수는 없었다.

네 번째 전시실과 다섯 번째 전시실은 각각 
리베라의 그림과 칼로가 입었던 멕시코의 전통의상,
 그리고 멕시코의 근대 미술을 주제로 했다. 
인간적으로 리베라를 도통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는 나여서, 
그의 작품들을 마주했을 때 느낀 부조화가 참으로 불편했다. 
그의 작품들은 어딘가 따뜻하고 순수한 면이 있었으므로... 
커다란 해바라기와 카라꽃, 투박한 느낌의 아이들이 편안했다. 
정치보다는 순수한 혁명정신으로 민중을 교화시키고자 벽화를 그려나갔던 그를 
존경할만하다고 느꼈다.

예술가로서의 그와 남자로서의 그를 나눌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디서 읽은 말마따나 그는 정말 이해할 수도, 
이해받으려 하지도 않은 괴물이었던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멕시코의 근대미술 작품들은 굉장히 좋았다. 
다채로운 수많은 색보다는 몇 가지 색들이 강렬하게 어우러지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혁명의 시대의 격동도 물씬 느낄 수가 있었다. 
나중에 따로 전시회가 열린다면 꼭 보러가고 싶다.


몸이 좋지 않아 비디오 아트홀을 가보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충만했던 시간이었다. 






서포터즈4기_최민희님.jpg
 


[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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