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울여행 [문화 전반]

글 입력 2015.07.06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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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큼, 여름이 다가왔다. 방학을 맞은 지도 벌써 십여 일 남짓. 내가 세운 방학 계획은 거창했다. 계획세우기가 취미이자 특기인 탓에 (입으로만 하는) 다이어트, 책 30권 읽기, 스마트폰 없이 지내기 등 번지르르하게 잘도 세워 놓았지만 막상 방학이 되자 지키는 건 몇 없다. 그러나 그중 하나 꼭 지키려고 하는 것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서울을 여행하는 것이다.

20년이 넘게 서울에 살았다. 그래서 서울을 잘 안다고 생각했고, 여행을 간다면 지방이나 해외를 떠올렸지 서울을 떠올린 적은 없다. 서울나들이라면 모를까, 서울여행이라고 말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이 계획을 떠올린 것은 신경숙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라는 소설을 읽으면서였다. 정윤은 이 도시를 하루에 두 시간씩 걸을 것을 결심한다. 이 도시를 알고 정을 붙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정말로, 그녀는 줄기차게 걷는다. 골목 구석구석을 지나기도 하고, 시청 앞에서 안국동으로, 명륜동으로 도시의 중심을 가로지르기도 한다. 시청, 광화문, 덕수궁, 안국동, 명륜동, 혜화동, 동숭동과 같은, 익숙한 서울의 지명들이 등장한다. 처음 읽고, 두 번째 읽고, 세 번째 읽을 때쯤, 나는 과연 서울을 많이 알고 있는지 문득 궁금했다. 나는 섬처럼 하나하나의 떨어져 있는 곳들로 지명들을 기억했다. 그러나 이 지명들은 모두 서울이었고, 이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서울을 잘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내가 아는 곳은 내가 평생 살아온 강서구의 어느 한 동네일 뿐 이 도시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제서야 나도 정윤처럼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도시를 알고 싶었다. 이 도시가 궁금했다.

자연이나 공공건축물을 거대한 규모로 포장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대지미술가 크리스토는 1985년에 프랑스 파리의 가장 오래된 다리인 퐁네프를 거대한 천으로 포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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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o and Jeanne-Claude
The Pont Neuf Wrapped, Paris, 1975-85
Photo: Wolfgang Volz
© 1985 Christo      


매일 그곳을 지나다니던 파리 시민들은, 2주 후 마침내 퐁네프의 포장이 철거되고 다시금 퐁네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자, 무척 놀랐다고 한다. 그들이 매일같이 지나다니던 그 다리가 아름다웠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크리스토와 그의 여러 포장 프로젝트를 보며 일상의 뜻밖의 발견이 삶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도 크리스토의 프로젝트가 가졌던 목표처럼, 포장은 하지 않더라도 이 도시를 일상생활을 하는 곳이 아니라 여행객의 입장에서 마치 새로운 곳을 여행하는 것처럼 이 도시를 보기로 했다.  

지도를 폈고 갈 곳을 찾았다. 첫 여행은 덕수궁에서 시작했다. 시청역에서 내려, 시청 앞 광장을 지나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을 구경했다. 가볍게 궁을 둘러보며 덕수궁 미술관 관람을 하고, 어렸을 적 엄마와 함께 갔던 한국금융사박물관을 지나 이순신 동상 앞에 다다랐다. 마음을 달리 하니 여유가 있었고 왠지 생경하기도 했다. 매번 무심하게 지나치던 것들을 애정을 갖고 둘러보게 되었다.
다음 여행은 이승만 초대대통령의 생가였던 이화장이다. 이 여정이 끝날 때쯤에 내가 서울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사는 이 도시, 서울을 좀 더 사랑하고, 더 많은 자부심을 갖고 있기를 바란다.


[이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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