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015년에도 '고양이를 부탁해' [시각예술]

글 입력 2015.06.3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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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무살이 되던 해 보았던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당시 나와 같은 연령대에 한번쯤 겪어 볼만한, 공감할만한 에피소드로 구성되어있어 흥미롭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20살이 된 영화 속 주인공들의 모습은 20대 모든 청춘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후, 영화를 다시 보았다. 스무살을 추억하려고 보았던 영화였지만, 추억하기에는 달라진 것이 별로 없었다. 영화를 보면서 크게 변하지 않은 우리들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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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먼저 신혜주라는 인물을 거론하고 싶다. 영화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 상대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면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여겨질 법한 인물이다. 인천에서 여상을 졸업하고 서울의 증권회사에 취직한 그녀는 비록 잔심부름을 도맡아하는 말단여직원이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뿌듯함과 책임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러나 학력과 학벌이 중시되고, 그것으로 대우받는 사회에서 혜주는 점차 자신의 일에 대한 회의감과 회사 내의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혜주의 안타까운 모습은 혜주와 팀장과의 대화 장면에서 잘 드러났다. 


“다른 여직원들은 다 야간대학 다니는데 혜주씨는 안가?”

“일하면서도 많이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팀장님한테 배우죠. 뭐. 팀장님은 제가 하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느낌이 들게 해주셔서 언제든 돕고 싶어요.”

“음.. 그치만 학위도 필요하지 평생 잔심부름이나 하는 저부가가치인간으로 살 순 없잖아”

“평생 잔심부름이나 하는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아무리 혜주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직무를 한다고 한들 사회는 그녀를 그저 여상을 졸업하고 잔심부름이나 혜주는 저부가가치인간으로 치부해버린다는 사실이 참 서글프게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혜주의 이런 상황이 지금의 20대에게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이야기일 듯 싶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고졸과 대졸의 대우, 임금, 인식 등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갈수록 학생들의 대학진학률이 증가하고, 실업계고 진학률은 감소하는 추세가 이러한 현실의 불평등을 잘 뒷받침해주는 증거로 느껴진다. 내가 대학에 온 것도, 나의 친구들이 대학에 온 것도 혹시 이런 사회의 시선 때문이 아닐까? 전적으로 이런 이유에서가 아니라도 은연중에 학력과 학벌에 대한 사회의 차별을 의식하고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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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인물은 유태희이다. 그녀는 큰 사우나를 운영하는 부모님 덕택에 친구들의 가정 형편에 비해 비교적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 덕분에 딱히 직업을 가지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또한 그녀의 성격상 한 가지 일에 얽매이거나 구속당하는 것을 싫어하는 자유로운 몽상가이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생활을 한다. 그녀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시인을 대신해 그의 시를 타이핑해주는 봉사활동을 한다. 그리고 그 시인에게서 따뜻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면 가족들의 시선은 늘 차갑기만 하다.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남의 일에만 정신을 쏟는다는, 집에서 놀고먹는 사람은 너뿐이라는 식의 가족들의 잔소리에 그녀는 계속 지쳐 간다. 그리고 그녀는 훌쩍 떠나버릴 계획을 한다.

 가족들로부터 소외당하는 태희를 보면서 사회에서 오는 계층적 위화감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가치관, 생각, 생활모습의 차이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차이를 조금씩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텐데 이러한 시도조차 하지 않는 태희가족의 모습이 어쩌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평범한 가족의 표본일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덧붙여, 태희와 뇌성마비 시인의 에피소드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본 점이 있었는데 바로 그시인의 ‘태도’였다.


“너도 이제 떠날 거지?

“너는 꼭 사람들을 널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으로 나누더라.”

“그럼 너나 좋아해?”

“누군가가 널 떠난 다고해서 널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야”


 시 원고가 마무리되자 태희가 떠날까봐 불안해하던 시인의 모습.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확인받고자하는 그의 모습. 그 모습을 보면서 앞서 그를 떠났을 수많은 사람의 얼굴이 스쳐지나가는 듯 했다. 단지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타인에게서 수없이 버림받았기에 지레 태희도 그들처럼 날 떠날까 걱정하는 그의 모습이 측은했다. 이런 시인의 모습도 일종의 사회적 불평등의 잔해, 상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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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서지영. 그녀는 소녀가장이다. 텍스타일에 소질이 있고, 유학을 떠나서 더 체계적인 공부를 하고 싶어 하지만 그녀의 집안 형편은 다 내려앉는 판잣집의 지붕 하나 고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다. 소위 말하는 비빌 언덕이라고는 그녀보다 형편이 나은 그녀의 고등학교 친구들뿐이다. 일하던 공장도 문을 닫았다. 그렇다고 변변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사정도 되지 못한다. 그 흔한 경리자리 조차 부모님이 안 계시므로 신원 보증이 안 된다며 거절당하는 처지이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녀의 얼굴에서는 웃음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녀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빈민층, 소외계층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잘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쳐보아도 항상 제자리인, 너무 어두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그런 모습들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평소에는 빈민층, 소외계층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산다. 지영이네 판잣집이 무너지기 전, 지붕이 내려앉기 직전 지영이 주인집에 도움을 구했을 때 그들은 그냥 모른척했다. 그리고 판잣집이 무너지자 사람들은 그제야 비로소 지영의 처지를 가엾어 하고 관심을 보이는 듯 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 주변에도 이웃으로부터 소외받은 빈민층, 소외계층이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는 많지 않다. 물질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먼저 마음을 여는 것, 계층 간의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부터 천천히 시작한다면 그 작은 일 하나가 지영과 같은 이들에게는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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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태희와 지영이 함께 떠나는 걸로 마무리 된다. 그러나 혜주, 태희, 지영 그리고 미처 다 적지 못한 비류와 온조까지 그들의 인생 여정은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교육이 사회이동의 수단이 된다는 것을 몸소 느낀 혜주는 직장을 다니면서 야간 대학에 진학을 하든, 직장을 그만두고 일반 대학에 진학하든 더 많이 배우기 위해 힘쓰고 있을 것이다. 거기에 그녀의 성실함이 더해져 온갖 심부름을 도맡아 하던 말단여직원에서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을 쌓은 커리어우먼으로 활동하고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태희는 아직도 어딘가에서 여행을 하고 있을 것 같다. 그녀의 엉뚱한 모험심과 타인을 편안하게 해주는 매력, 착한 마음씨라면 세계 어디에서든 어느 누구와도 친구가 되고 잘 살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든다. 그리고 그곳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이해해주고 차이를 인정해주는 멋진 사람을 만났을 것 같다.
 태희와 함께 떠났던 지영은 아르바이트와 텍스타일 공부를 병행하면서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갔을 것이다. 텍스타일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유명한 텍스타일 디자이너가 되어서 어렸을 적 자신과 같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공부에 배고픔을 느껴야했던 빈민층, 저소득층, 소년소녀가장 아이들을 후원하고 있을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 선하다. 부모님 그리고 한 세대 위의 조부모님 시절의 가난에서 벗어나 자립하여 자신의 꿈을 이루어낸 그녀의 성공담은 어려운 계층에 처한 아이들에게 큰 희망이 되어주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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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에 등장하는 고양이는 어쩌면 영화 속 주인공들, 우리 자신을 지칭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갈 곳 없이 거리를 헤매고 있는 고양이를 지영이 발견하고 혜주, 태희를 거쳐 비류와 온조에게 까지 전해지는 모습. 험난한 사회에서 방황하고 있는 어린 주인공들이 서툴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모습과 오버랩된다. 이렇게 영화는 사회에게 '아직은 미숙하고 서툰 청춘들이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2015년이 된 지금,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분명 어디에선가 이들이 겪은 것과 같은 어려움에 맞서고 있는 모든 청춘들이, 한 마리의 어린 고양이가 된 그들이 자신에게 다가온 그 성장통을 잘 이겨낼 수 있길 응원해본다. 



[황수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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