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라진 도시, 폼페이 - 「로마제국의 도시문화와 폼페이 전시회」

글 입력 2015.06.03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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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짐에 관하여


 

모든 것은 너무나도 쉽게 사라진다. 아침 해를 맞는 새벽이슬, 하늘 위에 떠있는 양떼 모양 구름, 거울 앞에 서있는 한 인간의 얼굴은 시시각각 변화하며 그 이전에 갖고 있던 모습을 지운다. 이러한 물질적인 존재들 뿐 아니라 개인과 집단의 의식과 무의식 속의 기억, 타인간의 관계, 도시와 국가의 사회문화 같은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것들도 예외는 아니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휘두르는 권력 앞에 그 무엇도 변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 때문에 사람들에게 영원의 가치는 드높아져 왔고, 자비한 시간의 횡포에 대항하고 순간을 고이 간직하고자하는 인위적인 노력이 이루어져 왔다. 그로서, 사진이나 비디오 카메라 등의 문명적 이기가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오직 마음의 위안을 달래기 위한 대체물이자 사라진 추억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의 산물에 불과하다. 그것들에는 밀랍인형에게 말을 거는 듯한 허무함이 깃들어있다. 순간을 사라지지 않도록 영구히 고정시키는 시도가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이토록 자연이 자연에 속한 모든 것들로 하여금 자연스러운 사라짐이라는 섭리를 따르도록 하는 힘은 강력한 것이며, 태초부터 지금까지 감히 거스를 수 없는 순리이다.

 

인류의 옛 시간이 자연스럽게 사라지며 그 위에 새 시간이 축척된 기록을 모은 것이 바로 역사이다. 로마시대의 정치가인 마르쿠스 시세로(Marcus T.Cicero)는 역사란 때의 경과를 증명하는 증인이고, 역사는 현실을 비춰주고 기억력을 튼튼하게 해주며 우리에게 고대의 소식을 가져다준다(History is the witness that testifies to the passing of time; it illumines reality, vitalizesmemory, and brings us tidings of antiquity)라고 했다. 사라진 시간들은 사라짐과 동시에 무의미로 전락하는 게 아니라, 그 가운데 새로운 시간을 위한 지혜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서구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토스(Herodotus)가 역사관을 말하길 인간으로부터 생겨난 것들이 시간에 의해 망각되지 않도록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던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망각의 허망함으로부터 인간의 행적을 구해내면, 사라진 시간들로부터 역사의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다. 그로서 사라짐의 의의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인류은 모래성 같은 삶의 허무를 한결 덜어낼 수 있기도 하다. 로마제국의 도시문화와 폼페이 전시회는 내게 이렇게 사라짐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전시회였다.

 



 

사라진 것들의 아름다움


 

4월을 여는 날, 옛 그리스 신전들의 위용만큼이나 거대하고 세련된 공간의 분위기를 갖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들어섰다. 아름다운 예술과 풍요로 가득했지만 끔찍하게 멸망한 고대 로마 제국의 도시 폼페이의 건축, 조각, 미술을 선보이는 로마제국의 도시문화와 폼페이 전시회를 보기 위해서였다. 평일 낮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전시실에 몰려 다소 부대꼈다. 그래서 넓은 면적과 확 트이게 공간이 구성된 대규모전시인데도, 쾌적한 기분으로 관람하지는 못했다. 인구가 약 2만 정도였던 폼페이는 특별히 중요한 도시는 아니었지만, 로마 귀족들의 정원이 딸린 별장이나 부유층의 빌라들이 많은 향락의 장소였다고 한다. 그래서 전시회 제목처럼 전시된 폼페이의 유적과 유물들을 토대로, 화려하고 특유한 로마의 도시문화 일면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당시 모습을 재현한 성고상과 조각품, 벽화, 장신구등 300여점이 도시 풍경과 사람들의 일상, 대저택에서의 삶과 예술, 경제활동, 식생활, 의술과 장례문화, 신과 숭배 의식 등을 다양하게 분류된 카테고리로 전시하고 있었는데, 특히 구석에 마련된 성인출입구역이 눈에 띄었다. 그 구역에서는 성에 관한 조각품들만을 모아 선보이고 있었고, 폼페이 도시인들의 성 문화가 고스란히 잘 드러나는 작품들이었다. 다만, 양이 좀 적은데다가 전시기획 방향에 맞춰 수위조절을 한 느낌을 받았다. 폼페이의 성문화가 무척 개방적이었다는 사실을 듣고 온 터라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다. 다른 조각과 회화작품들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동시에 기능성도 갖추고 있어서 실생활에 예술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분위기를 느꼈다. 귀족들의 대 저택을 장식했던 멋진 작화의 벽화나 신화 속 인물과 장면이 세밀하게 조각된 기둥 등이 그들의 문화적 수준을 짐작케 했다. 그 중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은 푸른 색조의 정원 속 새와 분수, 사람 얼굴이 조각된 기둥이 정밀하게 그려진 정원이 그려진 벽화이다. 시원한 색과 파릇파릇한 식물의 표현이 실감나서 실제 바깥을 산책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예술콘텐츠연구 강의 시간에 배웠던 3차원 표현의 단축법이라든가 눈속임 효과 등의 표현 기술들이 전시물들에서 묻어나, 머릿속에서 다시 한 번 복습하는 기분이 들었다. 대부분의 고대회화들이 거의 소멸해버린 반면, 폼페이의 벽화들은 화산재 더미 덕에 보존이 잘 된 탓에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올 수 있었다는 게 무척 아이러니하다. 그들이 겪은 불행 덕에 나 같은 후대 사람들이 로마시대 예술의 뛰어난 수준에 감탄하며 음미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관람객들은 이같이 아름다운 도시 폼페이의 생활 문화상 관람을 거쳐 마침내 최후의 날코너에 도달하게 된다. 이 전시를 찾은 목적은 폼페이의 도시모습과 생활상을 보고 싶었기도 하지만, 비극적인 결말의 구체적인 정황이 제일 궁금한 것이었기에 내게 이 코너는 전시의 하이라이트와도 같이 느껴졌다. 먼저, 폼페이가 멸망한 역사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가보고자 한다. AD 79824, 오후 1시경 나폴리 만 연안에 위치한 베수비오 화산이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이 폭발로 발생한 화쇄난류(*화산 폭발로 생긴 고온의 물질들이 가스 수증기와 뒤섞여 지표면을 따라 흐르는 것)가 시속 160킬로미터로 이 일대의 도시인 폼페이와 에르콜라노를 덮쳤고, 도시는 4미터의 화산재 속에 잠기고 말았다. 그 다음날이 되어서야 이 끔찍한 재해는 잦아들었지만, 2000명이 사망한 엄청난 규모의 피해가 도시를 휩쓸고 지나간 후였다. 그 후 1748년 경 부터 발굴이 시작되어 현재 옛 도시의 일부가 드러났다고 한다. 다양한 포즈로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며 죽어간 군상들이 내 마음을 슬프게 뒤흔들었다. 그 중엔 서로를 감싸주는 연인이나 자식을 지키려던 여인, 목줄이 매여 도망가지도 못하고 발버둥 치다 죽은 경비견도 있었다. 어떻게 이들의 모습이 보존될 수 있었나 궁금했는데, 화산재 속 빈 공간에 석고를 부어 형태를 재현하는 기법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런 기법의 결과물을 바로 캐스트라고 했다. 캐스트 옆의 와이드 텔레비전 스크린에서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폼페이가 불과 재로 뒤덮이는 모습이 3D 애니메이션으로 상영되고 있었다. 그 영상은 너무도 안타깝고 아찔한 광경이었고, ‘실제 저 일을 당했던 폼페이인들은 얼마나 지옥 같았을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절로 감정이입이 되었다. 캐스트들은 우리에게 그 오랜 세월 전의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이 손발이 있었고, 직업이 있었으며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들도 살고 싶은 갈망과 자연재해 앞의 공포 또한 있었을 것이다. 얼마 전, 나는 일본에서 일어난 지진 때문에 부산에까지 여파가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산과는 먼 서울에 살면서도 두려움을 느꼈는데, 직접 자연재해를 겪으며 죽어가야 했던 이들의 심정은 짐작할 수조차 없다. 오직 상상으로 겪어보는 죽음의 공포와 사라진 도시의 멸망과 허무를 곱씹으며 전시실을 지났다.




사라진들 잊힐리야

 

 

후대에 들어 다시 곡식이 자라고 이 황무지에 다시 녹음이 돌아왔을 때,

사람들이 이 아래 도시와 사람들이 묻혀있다는 것을 믿겠는가?

과거에 그들의 땅이 바다에 인접해있었다는 사실을 믿겠는가?

 

스타티우스4,4,78-86

 

기획전시실 벽면에 있던 문구는 후대 사람이자 전시 관람객인 나에게 계속 말을 건네고 있었다. 불행한 운을 타고난 가엾은 사람들이 옛날 옛적의 타인들이 아니라 바로 본인이 될 수 있노라고. 폼페이는 왜 사라져야만 했을까? 귀족들을 위한 향락의 도시이기에 3만 가까운 인구가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던 것일까? 운명적 단죄의 비극이라기보다, 그저 운이 좋지 않았던 것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류는 자연의 한 종으로서 순환의 불멸성을 갖지만, 인간은 개체로서의 유한성을 인식하기에 자기 이야기를 만들기에 집착한다고 했다. 우리 개인의 수명은 유한하기에 각자가 자기 삶을 중요하고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하고 있는 것이다. 폼페이인들처럼 운이 나쁘면 준비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지만, 결국은 모두 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대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다'라는 고대 그리스의 비극 시인 소포클레스가 했던 말처럼 우리도 지금 이 순간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여겨야한다. 사라지는 것들의 가치는 그것이 사라짐으로서, 그리고 사라짐의 유산을 남김에 있기 때문이다. 매일을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닌 소중한 선물이라 생각하고,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동물처럼 본능과 욕구만을 쫓아가기 급급해, 사람다운 사유와 자각 없이 살아가고 있지 않았는지 돌이켜 볼 수 있었다. 로마제국의 도시문화와 폼페이 전시회관람은 나라는 존재의 방향과 목적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진정으로 인간다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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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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