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의 침묵 (The Silence Of The Lambs)」(1991)
물을 무서워하는 친구가 하나 있다. 수영을 할 때는 물론이고, 심지어 세수를 할 때도 공포를 느낀다고 한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유치원도 입학하기 전, 목욕탕에 빠진 경험이 있었던 것이 그 이유인 것 같다고 한다.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충격적인 사건이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면 사고로 인한 정신적 외상, 즉 ‘트라우마’는 지속적이며 언제든 튀어나올 준비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비단 필자의 친구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는 대체로 어떠한 형태로건, 어떠한 크기로건 트라우마를 경험한다.
오늘 다룰 영화는 「양들의 침묵 (The Silence Of The Lambs」(1991)이다. FBI 훈련생 스탈링이 연쇄살인마 버팔로 빌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천재 정신과 의사이자 끔찍한 살인마인 한니발 렉터를 만나 점차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이야기이다. 개봉한지 20년이 넘었음에도 명작이라 불리는 점에서 볼 수 있듯, 영화는 스릴러라는 장르적 특성을 충분히, 매력적으로 수행하였고, 다시금 곱씹어볼 수 있는 요소가 많이 드러난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클라리스 스탈링이라는 인물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스탈링은 겉으로 보기엔 매력적이고 훌륭한 훈련생이나 사실은 어린시절의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녀가 지닌 아픔과 이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트라우마와 연결지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스탈링은 정식 FBI는 아니고 훈련생이고, 한니발 렉터는 천재이자 싸이코라는 점에서 큰 인상을 주지만 기본적으로는 정신과 의사이다. 훈련생은 아직 풋내기이며 성장을 마치지 않은 존재이다. 스탈링은 뛰어난 능력을 지녔지만 아직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성장을 이루지 못한 인물로 이는 그녀가 훈련생이라는 점과 연결된다. 훈련생과 정신과 의사라는 둘의 위치는 어느 정도 둘의 만남이 스탈링의 트라우마 치유, 혹은 상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마련해준다.

한니발이 스탈링에게 처음으로 한 조언은 ‘Look deep within Yourself' 이다. 사건의 열쇠가 있는 창고 이름이기는 하지만 ’Yourself'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니발은 당장 시간이 급한데 스탈링의 과거를 캐묻는 등 계속해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한다. 범인의 실제 이름, 거주지, 외모보다도 사건 파일을 살펴봐야 한다고 하는 것 역시 문제 해결의 열쇠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는 말과도 이어질 것이다.
스탈링은 한니발이 언급한 ‘Yourself'라는 말을 추적하여 동명의 물품 보관소를 찾고, 그곳을 방문한다. 쉽게 열리지 않는 문을 뚫고 창고로 들어가는 것을 통해 스탈링은 스스로의 내면과 조우하는 기회를 맞이한다. 그 과정은 못에 긁혀 다리에 상처가 생기는 것과 같이 고통스럽다. 그렇게 들어간 내부는 낯설고 잡스럽다. 이는 무의식과도 닮아 있다. 창고 속의 차, 즉 내부 속의 내부까지 깊이 들어가서야 스탈링은 무언가를 발견한다. 그것은 동화책과 한 남자의 시체였다.

한니발은 자신을 보라는 말과 함께 Miss Mofet을 찾으라 했다. 스탈링은 Hester Mofet이라는 이름을 찾고 한니발이 말장난을 한 것임을 안다. Hester Mofet을 재조합하면 The rest of me이고 이를 Miss와 연결지으면 몸의 나머지가 없다는 말과 같다. 이는 옛 기억이자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을 꺼리고, 트라우마를 방치하는 스탈링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내면의 일부가 부재한 것이다. 이에 한니발은 스탈링의 과거에 대해 계속해서 묻지만, 스탈링은 이에 대해 대답하길 꺼려하면서도 사건 정보를 파헤치기 위해 대답한다. 심리학자 융은 일련의 단어를 읽고, 연상되는 최초의 단어를 대답하는 실험을 했다. 그가 이 실험 중 발견한 것은 단어를 떠올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 때가 종종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것이 무의식이 연상을 방해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스탈링이 한니발의 어릴 적 가장 아픈 경험, 아버지를 잃은 후의 생활, 목장을 떠난 이유 등을 묻자 스탈링은 이전과는 달리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 머뭇거림은 융의 발견에서 드러나듯 그녀가 묵혀놓은 기억을 자극하자 방어하려는 무의식이 그 연상을 방해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겠다.

박사가 계속해서 내부에 주목할 것을 강조하고, 스탈링의 기억을 자극하는 것은 프로이트의 트라우마 치료법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스탈링은 악몽을 통해 그녀가 두려워하는 기억을 안다. 프로이트는 트라우마의 원인을 알더라도 이를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로 인한 고통을 해결할 수는 없다고 본다. 이에 필요한 것이 ‘훈습(working through)'라는 치료법인데, 이는 바꿀 수 없는 과거에 대해 반복함으로써 진정으로 애도하는 과정을 말한다. 즉, 상처를 마주하지 않으면 그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스탈링은 박사의 상담 외에도 사건 해결 과정에서 이 ’훈습‘의 과정을 거치는 듯 보인다. 양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을 연쇄살인마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것이다. 스탈링이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건과 연쇄살인마 사건을 연관 지은 것은 희생자가 물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약한 양 혹은 여자라는 점 때문이 아닐까? 납치된 캐서린이 감금 중 데리고 있는 푸들은 양을 연상시키며, 캐서린의 “날 버리고 가지 마”라는 비명은 스탈링을 괴롭히는 악몽 속 양의 비명과도 닮아 있다.
기억의 되새김질, 혹은 내면에서의 방황은 작품의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더욱 드러난다. 스탈링은 범인의 집을 찾고 그와 대치하는 상황에 놓인다. 불이 꺼지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범인은 야간투시경을 통해 당황하는 스탈링의 모습을 지켜본다. 범인이 바로 앞에 있다는 상황이 주는 극도의 긴장감과 더불어 방황하는 스탈링의 모습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녀의 모습은 어쩐지 아픈 기억과 마주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내면의 방황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결국 스탈링은 범인을 잡는다. 범인을 죽이고 캐서린을 구한 것이다. 그녀는 그녀의 과거의 재현에서 목장의 주인의 도살을 막고, 양을 구했다. 이에 캐서린과 양은 비명을 멈춘다. 상처를 극복한 스탈링은 고치에서 변신한 나비와도 닮아 있다. FBI 정식요원이 된 그녀는 더 이상 풋내기가 아니다. 성장한 것이다.

작품 제목인 ‘양들의 침묵’은 영화의 결말을 연상시킨다. 포스터의 나비 역시 결국 스탈링이 아픔을 극복할 것을 의미한다. 그녀가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상처를 마주하고, 이를 넘어서 기억을 재현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통해 그 기억에 대한 방어 혹은 집착을 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과거와 마주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양들의 침묵 (The Silence Of The Lambs)」(1991)을 통해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