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베를린 한 가운데에 위치한 거대한 문화 공간, 박물관 섬 [해외문화]

글 입력 2015.04.30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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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독일 베를린에서 살고 있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우연한 기회에 4년간 독일에서 살게 되면서 유럽의 문화를 몸소 체험해볼 수 있었다. 특히 독일에서 미술을 공부하신 한국인 선생님과 함께 격주로 진행되는 박물관 수업에 참여하면서 고대 조각상부터 현대 미술까지 여러 분야의 미술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베를린에는 정말 수많은 박물관이 있다. 내가 살던 작은 동네인 Dahlem에도 민족학 박물관 그리고 미군 박물관이 있었다. 이번 오피니언에서는 베를린의 가장 대표적인 박물관, 바로 박물관 섬 Museum Insel 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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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섬은 이름 그대로 박물관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섬으로 베를린을 가로지르는 슈프레 강 바로 옆에 위치한다. 박물관 섬 근처에는 18세기에 지어진 베를린 대성당 Berliner Dom 과 넓은 잔디 정원인 루스트가르텐 Lustgarten 도 있어서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과 시민들이 찾고 있다. 맑은 여름날 이곳에 가면 돗자리를 편 채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베를리너들을 만날 수 있다. 주말이면 박물관 앞 거리에서 벼룩시장이 열리곤 한다. 오래된 책, 유행이 지난 비디오들, 직접 그린 그림, 동생이 입던 원피스, 시어머니께서 물려주신 그릇까지 온갖 물건이 모여 있다. 비록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라 저렴한 가격은 아니지만 손때 묻은 물건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치즈나 호박씨가 붙은 브레첼 brezel – 가운데에 매듭이 있는 하트 모양의 독일 빵 - 을 팔거나 커리 부어스트 curry wurst – 카레가루와 케찹 소스에 버무린 소시지 - 를 파는 상인들도 만날 수 있다. 독일에서만 맛볼 수 있는 길거리 음식이니 한 번쯤 먹어보기를 추천한다.

박물관 섬에는 구 박물관 (Altes museum), 신 박물관 (Neues Museum), 국립회화관 (Alte National Gallerie), 보데 박물관 (Bode Museum) 그리고 페르가몬 박물관 (Pergamon Museum), 이렇게 총 5개의 박물관이 있다. 각 박물관 건물들은 역사와 건축, 예술을 유기적으로 잘 연결하며 그 독특한 매력을 내뿜고 있다. 5개의 박물관은 모두 1842년부터 1930년 사이에 만들어진 후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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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박물관 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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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대성당과 루스트가르텐 


먼저 구 박물관은 1825년에서 1828년까지 3년에 걸쳐 5개의 박물관들 중 가장 먼저 지어졌다. 베를린 대성당과 루스트가르텐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서 건물 입구의 넓은 마룻보와 계단에는 많은 사람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앉아있다. 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은 로마의 판테온을 본뜬 모습으로 고대 그리스 신전을 떠오르게 한다. 본래는 이 박물관은 프로이센 왕가의 예술품 보관 장소로 왕실 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들을 형상화한 조각과 목판 초상화 등 고대 컬렉션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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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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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페르티티 흉상


신 박물관은 조금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외부는 구 박물관에 비해 평범해 보이지만 내부의 장식은 호화롭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불이 나 외벽만 남기고 폐허가 되었지만 2009년 복원 후 재개관했다. 신 박물관에서는 고대 이집트의 예술품, 생활용품, 미라 등을 만날 수 있다. 지하에서부터 올라오면서 시대별로 차근차근 둘러볼 수 있는데, 특히 이집트 고대 조각상들의 수와 종류가 어마어마하다. 벽화들과 모자이크 타일들까지 통째로 옮겨져서 각 층마다 전시하고 있다. 신 박물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미술품은 바로 네페르티티 Nefertiti 조각이다. 기원전 1340년 전에 만들어진 네페르티티 조각은 이집트 제18왕조의 왕 이크나톤의 왕비의 흉상이다. 네페르티티는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이집트의 미녀로 알려져 있다. 석회석에 채색을 한 약 50cm의 흉상의 섬세함과 아름다움은 현대의 첨단 기술로도 따라잡기 힘들다. 왼쪽 눈동자가 미완성 상태로 남겨져있지만, 화룡점정 – 그 눈동자를 완성시키는 순간 그녀가 살아 움직일 것 같다. 네페르티티 흉상은 1912년 이집트에서 독일 고고학자 루트비히 보르하르트가 밀반출한 문화재로 이집트 정부가 지속적으로 반환을 요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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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회화관


국립 회화관은 총 1600여점의 회화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네, 모네 등 유명한 화가의 작품들도 소장하고 있다. 외관은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모양이며 건물 앞 쪽에는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청동 기마상이 세워져있다. 신 박물관과 같이 전쟁으로 인해 전소되었다가 2001년 12월에 다시 문을 열었다. 총 4층으로 설계된 건물으로 1층에서 고전주의 조각품과 사실주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2층에서는 특별 전시와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고 3층에서는 상설 전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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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데 박물관


보데 박물관은 먼저 그 화려한 외관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이끈다. 네오 바로크 양식으로 만들어졌고 돔 천장의 창문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으로 내부 또한 아름답게 빛난다. 밖으로 나오면 슈프레 강의 강바람을 맞으며 베를린 TV 타워를 멀리서 감상할 수 있다. 이 곳에서는 이집트부터 비잔틴, 중세, 로코코까지 다양한 문화 양식의 조각품을 볼 수 있다. 황금으로 덧칠한 것, 나무를 깎아서 만든 것, 대리석을 세밀하게 다듬은 것, 청동으로 만든 것까지 갖은 정성이 바쳐진 미술품들을 마주하면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성모 마리아, 아기 예수 등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이 조각의 주된 주인공이다. 박물관을 가기 전에 간단한 성경 이야기와 각 인물들의 상징을 알아보고 가는 것도 좋을 듯싶다. 조각들을 보며 누가 누군지 알아맞추는 즐거움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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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가몬 박물관의 이슈타르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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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가몬 박물관의 제우스 제단


마지막으로 페르가몬 박물관은 개인적으로 너무나도 좋아하고 또 몇 번이고 다시 가고픈 박물관이다. ‘페르가몬’은 고대 헬레니즘 시대에 터키 연안에 있던 도시로 그 곳의 유적을 그대로 옮겨 전시해둔 곳이 바로 페르가몬 박물관이다. 몇 개의 미술관에 분산되어 있던 전시품들은 집결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1930년에 완성되었으며 박물관 섬 건물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처음 박물관 안에 들어가면 거대한 제우스 대제단이 관람객을 압도한다. 마치 그리스에 온 것처럼 웅장한 제단을 보고 있으면 도대체 어떻게 옮겨 왔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높이 세워진 대리석 조각들과 묵직한 기둥과 계단들 모두 페르가몬에서 이전한 것이다. 좀 더 깊숙이 안으로 들어가면 바빌론 최고의 유산인 이슈타르 문이 있다.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거대한 크기의 벽돌문은 아직까지 그 찬란한 푸른빛과 황금빛을 그대로 띄고 있고, 벽에 새겨진 신화 속 동물들과 바빌론 특유의 문양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이슈타르 문은 벽돌 하나하나에 번호를 매긴 후 독일로 가져와 순서대로 조립했다고 한다. 문을 지나 한 걸음씩 걸어가다 보면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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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한 복판에 위치한 박물관 섬을 통해 베를린은 한 층 품격 있는 예술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다양한 박물관이 한 곳에 함께 있어서 관광객들이 다니기 편리하고, 도시 중심부에 위치해 교통이 편리하고 베를린 시민들 또한 어렵지 않게 방문할 수 있다. 건물들은 고대 양식으로 지어졌지만 그 모습이 슈프레 강과 푸른 루스트가르텐의 분위기와 잘 조화되어 현재 베를린의 모습과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양한 시대와 문화에서 탄생한 문화재들을 통해 문명 발전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며 과거로 돌아가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박물관 섬은 베를린의 랜드마크이자 관광객과 시민 모두를 만족시키는 문화 공간으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하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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