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 경계의 자리
한국화는 지난 100여 년 동안 끊임없는 담론을 생산해냈다. ‘한국화’라는 용어 사용의 범위와 정당성, 작가와 작품을 분류하는 기준의 모호함, 급기야 한국화와 서양화의 경계를 없애고 회화로 통합해야 한다는 용어 존폐의 위기까지 위태로운 행보를 거쳐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이후 스스로를 ‘한국화가’로 부르는 젊은 세대의 작가들은 전통성과 현대성이라는 이분법적 딜레마에서 한 발 물러나 끊임없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하며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 5년간 한국화 담론의 흐름에 따라 (재)한원미술관의 화가전도 많은 변모를 거쳐 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동시대 미술의 흐름 속에서 소통할 수 있는 매체의 힘과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그 근간에는 현대의 감성과 정서를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방식으로 풀어가는 작가들이 존재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한국화’라는 매체에의 주목이 아닌 그 이면에 담긴 예술성과 정체성을 발견하는 일이다.
2015년 그리기의 즐거움: 畵歌《경계의 자리》전은 ‘나’의 이야기이자, ‘나’를 둘러싼 주변의 이야기, 나아가 주변을 에워싼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이야기이다. 표현 매체의 뿌리를 전통적 재료에 두면서도 내용면에서 동시대 의식의 흐름과 함께하는 참여작가 3인 김남수, 문기전, 이나림은 모두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하여 주변 세계와의 관계에 질문을 던진다. 외부와 만나 자신 내부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이들의 시도는 가장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창조의 근원인 ‘봄(vision)’의 행위를 근간으로 한다. 이들에게 ‘봄’이란 세계 안에서의 체험이자 모든 감각을 동원한 순수한 경험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
예술가들에게 있어서 ‘본다’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그들에게 있어 시각은 ‘봄’을 위한 유일무이한 감각이 아니며 들리는 것, 느껴지는 것, 향기 등 모든 감각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대상을 진정으로 발견한다.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 주체와 객체와의 경계를 허물고 사물을 보는 것을 넘어 사물 사이에 상호 침투하여 역동적으로 교차하는 관계에 주목한다. 그리하여 보는 주체인 화가 자신과 보여지는 것, 즉 화가가 바라보는 세계 사이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심오하게 통찰하여 예술로써 재현하는 것이다.
“숲 속에서, 숲을 바라본 것은 내가 아니었다는 것을 자주 반복해서 느꼈다. 어느 땐가 여러 날에 걸쳐 나는 나를 바라보고 있고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이 나무들이었음을 느꼈다. 나 자신은 말을 들으며 거기에 서 있었다. 화가는 우주에 의해 꿰뚫어져야지 우주를 꿰뚫으려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나는 믿는다. 나는 내적으로 가라앉고 매장되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여기에서 솟아 오르기 위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1]
[1] 조광제,「메를로 퐁티의 회화의 존재론과 존재론적인 회화」,『미학대계 제2권 미학의 문제와 방법』, 미학대계간행회, 2007, p. 627.
앙드레 마르샹(Andre Marchand, 1907~ )의 위와 같은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화가란 존재의 근본적인 영역을 내면의 눈을 통해 보고 느끼고 대화하는 존재이며 예술은 그것의 시각화된 표현이다. 그들이 보고자 하는 것이 자립적으로 보여지는 것이 불가능한 비가시적인 것일지라도, 오히려 보이는 것 이면에 숨어 스스로를 대변하며 존재한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 Ponty, 1908~1961)유고집 제목이기도 한『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개의 개념이지만 그는 가시성과 비가시성을 이분법적으로 구별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은 ‘무(無)’가 아닌 부재일 뿐이며, 보이는 것에 의해 열리는 또 다른 차원성이라고 정의하였다.[1] 화가는 세계와의 경험을 바탕으로 각자의 매체를 통해 이 부재에 가시성을 부여하는 존재, 즉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통찰력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
[1]한정선,「메를로-퐁티의 파울 클레 : 그림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한다」,『철학과 현상학 연구』, Vol. 35, 2007, p. 55.
경계의 자리에서 존재를 탐색하다
6번째 화가전의 참여작가 3인은 모두 ‘비가시적인 어떤 것’을 본다. 김남수는 숲을 바라본다.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나무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는 숲은 고요하지만 그 안에는 많은 움직임을 내포하고 있다. 요란하지 않은 숲의 움직임이 빚어내는 은은한 변화는 깊고 그윽한 풍취를 돋운다. 작가는 깊은밤에서 동이 틀 무렵까지 만물이 잠든 새벽 시간의 숲에 주목한다. 낮도 밤도 아닌 모호한 시간성을 지닌 새벽은 인간의 의식이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는 시간대이기도 하다. 시공간이 멈춘 듯한 몽환적인 새벽 숲에서 그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사유에 몰입하여 삶을 성찰하고 끊임없이 정체성을 찾아나간다.
사유의 흔적이 축적되어 드러나는 존재의 현존성은 수묵이 발현하는 신묘(神妙)한 색과 우연하면서도 인위적인 필(筆)의 움직임에 한지의 결이 더해져 더욱 풍부하게 발현된다. 먹과 물이 혼합하여 얼룩지고 번지는 과정, 의도적으로 필(筆)의 흔적을 드러내고 뭉개는 모든 과정은 작가의 사생과정에서 축적된 숲의 단상이며 숲과 작가와의 교감의 흔적이다.
문기전은 삶 이면의 내재적 폭력성에 주목한다.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시나브로 죽음에 가까이 다가간다. 유한한 시간의 소멸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삶은 수많은 사회체계와 집단 관계로 얽혀 있다. 또한 문명의 발달로 과잉 정보가 범람하고 막대한 에너지가 소비되는 현 시대에 우리는 깨어있는 모든 시간을 기계에 의해 측정, 제한당한다. 작가는 죽음과 삶이라는 근원적 질문에서 시작하여 현대 사회가 주는 이러한 억압된 요소들을 ‘보이지 않는 폭력’으로 해석하고, 생성과 소멸의 불가분성을 바탕으로 한 삶의 시간 속에서 미처 인식하지 못한 채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자신과 타자에 모두 질문을 던진다.
그는 한국화 질료의 특성을 잘 살려 추상적인 ‘폭력’의 이미지를 형상화시킨다. 여기에 유토피아를 갈망하는 현대인의 의지-기쁨, 행복, 여유로움 등-를 의도적으로 극명하게 대조하여 한 화면에 그려낸다. 돌가루와 라바바인더, 호분으로 이루어진 표면 위에 겹겹이 색을 쌓아 올리고, 수묵의 번짐 효과를 더하여 강렬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의 그림은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오늘도 유토피아를 꿈꾸는 현대인들에게 참된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다. 나아가 진정한 유토피아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허무한 이상향이 아닌, 삶 속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희망적 존재임을 일깨운다.
이나림은 작가 자신이 생활하는 공간 속 사물의 움직임을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그려낸다. 작가가 바라보는 주변 공간은 무심한 듯 흘러가는 우리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삶 안에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제도와 사회적 체제에 대해 우리는 그것이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생겼는지 크게 의식하지 못한 채 늘 존재해왔던 것 같은 객관성을 부여한다. 삶의 매 순간을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체제의 힘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렇게 제도화된 사회의 틀 안에서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주변 사물의 움직임에 빗대어 주체적인 삶의 의의에 대해 고찰한다.
작가의 시선에 의한 대상의 지속적인 관찰은 해체와 재구성을 거쳐 드로잉적 요소로 한 화면에 중첩된다. 장지에 먹을 기본으로 하되, 연필과 목탄을 함께 사용하여 그리고 지워내고 다시 그려 넣기를 반복한다. 그의 작업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축적된 결과물 이전에, 수동적인 움직임을 그려내는 반복적인 행위 자체이다. 그리기의 행위를 통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찾아나가는 그의 행보는 미완의 열린 결말이며 다음 단계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상 3인 작가는 우리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한다’는 예술의 본질을 깨닫게 한다. 존재에 대한 사유의 흔적을 축적하여 새벽 숲의 이미지로 형상화시키는 김남수, 삶 속에 존재하는 죽음과 현대사회가 야기하는 보이지 않는 폭력을 유토피아적 모티브와 결부시켜 표현하는 남기전, 짜여진 틀 속에서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일상 공간 속 오브제에 빗대어 그려내는 이나림, 이들이 표면적으로 그려내는 것은 모두 다르지만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그들만의 시각으로 보고 느끼고 해석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지닌다. 이번《경계의 자리》전을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잠들어 있는 삶에 대한 의식이 깨어나기를 기대한다. 나아가 보다 적극적인 반성과 성찰을 토대로 존재와 세계와의 관계에 대한 사유의 폭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껍질이 아닌 내면을 보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의 자리를 끊임없이 탐색하는 3인 작가의 여정은 우리에게 일상적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활로가 되어줄 것이다.
(재)한원미술관 큐레이터
이 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