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커뮤니티를 둘러보거나 뮤직 앱의 공개앨범들을 보면 기분이나 상황에 따른 다양한 음악 추천 목록들을 볼 수 있다. 벚꽃이 한창인 요즘은 ‘봄바람에 몸을 맡기며 듣는 음악’ 혹은 ‘벚꽃을 걸으며, 사랑의 설렘을 담은 곡’이라든지, 봄비에 어울리는 ‘빗소리가 따스하게 느껴질 때 듣는 음악’같은 리스트들이 가득하다. 걔 중에는 ‘남친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 또는 ‘연애 감정 솟음 치는 달달 음악 모음’과 같이 거부감을 일으키는 앨범 목록들도 다수 눈에 띈다.
‘내가 카페를 낸다면, 이런 노래!’와 같이 소상공인들의 영업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목록도 있고, ‘다이어트!! 시작해볼까?’처럼 더 이상 다이어트가 혼자만의 외로운 일이 아님을 위로해주는 따뜻한 목록들도 가득하지만, 그래도 역시나 가장 인기 있는 건 전국의 짝사랑 마니아들을 응원하는 ‘너는 모르는 슬픈 나의 짝사랑 이야기’라든지, 애절한 이별을 노래하는 ‘너 잘 지내지? 아프지는 말고..’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말이다. 왜 ‘나쁜 남자(혹은 여자) 만나서 속 터질 때 듣는 노래’ 같은 앨범은 없는 걸까.
썸이든 연애든 이별이든. 그 노래들도 다 좋은 여자 혹은 남자를 만났을 때나
‘나 지금 너무 설레고 두근거려. 너 언제 고백할거얌?’
‘세상에 하나 뿐인 너를 위해 하나 뿐인 내가 있잖아. 사랑해.’
‘그래. 듣고 있어? 많이 사랑했다. 내가 없어도 항상 잘 지내.’
라는 기분으로 듣는 거지.
네이트판이나 주변친구들만 봐도 사랑 때문에 속터지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구썸남 구썸녀 구남친 구여친에게 배신 당했다고
일주일 내내 친구 붙잡고 하소연 해봤자 나만 더 비참해 지는거 아닌가.
때론 시보다 가락까지 더해진 노래 가사가 더 심금을 울리기도 한다는 사실.
목소리를 타고 귀에 박혀 오는 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심상치 않다.
이 사람.. 나 보다 심각한걸..
달콤하고 간질간질한 음에 반전으로 속 터지는 가사부터
굿을 추천해주고 싶은 가사 속 주인공까지.
일주일 내내 들어도 들어도 매일 분노가 새롭게 생겨나는 노래.
방 문 닫고 이어폰 꽂고 가족들 몰래 끅끅 울면서 듣는 노래.
일주일 동안 한 곡씩 무한 재생 해보자.
월요일 아침 8시 30분 느긋하게
아메리카노. 반드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폭풍 흡입하며.
왜냐 속 타들어가니까.
만남부터 속 썩였던 그 사람을 생각하며.
♬ 슈가볼 – 농담 반 진담 반
달콤한 그룹 이름에 마음을 간지럽히는 제목 작명 센스.
2006년 싱글 앨범 ‘Sugarbowl’로 데뷔한 이래로
매번 사랑의 미묘한 감정들을 파고드는 가사들과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심장을 설레게 하는 목소리로 공감을 얻고 있다.
이 곡은 과도한 밀고 당기기로 괴로워하는 남자를 그려내고 있다.
밀당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바친다.
이런 걸로 장난치지 말아요
헷갈리게 하지 말아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확실히 해주면 안 될까요
못되게 좀 굴지 말아요

화요일 노을 지는 카페 구석에서
요즘 갑질이 대세라는데.
갑을 관계가 존재했던 우리 연애에 대해 회상하며
주변에 앉은 커플들을 바라보다
나같이 어리석은 중생을 발견하며 에스프레소를 주문한다.
♬ 슈가볼 – 나한테 집중해
농담 반 진담 반 속 남자가 드디어 그 여자와 괴로운 밀당을 끝내고 연애를 시작하긴 했지만,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영고남.
더이상 호구로 남지 않겠다고 결심한 그.
드디어 결단을 내리는데.
물론 약간은 내가 조르듯이
우리 시작한 것도 알지만
만나는 건지 아닌 건지
나만 늘 혼자처럼 느끼잖아

수요일 새벽 두 시
이틀 동안의 분노를 되돌아 보고 가라 앉히며
이해하고 보내보려고 노력하는 시간
♬ 에픽 하이 – 헤픈 엔딩 (조원선 Of 롤러코스터)
Happen 우연히 일어나다 Ending 끝
이별. 끝맺음. 그리고 가벼움. 헤픈 엔딩.
너에게 사랑이란 노름이
다른 누군가에겐 전 재산인 걸 모르니
마음에 드는 사람에겐 마음의 반대로 해
참 외롭게 사는 네가 아니 내가
잘 됐으면 좋겠다

목요일 오후 9시
이해는 개뿔. 다시 분노가 차오른다.
알콜 생각이 가득한 시간.
♬ SanE – 불행했음 좋겠다 (Feat. Bee Of Rphabet)
날 배신한 사람에게 매일매일 기도하는 말.
불행했음 좋겠다. 망했음 좋겠다.
그의 다음 앨범 더 불행했음 좋겠다도 추천추천.
사랑과 증오는 한 끗 차이.
니가 불행했음 좋겠다
난 행복하지 않고
앞으로 사랑 않고 살아도 좋으니까

금요일 자정
불금.
의심으로 가득한 초조했던 밤.
♬ SanE – 어디서 잤어 (Feat. 버벌진트, 스윙스)
이 앨범 이 노래말고도 심상치 않다.
내 마음에 가시처럼 쏟아진다.
믿음이란 게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
내가 일일이 설명까지 할 필요 없잖아

토요일 점심
주말. 생각으로 가득해 지는 시간.
♬ 매드 클라운 – 스토커 (Feat. 크루셜 스타)
나쁜 여자를 노래하는 그 남자.
하지만 오히려 여자들이 그의 노래에 더 공감하는 듯 하다.
또박또박하고 내지르는 듯한 랩이 인상적이다.
너와 난 아무리 봐도 노답
단 한번만 솔직했다면
널 용서할 수 있었는데
넌 끝까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어

일요일 아침
등산으로 번뇌를 잊으려 노력하며
♬ 매드 클라운 - 화 (Feat. 진실 Of Mad Soul Child)
오빠 저랑 손 잡고 굿 한번 안할래요?
네가 어디 어떻게 잘사나 두고 볼 건 데 나
널 너무 사랑해서 딱 한마디만 할게
너랑 꼭 똑같은 사람 만나
우리와 같은 시간을 견뎌내야만 하는 친구가 있다면 슬며시 이 목록을 추천해보자.
때론 마구 울어버리며 슬퍼하는 것도 좋지만
홧병 나지 않게 적당히 분노하는 것도 건강에 매우 좋다는 사실.
앞으로 꽃길만 가득하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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