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숙명의 공연, 노트르담드파리 [공연예술]

글 입력 2015.03.29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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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宿命)’이라는 단어가 있다.

날 때부터 타고난 정해진 운명, 또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뜻이다.

당신은 숙명을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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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한국에 상륙한 뮤지컬 <노트르담드파리>는 본래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위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빅토르위고는 노트르담 대성당 성벽에 새겨진 ‘ANArKH(아나키아)’라는 글자를 발견하고 이 소설을 썼다고 전해진다. ‘아나키아’는 그리스어로 ‘숙명’이다. 그는 그 글자에서 어떤 숙명을 본 것일까. 그의 의중을 알 수는 없지만, 공연을 관람하고 나름대로 느낀 숙명을 써내려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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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의 전반에 깔린 첫 번째 숙명은 ‘시대의 숙명’이다. 노트르담드파리는 총 2막으로 구성되어있는데, 각 막을 여는 오프닝 넘버들은 모두 이 시대의 숙명을 이야기한다. 1막의 오프닝 넘버인 ‘대성당들의 시대(Le Temps des Cathedrales)’에서, 음유시인 그랭그와르는 ‘대성당들의 시대’, 즉 교회의 권력이 융성하던 중세시대의 도래를 노래한다. 그러나 마지막 클라이맥스만 가사가 다르다. 그는 ‘대성당들의 시대가 끝나간다’라고 말하며,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중세 다음의 시대인 르네상스가 오고 있는 것이다. 2막의 오프닝 넘버인 ‘피렌체(Florence)’도 마찬가지다. 주교 프롤로와 음유시인 그랭그와르는 ‘문학은 건축을 파괴하리라’, ‘인간은 신을 파괴하리라’, ‘그렇게 하나가 다른 하나를 파괴하리라’라고 말하며 끝나가는 교회의 영광의, 구시대의, 그리고 그 분열의 시대 한 가운데에 놓인 인간의 숙명을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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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숙명은 ‘사랑의 숙명’이다. <노트르담드파리>에서 사랑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표현된다. 약혼녀가 있는 근위대장 페뷔스도, 오로지 신만을 섬겨야하는 주교 프롤로도, 추한 꼽추이며 종지기에 불과한 콰지모도도, 아름답지만 천한 집시여인인 에스메랄다도 형태는 다르지만 모두 사랑을 한다. 그 사랑 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죄를 짓고, 마음이 찢기고, 심지어 죽게 되더라도 그들은 사랑을 포기하지 못한다. 이를 가장 잘 나타낸 넘버는 그 유명한 ‘아름답다(Belle)’이다. 콰지모도, 프롤로, 페뷔스는 제각기 에스메랄다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며 제발 그녀의 머리카락이라도 쓰다듬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원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주교 프롤로가 처음에는 노트르담에 기도하다가 뒤에 가서는 타락천사 루시퍼에게 기도한다는 것이다. 프롤로의 ‘욕망의 사랑’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사랑이 얼마나 불가항력인지를 잘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마지막 숙명은 개인적인, 그러나 가장 포인트라고 생각하는 ‘콰지모도의 숙명’이다. '콰지모도(Quasimodo)'에는 ‘대충 생기다 만 것’이라는 뜻이 있다. 그는 흉측한 꼽추로 태어나 노트르담 성당의 종치기로 일을 하는데, 어느 날 광장에서 춤추는 에스메랄다를 보고 마음 깊이 연정을 품는다. 그러나 반신불구의 그는 에스메랄다에게 어울리는 짝이 될 수 없다. 그의 따뜻한 마음씨를 꿰뚫어본 에스메랄다와 친구 관계가 되긴 하지만, 거기까지다. 결국 그는 뒤에서 그녀만을 바라보며 지고지순한 짝사랑을 계속하다가, 그녀의 죽음까지 바라만 보게 된다. 그는 격노하여 그를 키워주었으며 동시에 그녀를 죽게 한 프롤로 주교를 계단에서 밀어버리고, 싸늘하게 식은 그녀의 시체를 껴안고 오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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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이 때 부르는 넘버가 바로 ‘춤춰요 나의 에스메랄다(Danse Mon Esmeralda)’이다. 이 넘버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신이 나를 이토록 추하게 만든 이유는 그녀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게 하기 위해서다’. 필자는 이 부분이 숙명에 순응하면서도 동시에 굴하지 않는 모순을 강하게 느꼈다. 그는 그의 추한 외모 때문에 겪었던 온갖 고통과 슬픔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신을 원망하는 일 없이 묵묵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 추한 외모로 인해 괴롭고 아파야 할 그의 숙명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기쁘게 수용하며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외모는 비록 흉측했지만 그의 마음만큼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빛났다고 말할 수 있다.

  누군가는 숙명이 있다고 말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숙명은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콰지모도의 삶의 태도다. 숙명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것을 삶의 의미와 연결시키며 자신의 삶의 가치를 높여나가는 그의 태도 말이다. 특별한 사람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가치 있는 삶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여기 ‘숙명(宿命)’이라는 단어가 있다.

날 때부터 타고난 정해진 운명, 또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뜻이다.

 당신의 숙명은 무엇인가?

[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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