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파이 이야기- 당신은 무엇을 믿겠습니까? [문학]

글 입력 2015.03.22 03:4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life_of_pi_book_cover_01.jpg



파이 이야기 Life of Pi
당신은 무엇을 믿겠습니까?





 내가 파이 이야기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2, 캐나다의 작가 얀 마텔의 유명한 소설 <파이 이야기>가 영화로 재탄생되었을 때이다. 이안 감독의 총지휘로 완성된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Life of Pi>는 화려한 영상미와 가슴 찡한 한 인도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의 감각을 사로잡았다. 2012년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부터 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안돼서 못보고 있다가 오랜만에 생각이 나서 도서관에서 파이 이야기책을 집어 들었다.


파이 이야기1970년대 후반,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텔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는 도중 화물선이 태평양 한 가운데에서 침몰하고 간신히 살아남은 파이 파텔의 표류기를 그린다. 파이는 간신히 구명보트에 오르지만 보트에는 하이에나, 오랑우탄, 얼룩말, 그리고 벵골 호랑이가 올라타 있었다. 얼룩말과 오랑우탄을 죽인 하이에나를 호랑이자 잡아먹자 파이는 호랑이와 자신이 모두 살아남기 위해서는 호랑이를 길들여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파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e0121791_50e6da6281d13.jpg
영화 포스터 <라이프 오브 파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파이의 실제 이름은 피신 몰리토 파텔이다. ‘피신을 친구들이 피싱pissing'(소변을 보는)이라고 잘못 발음하는 바람에 파이는 순식간에 학교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그 이후로 피신 몰리토 파텔은 상대방에게 자신을 파이 파텔이라고 소개한다. 이름이 달라진다고 본질이 바뀔까?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이름은 자아를 정의시키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파이는 자신의 이름을 파이로 바꿈으로써 놀림감이었던 상황에서 벗어나는 결과를 불렀지만 폰디체리에 살고 동물에 관심이 많은 인도 소년이라는 파이의 본질을 바뀌지 않았다. 이건 믿음의 문제이다. 파이의 실제 이름이 피신 몰리토 파텔이라는 사실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파이는 자기가 파이라고 믿고 있으며 이게 전부인 것이다. 믿음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내가 믿는 것이 곧 옳은 것이고 이것은 사람마다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이 후, 믿음에 대한 파이의 독특한 행보가 나타난다. 파이는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교를 모두 믿는 다신교도가 되었다. 파이는 생각했다. 꼭 한 가지 종교를 가지란 법이 있나? 세상에는 한 가지의 신과 한 가지의 믿음만이 존재하는가? 파이 파텔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단지 신을 사랑하고 싶었다. 파이 파텔은 나이가 들어 표류기를 회상할 때 이런 말을 한다. “신의 존재도 믿음의 문제죠.” 파이의 말처럼 절대적인 것은 없다. 모든 사실과 상황은 결국 믿음이라는 추상적인 문제로 돌아온다. 자신의 신만이 옳고 자신의 신만이 인간을 구원할 것이라는 것은 인간의 독단적이고 지엽적인 판단의 결과물인 것이다. 객관적인 문제를 접하더라도 개인이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문제의 내용은 현저히 달라지기 마련이다.



18LIFE1-articleLarge.jpg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를 길들이는 파이 파텔


인간과 자연의 대비. 이성과 본능의 대립. 이 둘은 파이 이야기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뱅골 호랑이인 리처드 파커와 파이, 바다와 파이의 관계와 대비가 숨김없이 사실적으로 드러난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 그럼에도 그 자연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 숨이 붙어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가. 경이로웠다. 수 많은 물고기 떼와 바다거북, 상어와 고래에 대한 경이로운 묘사가 이어진다. 이와 대비되어 무자비한 자연 앞에서 벌거벗은 채로 노출된 파이의 공포와 두려움이 매우 감각적으로 묘사된다. 거대하고 엄청난 자연 앞에서는 이성이 마비된다. 인간의 이성은 그 기능을 멈추고 반응하는 몸의 감각에 의지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자연과 동물 본성 사이에서 파이는 공포를 말 그대로 온몸으로 체험했다. 파이는 이렇게 표현한다.

이성은 최신 병기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뛰어난 기술과 부인할 수 없는 여러 번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이성은 나자빠진다. 우리는 힘이 빠지고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초조감에 끔찍해진다. 이렇게 공포심은 우리 몸에 깃들고, 몸은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이미 인식한다. 벌써 폐는 새처럼 날아갔고, 창자는 뱀처럼 스멀스멀 빠져나갔다. 이제 혀가 주머니쥐처럼 축 늘어지고, 턱은 그 자리에서 덜컹댄다. 귀는 들리지 않는다. 근육이 말라리아에 걸린 사람처럼 떨리고, 무릎은 춤추듯 흔들린다. 심장은 지나치게 경직된 반면 괄약근은 지나치게 이완된다. 몸의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다. 모든 부분이 서로 떨어진다. 눈만 제대로 작용한다. 눈은 언제나 공포심에 쏠려있다.’



life-of-pi2.jpg



life-of-pi-04.jpg


  파이가 이러한 숱한 고난을 거쳐서 227일 간 바다에서 버텨낸 원동력은 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신이 자신을 구원해줄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 하나로 파이는 무려 277일을 바다에서 버텼다. 멕시코 땅을 밟고 나서 파이는 사건을 조사하러 온 일본 조사관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는다. 하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다. 파이는 이야기에서 동물들을 사람으로 대체시켜 이야기를 재구성시켰다.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와 동물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던져준 셈이다. 그러고는 되려 질문한다. “당신은 어떤 스토리가 더 마음에 드나요?” 일본 조사관들은 후자의 이야기가 더욱 현실성이 있다고 보았다. 선택은 개인의 몫이고 그것을 믿는 것도 개인의 몫이다. 확인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파이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파이만큼 공포스럽고 절망스런 경험을 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화물선의 침몰로 가족을 모두 잃고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지는 것도 모자라 산채만하고 사나운 벵골 호랑이와 같은 구명보트에 합승하게 되다니. 7개월이 넘는 시간동안 파이는 신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기도와 예배도 빼놓지 않았다. 희망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파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희망을 잃지 마세요. 절망으로 신을 잃지 마세요. 당신 마음 속 믿음 하나면 충분합니다!”


life-of-pi-sorel_pi_16462_rgb.jpg

"신이시여, 저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이미 저는 당신손에 있습니다"



서포터즈3기-김소정님-태그1.png

[김소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