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봄 시, 꽃 시, 사랑 시 [문학]

글 입력 2015.03.17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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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시집이 읽고 싶어진다. 쓰라린 아픔을 토해내는 것 말고, 무겁게 존재를 말하는 것 말고, 꽃잎처럼 부들부들한 예쁜 시어들이 보고 싶다. 그래서 도서관에 가서 자리를 잡고, 수 많은 시집 중 봄과 꽃과 봄에 관련된 시를 골랐다.


시에서 꽃은 '사랑'이 되기도 하고 '내'가 되기도 하고 '네'가 되기도 한다. '사랑'이나 '너'를 떠올릴 수 있는 매개체의 역할도 한다. 매화, 벚꽃, 목련, 제비꽃, 아니면 꽃 그냥 그 자체. 그런 시만 모아서 읽고 또 읽었더니 종이에 봄볕 발라 놓은 양, 글씨에 꽃내 묻혀 놓은 양 사방에 봄이 그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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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순간의 꽃』


여보 나 왔소 / 모진 겨울 다 갔소 // 아내 무덤이 조용히 웃는다 


딸에게 편지 쓰는 손등에 / 어쩌자고 내려앉느냐 / 올 봄 첫손님 / 노랑나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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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마지막 꽃잎을 떨구면서 오월 붓꽃은 / 속삭이는 듯했지요 / 나는 당신이에요, 나는 죽지 않아요 / 또 여러 번의 봄이 지나고 / 이곳에 나 혼자 남는다면 / 그래도 혼자 남는 게 아니라는 걸 / 오월 붓꽃이 말해주겠지요

오월붓꽃 中


어느 생에선가 마음 한 번 베인 후로 / 꽃의 안부 묻지 않은 것이 / 늑골의 통증이 그냥 통증이 아니었지만 / 오늘 밤 꽃이 바람에 스치는 것 / 꽃 지는 의미 알라는 것 아니겠는가 / 꽃 피었던 자리 어디였나 더듬어 보라는 것

꽃 피었던 자리 어디였나 더듬어 본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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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시가 내게로 왔다 5』


"꽃이 예쁜가요, 제가 예쁜가요?" / 신랑이 짐짓 장난을 치느라 / "꽃이 당신보다 더 예쁘구려." / 신부는 꽃이 더 예쁘다는 말에 토라져 / 꽃가지를 밟아 뭉개고는 말하길 / "꽃이 저보다 예쁘거든 / 오늘 밤은 꽃하고 주무세요."

이규보 - 꽃이 예쁜가요, 제가 예쁜가요? 中


봄빛이 몇 날이랴? / 복사꽃이 활짝 폈다. / 넘노는 나비 한 쌍 무심히 지나가다 / 꽃잎에 입 맞추고는 날아갔단 다시 오네. 

설장수 - 봄빛이 몇 날이랴 中


그넷줄 능청 하늘을 차자 / 바람 안은 두 소매 활등 같구나. / 높이만 오르려다 치맛자락 벌어져 / 수놓은 버선목이 그만 드러났네. 

박제가 - 봄노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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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랑하느냐고 묻거든』


잔디 속에서 / 보랏빛 제비꽃으로 / 눈 뜬 그대 / 나는 그 곁에 바위가 된다 // 말없이 흘러간 세월을 / 짚어보며 / 떠난 이 보내지 않고 / 이 가슴 안에 함께 살면서 // 무연히 제비꽃 눈빛으로 / 천 길 바다 깊은 / 침묵의 대화 나눈다 / 나 갈 때 까지

김후란 - 제비꽃 눈빛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 꽃다발을 바치는 것 / 저녁 늦게까지 온몸이 꽃다발이 되어 / 들고 서 있는 것

고영민 - 꽃다발 中


그대에게 가서 꽂히는 / 마음 / 오직 그대에게만 맞는 열쇠처럼 // 그대가 아니면 / 내 마음 / 나의 핵심을 열 수 없는 // 꽃이, / 지는, / 이유,

김선우 - 꽃, 이라는 유심론 中


하기사 이쁘지 않은 꽃이 있으랴만 / 하도 이쁘면 꺾고 싶지 않은 / 마음이 어디 있으랴만 / 내가 말을 걸어도 못 들은 체 / 아예 입조차 봉한 것들에게 / 조르고 떼를 쓴들 어찌 내 꽃이랴

이근배 - 내 말 알아듣는 꽃은 어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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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림 『오늘 만큼은 못 견디게 사랑하다』 


너의 사랑 앞에 / 풀꽃이 되고 싶다 // 폭풍우 속에서 / 풀꽃이 파르르 떨고 있다 / 수줍은 이마를 쓰다듬으며/ 먼 곳을 바라보다 / 이내 돌아서는 풀꽃

풀꽃 中


지난겨울이 아무리 춥고 참혹해도 / 슬픔이 눈물 꽃으로 피어나도 / 달꽃 같은 봄은 열입곱 갈래머리 / 맑은 눈망울로 온다 / 돌돌돌 개울물 소리는 / 잠자는 대지를 흔들어 깨우고 / 실눈을 뜨고 봄 하늘을 바라보는 / 가녀린 풀꽃 눈 속엔 강한 의지가 번뜩인다 / 지난겨울이 그 아무리 혹독하고 쓸쓸해도 / 그래도 봄은 온다

그래도 봄은 온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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