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통의 기억을 마주하여: 한강, '소년이 온다' [문학]

글 입력 2015.03.15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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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한강, <소년이 온다> 中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1980년 광주의 5월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당시 계엄군에 맞서 싸우던 중학생 소년 동호와 그 주변 사람들에게 남겨진 상처가 섬세한 문장을 통해 처절하게 전달된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광주민주화운동에 얽힌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지 않고 글을 써야 했던 이유를 밝힌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들. 이러한 사건들은 결코 잊혀서는 안 되는 일들이다. 우리가 사건에 대해 슬퍼하고 분노한 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 그 사건을 잊어버리게 되었을 때, 사건은 또 다른 곳에서 예기치 않게 우리를 덮쳐 온다. 1980년의 광주, 2009년의 용산, 그리고 작년의 세월호. 모든 살아있는 사람에게 아픔을 주었던 이 사건들이 의식 속에서 흐려져 가고 있을 때도 <소년이 온다>의 수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고통 받고 있다.

 

문학평론가 황현산 교수는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에서 “언제나 끝까지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글 쓰는 사람들이다.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만 글 쓰는 사람이 된다.”고 말했다. 사건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고 무심한 일상으로 돌아와 살아갈 때 작가들은 그 고통의 기억을 붙들었으며, 문장 위에서 기억이 다시 살아나도록 글을 썼다. 개발 독재와 인권 탄압을 그린 성석제의 <투명인간>이 그러했고, 일제 식민지 시대부터 약자들의 역사를 다룬 이기호의 <차남들의 세계사>가 그러했으며 광주를 다룬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그러했다.

 

기억으로서의 문학은 그 사건과 기억을 다시 우리 삶에 데려온다. 한강은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고 <소년이 온다>라는 제목처럼 소년이 34년을 건너서 우리에게 한발 한발 걸어오는 그런 이야기였으면 했고요. 저의 개인사도 거기 파편처럼 넣어서 이것이 지금 여기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담고 싶었어요. 광주라는 게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보통명사처럼 얼굴을 바꿔서 우리에게 계속 돌아오고 있고 어쩌면 우리가 지금도 광주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라는, 소년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그런 느낌을 전하고 싶었어요.”

-2014.6.30.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 한강 편 中

 

저자의 말대로 책장을 넘길수록 어린 소년인 동호가 우리의 마음속으로, 기억 속으로 한 발 한 발 가볍게 걸어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소년의 발걸음은 그의 가벼운 육체를 닮아 가볍게 걸어오지만 그것이 독자의 마음에 울리는 충격과 고통과 분노는 묵직하다. 기억이 고통스럽다고 해서 그것을 떠올리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것이다. 기억을 잊지 않을 때 사건은 이미 지나간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돌아와 있는 것, 살아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세월호 사건이 있은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이토록 전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사건이 없었음에도 1년도 되지 않은 사이 나는 어느 순간 그 고통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싶어 했었다. 하지만 <소년이 온다>를 읽을 때, 소년은 광주의 기억을 데리고 마음속으로 들어오며 이 기억은 다시 세월호의 기억을, 내가 잊고 있었던 모든 고통의 기억을 일깨운다. 그리고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질문을 다시 꺼내게 되는 것이다. 훼손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 훼손되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을. 



[유윤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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