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명절에 입은 내 상처는 어디서 치료 받지 - 책 추천 [문학]

글 입력 2015.02.22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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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쇠러 내려가는 걸음이 이렇게 무거웠던가? 세배도 하기 전에 세뱃돈 받으면 뭐부터 살지 즐거운 고민부터 앞섰던 어린 시절의 설이 까맣게 멀고, “얘 네가 졸업반이지, 취업 준비는 잘 되어가니?”, “누구는 벌써 어디 취직도 했다더라. 너도 곧 좋은 소식 들려줘야지.” 작년에는 휴학을 앞둔 대학생이라는 그럴듯한 신분으로 이 말을 겨우 넘겼는데, 올해는 피해갈 길이 없다. 전쟁 같은 임용고시를 치러내고 당당히 선생이 된 언니조차, “남자친구는 있니?”, “얘 너 결혼 준비도 해야지.” 역시나 피해갈 길은 없는 모양이다.


먹던 전이 목구멍에 꽉 막히는 기분을 느끼며, 방에라도 틀어박혀 있고 싶은데 안방이며 작은 방은 이미 사촌 동생들이 점령한 상태. 이럴 때 어디 임시 방공호 같은 곳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지고. 거기에 커다란 감자칩 한 봉지를 뜯어두고 내가 좋아하는 책을 잔뜩 쌓아두면 얼마나 좋을까. 거기서 책장이나 넘기며 낄낄댔으면 했다. 어쨌거나 부득부득 간신히 긴긴 설 연휴를 지나 보낸 지금. 긴 연휴 폭격 입은 내 마음에 조금이나마 심심한 위로를 더하고자 한 해를 풍미한 ‘힐링’은 못 되어도, 속은 후련한 두 권의 책을 들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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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 정영목 옮김,『불안』, 이레, 2005



우리는 왜 불안한 걸까? 『불안』은 이 간명한 물음에서 출발한다. 보통은 불안의 원인을 첫째는 사랑결핍, 둘째는 속물근성, 셋째는 기대 넷째는 능력주의 다섯째는 불확실성을 꼽는다. 이것을 거칠게 뭉쳐 이야기하자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피할 수 없는 몇 가지 판단 앞에 놓여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어린 시절, 개개인간에 차이는 있겠으나 울기만 해도 모두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해왔다. 그러나 불쑥 자란 우리에게 영원할 것처럼 존재했던 맹목적인 사랑은 거짓말처럼 떠나간다.


그 무차별적이었던 사랑을 박탈당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사랑을 되찾기 위해 애쓴다. -여기서 사랑은 곧 타인의 관심으로, 이는 애정에서부터 우러러봄 아첨 따위를 포함한다. -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타인에게 그러한 사랑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통은 지적한다. 곧 돈 있는 자는 능력이 있는 자이고, 돈이 없는 자는 능력이 없다는 ‘능력주의’는 곧 돈 없는 자를 무능력하고 게으른 자로 치부하며, 돈 있는 자를 대단히 칭송한다. 돈이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여겨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점점 가진 자 옆으로 달라붙어 아첨하고 그에게 애정을 보인다. 물론 이전 시대에도 부자는 존재했다. 하지만 계급이 눈앞에 나누어져 있던 시기에는 ‘선택받은’ 존재들만이 부를 소유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현대에는 어떠한가. 학생 때만 해도 함께 급식을 먹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외제차를 몰고 와 당신 앞에 내려서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우리는 불안 속에서 산다. 사랑받지 못할까 봐, 남보다 더 나은 삶을 살지 못할까 봐 불안에 떤다. 그러나 이러한 불안은, 설령 내가 조금 더 가진다고 해서 해소될 그런 불안은 아니다. 욕망은 더 큰 욕망을 불러들일 뿐. 그렇다면 우리는 이 거대한 불안의 캄캄한 그림자 속에 갇혀 떠는 수밖에 없는 걸까? 보통은 여기에 몇 가지 해답을 제시한다. 하지만 책에 서술된 해답 자체에 닿기 이전에, 우리가 보이지 않는 불안을 덮고 있는 암막을 걷어냈을 때 이쪽으로 다가오는 생각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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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모토 하지메, 김경원 옮김,『가난뱅이의 역습』, 이루 , 2009



돈 없으면 무시 받고 살기 힘든 세상이라는 말에, “이럴 때일수록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넘치는 열정으로, 오늘도 열심히 내일을 위하여 오늘 하루를 유보하는 이들 속에서, 재활용 가게 ‘아마추어의 반란’ 5호점 점장인 마스모토 하지메는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된 바에야 멋대로 살아볼까!” 그리고 말하자면, 행동 개시다. 물론 이제까지 청년들에게 ‘남의 기대를 살지 말고 당신을 삶을 살라’, 입에 발린 소리를 잘도 말한 책은 넘쳐났고, 반듯한 말로 ‘청년들이여, 짱돌을 들어라!’라 윽박지르는 책들은, 얼마나 넘쳐났는가.


하지만 그는 그저 쇼핑가로 둘러싸인 번듯한 도시가, “손님 이쪽에서는 쇼핑을 하시고, 이쪽 공원에서는 개를 산책시키십시오.” 하고 말하는 꼴이 맘에 안 들고 재미가 없다고 말한다. 돈 없어도 좀 궁상맞아도, 뭐 어쨌거나 재밌게 살면 그만이니 기똥차게 재미있는 반란을 도모한다. 그가 이렇게 외친다. “도시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리자!”


이 책 그런 의미에서 완전히 생활형 지침서다. 아무 곳에나 천막을 치고 사람들과 음식을 나눠 먹는 법, 공짜로 뷔페를 먹는 법, 학교에서 노숙하는 법, 집을 싸게 얻는 법 따위를 가르친다. 돈이랄 게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건데, 없다고 못 살아선 안 된다고 보여주고 싶은 거다. 어차피 돈이란 것이 가진 놈만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못 가졌다고 해서 못 살고, 기죽을 거 있겠는가. 그러니 우리, 무일푼 하류인생이라도 기죽지 말자. 숟가락을 높이 들어 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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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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