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책장에도 봄일랑 찾아와라 - 봄맞이 책 추천 [문학]

글 입력 2015.02.15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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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연일 변덕이다. 코끝이 에이는 추위에 호되게 당하고서, 더는 당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두툼한 패딩 점퍼를 꺼내 입고 나왔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봄바람이 살랑살랑 귓불을 간질이는 일이 잦다. 옷장에도 계절감이 없다. 반은 우중충한 겨울옷이, 꼭 반에는 색이 밝은 봄옷이 같이 걸려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봄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 겨울 간 침상 밑에서 함께 묵었던 책들을 저만치 밀어두고, 봄맞이 책장 단장을 하기 위해 오랜만에 서점에 들렀다.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전해지는 빳빳한 종이 냄새처럼 단정한 기분이 드는 냄새가 없다.


봄맞이를 핑계로 서점을 떠돌며 고르고 고른 봄맞이 세 권의 책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물론 이 책들은 봄이라는 계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나의 독서에는 계절감이 없음을 밝혀둔다. 이 책들을 선택한 일은 순전 기분이라는 것. 부디 이 세 권의 책과 함께하는 내 봄에 볕들 날이 많기만을 바라면서 세 권의 책을 꺼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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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혜,『햇빛』, 문학과 지성사, 2014


“무슨 말부터 시작할까 햇빛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햇빛」中

무슨 책으로부터 이 어리석은 추천을 시작해야할까, 그래서 박지혜시인의 시집 햇빛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볍지만 당찬 선언이 기분 좋다. 박지혜의 시집에는 쏟아지는 이미지나, 강력한 선언이 앞서지는 않는다. 볕 좋은 날, 누군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걸어오는 것 같다고 하면 좋을까. 그 소리는 너무나도 작아서 바짝 귀를 기울여 들어야하는 목소리이다. 그 작은 소리는 문득 중얼중얼 번복되기도 하고 앞의 말과는 비슷하지만 또 다른 소리로 전해진다. 그 말들은 혼자 아무 의미 없이 떠드는 소리처럼 들리다가, 문득 투명한 껍질을 벗고 다가온다.


무리하는 슬픔, 그리고 여전히 이름만 생각하는 슬픔, 풀 건초 더미 젖은 숲 야생 딸기 고래 울음 미루나무 비단 구두 서진 서표 아이슬란드의 봄 쇄빙선 절대영도 달 윤슬

-「하루」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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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미,『그들에게 린다합을』, 문학동네, 2013


“그 부부에게 왜 담요를 주었느냐고 아까 물었죠? 사실 내가 순찰차로 돌아오기 직전, 어린 부인이 술에 잔뜩 취한 목소리로 이런 말을 했소. ‘아들과 다른 공연을 보러 가세요. 사람들이 죽지 않는 콘서트요. 사람들이 즐겁게 노래 부르고, 춤추는 그런 콘서트 말이에요. 사람들이 죽지 않고, 살아 있어서 행복한 노래만 흘러나오는 곳이요. 나도 그런 곳에 가고 싶거든요..’ 나는 차 안으로 돌아왔고, 조금 울었소.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되돌아갔소. 그랬더니 그 어린 부인이 나에게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어린 부인은 이렇게 말했소. ‘우린 인간쓰레기예요’라고.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소. 다만 그 부부의 머리를 잠시 동안 쓰다듬어보았소. 그 작고, 동그랗고, 차가운 아이들의 머리를 말이오.”

-「담요」 中


작년 한 해, 참 많은 이름들을 떠나보냈다. 그 봄 우리가 참 많은 삶의 파열과 마주해야했다. 많은 것들을 떠나보낸 그 해의 봄을 돌아보며, 다시 돌아온 이 봄의 싱그러운 봄바람에 또 그 이름들을 더듬어보다, 손보미의 소설집 『그들에게 린다합을』에 수록된 단편소설 「담요」를 펼쳤다. 이 봄날,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 항상 무겁다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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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바르트, 변광배 옮김,『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 민음사, 2015


올해는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의 탄생 100주년이다. 겹겹이 때깔 좋은 포장지를 입고 속내를 숨긴 채 돌아다니는 말과 말에 속고 속았던, 그리고 속은 한 해를 돌아보면서 올해의 ‘말’에는 보다 진실이 깃들기를 기원하며, 이 강의록 속에 담긴 롤랑바르트의 빛나는 지성과 삶을 추적해보기로 한다.


[박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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