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너무나 바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나를 위해 다른 사람을 억누르고, 꽃 한 송이 신경 쓸 여유는 더더욱 없고, ‘효율’을 위해서만 산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잠깐 왔다 가는 손님일 뿐인데 왜 이렇게 부정적으로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이러한 의문점을 가졌던 예술가가 바로 ‘훈데르트바서(Hundertwasser)’입니다. 화가이자 건축가, 그리고 환경운동가였던 그는 사람들에게 생명에 대한 존중과 공존을 위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1. 훈데르트바서의 기본 공식
사실 ‘훈데르트바서’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는 했지만, 사실 이는 실명이 아닙니다. 그는 세 차례 이름을 바꿨는데, 1968년 최종적으로 만든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 레겐탁(Friedensreich Hundertwasser Regentag)’는 ‘평화의 제국에 흐르는 100개의 강’이라는 뜻으로 그의 작품철학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이름입니다. 여기서의 ‘평화’ 와 ‘자연’은 그의 생애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훈데르트바서는 아리아 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오스트리아 인으로, 나치 점령시기 본인은 탄압을 피했지만 외가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것을 목격해야 했습니다. 이 경험에서 비롯되었는지, 그는 ‘정형성’과 ‘효율’을 기피했습니다. 실제로 훈데르트바서는 유명한 ‘직선 혐오자’였습니다.
“직선은 인간성의 상실로 이어진다”
“직선은 무신론적이고 비도덕적이다”
따라서 1958년 “합리주의 건축에 반대하는 곰팡이 성명”을 낼 정도로 그의 작품들은 최대한 나선형의 형태를 띠었습니다.
[모더니즘 합리주의 건축의 대표 바우하우스]
[곡선의 쿤스트하우스 빈]
그는 이러한 ‘나선’을 통해서만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믿었고, 이는 인간 사이의 공존을 불러왔으며 결국 ‘평화’에까지 나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훈데르트바서는 생태주의자로서 자연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그는 1968년 낡은 목조 범선을 구입해 ‘레겐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배에 살며 작업 활동을 했으며 물감 대부분을 직접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껌 종이, 전단지, 담배꽁초 등 거리에 버려진 것들로 오브제 작품들을 만드는 등 예술로써 자연과의 공존을 나타냈습니다. 건축에서도, 훈데르트바서는 건물 안에 나무와 식물 등 자연을 위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레겐탁]
2. 훈데르트바서 자연을 말하다
그는 ‘나무에 대한 의무’를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거리와 지붕 위 옥상에도 나무가 심어져야 한다. 읍내건 도시건 간에 숲의 공기를 마실 수 있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그는 1973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주택가에 <나무 세입자>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창문 사이사이에 12그루의 나무를 심었으며 이는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나무들은 물을 흡수하지 못하는 콘크리트 대신 그 기능을 해냈고 공기와 물을 정화하기까지 했습니다. 훈데르트바서는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이후 짓는 그의 모든 건축물들에 나무를 의무적으로 배치했습니다. 또한, 그는 <나무 세입자들은 잠들지 않는다-나무 세입자들은 깨어있다>라는 제목의 캔버스화에서 조금 더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나무 세입자 프로젝트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나무 세입자의 초안]

[나무 세입자들은 잠들지 않는다-나무 세입자들은 깨어있다]
: 집 안과 위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온갖 종류의 화폐와 그 가치를 내세우지 않고도 산소를 만들고, 먼지를 삼키고, 기온을 조절하고, 아름다움을 선사함으로써 집세를 지불한다.
나무 세입자 프로젝트 이외에도, 그의 건축물들은 모두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주의를 따릅니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슈피텔라우 가정쓰레기소각 및 도시난방 분과’, ‘블루마우 온천 마을’ 등이 훈데르트바서의 대표 작품들입니다.

[인간과 땅의 모든 생명체의 공존,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동화적인 상상력의 슈피텔라우 지역난방발전소]

[자연에서 휴식하는 인간을 꿈꾼 블루마우 온천마을 호텔]
3. 훈데르트바서 인간을 말하다
훈데르트바서는 자연과의 공존을 말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공존에도 주목했습니다.
그는 상크트바르바라 성당을 다시 지으며, 여러 문화들 간의 화합을 표현했습니다. 그는 성당의 12개의 아치형 입구를 세계의 주요 종교 상징과 표징들을 새겨 넣은 명판으로 장식했는데, 이는 모든 종교를 향한 화해의 제스처였으며 각 종교가 서로를 존경하고 자비롭게 대하기를 기원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훈데르트바서는 민족의 충돌에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는 특히 골수 유대주의자들과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서로 대립하는 중동 사태를 예술적으로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서로 적대하는 두 개의 상징(이슬람의 초승달과 유대의 다윗의 별)은 폭력과 전쟁을 낳지만, 하나가 되면 평화의 요인이 된다고 생각해 새로운 깃발을 디자인했습니다. 그리고 훈데르트바서는 이 화해의 상징이 통일된 팔레스타인 땅에 펄럭이기를 바랐습니다.

[성스러운 땅을 위한 평화의 깃발, 1978년]
“파라다이스는 곁에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파괴하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이 지구상에서 파라다이스를 실현하는 것이 얼마나 간단한 일인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훈데르트바서의 말입니다. 건축과 예술,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강조했던 그의 철학을 알 수 있죠.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주변과의 조화를 통해 이념을 가진 건축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실제로 경험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그의 작품의 큰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건물에 숨을 불어넣는 것은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신념과 철학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환경에 어떤 철학을 가질 수 있을까요? 훈데르트바서를 따라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