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작자 소개
『연인』을 쓴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프랑스가 20세기에 배출한 저명한 여성작가들 중 한 명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다양한 장르의 작가로 프랑스 문단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연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작품에서 아시아, 특히 인도차이나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그녀가 『연인』에서 묘사하는 프랑스 점령 당시의 베트남의 풍경은 모호하고도 신비롭게 다가온다. 그녀의 작품에서 돋보이는 배경은 베트남의 사이공에서 태어난 그녀의 성장 과정과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본명은 '마르그리트 도나디외'로, 필명인 '뒤라스'는 아버지의 별장이 있던 곳의 지명을 따온 것이다. 뒤라스는 1914년 베트남의 사이공(현 호치민시티) 근교 지아딘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초혼이 아닌 재혼이었다. 아버지는 프랑스 남서부 출신의 수학 교사였고, 어머니는 프랑스 북부의 가난한 농부 집안 출신의 프랑스어 교사였다. 뒤라스의 아버지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으로 발령 받고, 전염성 이질에 감염되어 프랑스로 후송되고 뒤라스가 네 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난다.
그로 인해 어머니 홀로 두 아들과 딸 뒤라스를 양육하게 된다. 뒤라스의 가족은 당연히 생활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고, 어머니의 인사이동에 따라 캄보디아와 베트남의 여러 지방을 이사 다녀야 했다. 뒤라스는 이러한 경험에 의해, 열한 살 무렵까지 프랑스어보다 베트남어를 더 유창하게 구사했다고 한다. 그녀는 1932년에 고등학교를 마치고 뒤라스는 프랑스로 귀국한다. 이러한 뒤라스의 성장배경을 보면, 『연인』의 주인공의 모습에 작가 본인의 모습을 비추어볼 수 있을 것 같다.
뒤라스는 실제로는 정치적 성향이 강했지만 그녀의 작품에 어떤 주의, 주장이나 사상이 담겨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뒤라스의 작품이 풍기는 독특한 매력은 난해하면서도 이상야릇한 색채를 지니고 있다. 존 레흐트 교수는 뒤라스의 문체가 "유별난 독특함을 지니고 있고" 가끔은 "누보로망의 실험적 사실주의를 떠올리게 한다."며, 스토리의 흐름은 느리게 하면서 짧은 문장을 통해 세부 사항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유년시절을 재현하고 있다. 이는 융이 말한 유년시절은 자아의 '그림자'이고 '내부의 그늘'이라는 말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2. 작품 줄거리 및 특징
'유년시절'과 자아의 형성관계는 작가의 삶 자체와 작품의 연관성 뿐만 아니라,『연인』안에서 이루어지는 시점의 이동과도 연관이 있다. 『연인』에서의 화법은 이미 과거를 거쳐온 화자가 일정한 순서 없이 과거의 일부분을 뜯어보듯이 떠올리며 서술하는 것이 특징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데리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안간 힘을 써온 어머니와 폭력적인 큰오빠 밑에서 주눅들었던 작은 오빠, 열다섯 살에 부유한 중국인 남자와 성관계를 맺은 주인공 소녀의 이야기가 순서를 가지지 않고, 서술자인 '나'의 머릿속에 문득 떠오르는 것이다.
서술자는 열다섯 살 반이었을 때 나룻배로 메콩강을 건너던 순간을 하나의 '영상'이라고 말한다. 그 영상은 마치 강을 건너기 이전에 소녀가 겪어온 경험과 연결되는 하나의 영상인 것처럼, 어머니와 오빠들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소녀의 인생에 지속적으로 머무르게 될 불행과 슬픔이 이미 그녀의 근원인 가족과의 관계에서부터 도사리고 있었다는 듯이, 모든 이야기의 근원지는 소녀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는 것 같다. 이는 앞서 언급한 자아의 '그림자'와 '내부의 그늘'이 소녀가 유년시절부터 겪었던 가족의 불행에서 기원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아버지의 죽음 뒤에 이어진 끝없는 가난과 생활을 이어가기 위한 비참함, 그 비참함이 소녀의 곁에 소녀의 가족 곁에 항상 도사리고 있다. 가난 때문에 소녀의 어머니는 끝도 없이 불행해지고, 그런 어머니의 불행한 모습이 항상 어린 시절의 소녀와 함께한다.
나는 그에게 내 어린 시절 내내 어머니의 불행이 꿈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꿈은 바로 어머니였다. 크리스마스트리마저 단 한 번도 없었고, 오직 어머니만이 있었다.
'나'는 유년시절에 지켜봐왔던 어머니의 불행에 대해 '꿈 대신 그 자리에 어머니가 있었다.'고 까지 말한다. 어머니의 불행과 함께 소녀 또한 절망하고 불행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서술자는 단 한 번도 희망을 품었던 적이 없던 것처럼 말한다. 불행에 대해서도 입을 다무는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희망을 저편에 놔두고 예언된 고통과 절망을 속으로 삼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딘가부터 어긋나버린 이 가족의 삶은, 이들에게 광기를 가져다준다. 이들이 품게 되는 광기는 서로를 더욱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몰아간다.
어머니가 믿고 의지하는 큰오빠는 가족 사이에서 군림하면서 작은 오빠를 억압하고 급기야 어린 소녀에게 끔찍한 폭력을 휘두르게 한다. 소녀는 '내게 큰오빠는 전쟁과도 같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녀에게 또한 전쟁은 작은 오빠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이다. 결국 그녀는 큰오빠와 어머니로 인해 작은 오빠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의 광기가 휘두른 폭력에 의해, 전쟁과도 같은 폭력에 의해 말이다.
그런 큰오빠가 어긋난 길로 가도 어머니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건 믿음과도 같은 큰오빠의 행동을 눈감아준다. 큰오빠는 끝까지 타락을 멈추지 않는다. 돈을 훔치고 도박에 빠져서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어머니가 죽는 순간에도 어머니의 유언장을 조작한다. 이런 어머니와 큰오빠를 증오하면서도 사랑이란 말을 넘어서 사랑했다고 고백하면서, 소녀의 감정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인간 내면을 고찰하는 섬세한 시각을 느끼게 한다.
큰오빠의 끝없는 방탕한 생활을 보면, 시간이 흘러도 유년시절 겪어왔던 불행이 여전히 같은 밀도를 지니고 언제나 이 가족의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지 소녀에게는 탈출구와도 같았던 콜랑에서의 중국 남자와의 만남이 더 슬프고 안타깝게 다가온다. 그녀는 결코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함께 할 행복한 결말은 없을 것이라고, 이미 단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녀가 자신의 운명을 모두 알고 있고, 예감하고 있어서 그와의 만남이 더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3. 소녀가 바라보는 인간 군상
소녀의 가족이 겪어온 비극과 시대적 배경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어 보인다. 특히 전쟁으로 인해 작은 오빠가 목숨을 잃었고, 그녀가 겪은 전쟁과 큰오빠의 폭력의 연관성이 두드러지는 지점에서는 더욱 시대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또한 백인인 소녀와 중국인 남자와의 연인 관계에서 나타나는 복잡함도 시대 상황과 연관지어 설명할 수 있다. 소녀는 자신을 갈망하기에 절망하는 남자를 처음 보았을 때, 그는 자신이 백인이 아닌 점을 '극복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들의 상이한 집안 배경 뿐만 아니라 인종마저도 그들의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소녀는 어린 시절부터 가난으로 인해 어머니가 겪는 고통으로 인해, 광기 어린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라서인지 인간을 바라보는 특별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가족이 생활하는 베트남이라는 나라와 그녀의 가족이 겪고 있는 특수성으로 인해, 소녀는 남다른 시선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가 묘사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어딘가 공허해 보이는 점이 있는데, 이는 두 차례의 전쟁을 겪어온 20세기를 지나온 사람들이 공유하는 어떤 공허함일수도, 소녀의 마음을 대변하는 타인의 모습일수도 있다. 소녀가 바라보는 사람들 중, 특히 중국인 무리를 묘사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아무런 행복도, 슬픔도, 호기심도 없이 혼잡한 무리 속에서 각자 홀로 있는 것 같은 표정들. 어딘가 가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갈 계획도 없어 보이면서 다만 어슬렁거리기 위해 걷고 있는 것 같은 그들. 혼자인 동시에 무리에 끼어 있고, 항상 모여 있으면서 절대로 홀로 떨어져 있지 않고, 그러면서도 늘 무리 속에서 고립된 존재들로 있는 그들.
이는 한 사람의 역사 안에서 내재하는 고독과 슬픔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고립된 존재로 보이는 이 무리를 보면서 소녀는 자신 안에만 내재하는 고독과 슬픔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소녀의 비극적인 삶을 따라가며, 나의 가족과 연관되어 쌓여온 나의 고통과 슬픔을 떠올린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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