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4: 이불 보다 [시각예술]

글 입력 2015.01.25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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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4: 이불

기간 : 2014.09.30 - 2015.03.01

장소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제 5전시실

작가 : 이 불

작품 수 : 대형 공간설치작품 2점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우리만치 무성하게 핀 안갯속에 갇힌 듯 내딛는 걸음이 막막해 왔다. 어떤 단단한 조형과 마주하기 이전에 상실되는 감각에 모든 게 더디고 무색해지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희미하게 빛나는 조형으로부터 일제히 뿜어져 나와 사방으로 흩어지는 수증기가 저 바깥과 이 안에 희미하지만, 어딘가 넘어설 수 없을 것만 같은 벽을 세우기라도 한 것처럼. 문턱이 없는 전시장에 들어섰을 뿐인데도 순간 어딘가 완전히 다른 공간 안에 누군가 나를 놓아둔 듯 방향을 잃어서 겨우 어색한 몇 걸음을 떼다 결국 멈춰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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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불, <새벽의 노래 III>, 2014 (사진: 전병철) , 국립현대 미술관 홈페이지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시야를 가두고 있던 수증기가 나지막이 걷히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 트인 시야로 먼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비행체의 형상을 볼 수 있었다. 그 형상과 마주했을 때의 그 광막한 기분을 무어라 에둘러 설명할 길이 있을까. 또한 사선을 그리며 형상을 완전히 관통하고 있는 또 하나의 뾰족한 형상은 나를 완전히 긴장시켰다. 저 멀리서 빛을 내고 단숨에 점멸하는 붉은 전구들은 내게 어떠한 말이라도 걸어올 것만 같은데, 어떠한 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그저 영영 모를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여 나는 그저 눈부신 비행체를 한참이고 눈에 담았다. 나는 그렇게 이불 작가의 作 <새벽의 노래 III>와 마주했다.



"아름답다."라는 말처럼 쉽게 상하는 말이 있는지. 우리가 미(美)에 대한 셀 수 없이 많은 견해와 그 다름 속에 살면서, 미(美)는 무엇이다 끊임없이 다투다 혼란한 지경에 이르면 겨우 우리의 눈앞에 떠오르는 일말의 해답이 있으니 이 아름다움과 저 아름다움이 다르다는 간명한 인지다. 그렇기에 함부로 "아름답다."는 말을 선뜻 꺼내기 어려운 바가 있으나, 어쨌거나 우리에게는 으레 공유되는 통념적인 아름다움이랄 것이 있는 듯하고, 이는 대체로 환하게 빛이 나거나 몹시 밝은 무엇이라 여겨지는데 우리는 대체로 그러한 것들과 마주하면 일정 반사적으로 "아름답다."라는 찬사를 내비친다. 이불 작가의 作 <새벽의 노래 III>는 안개가 걷힌 후 우리에게 환하고 투명하며 빛나는 통상적인 '아름다운' 형상을 일순 구현해내는 듯하다. 하지만 형상은 설명할 길 없이, 어떤 아름다움이라는 말과는 전혀 엇나가 있다. 분명 환하게 빛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된 일인지 황홀경이라는 말을 가져다 쓰기 어렵고, 어떤 말이 적절할까 찾다 보면 또다시 뿜어져 나오는 안개에 갇혀 이제껏 애써 끌어모은 관념들은 차게 날아간다.



그리고 또다시 수증기가 걷힐 때, 다시금 드러나는 형상은 왠지 모르게 앙상한 골조만을 들어낸 채 흉하게 남아버린 건축물처럼 어딘가 섬뜩하게 우리 앞에 재등장하는 것이다. 이전의 아름다웠던 형상은 자꾸만 흐린 안갯속에서 얼굴을 바꾸고, 똑바로 그 이름을 지칭할 수는 없지만, 실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무엇이 가까워져 온다. 동일한 형상 앞에 놓여있으면서도, 미와 추를 형상을 번갈아 마주하며, 우리의 감각은 점차 착란에 가까워진다. 낮에 마주했던 골목의 풍경이 새벽이 되면 마법에 걸린 듯, 전혀 다른 풍경이 되어 우리 앞에 민낯을 드러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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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노래 III>가 우리를 감각의 착란 속에 밀어 넣는다면, <태양의 도시 II>는 무한 속에 우리를 떠민다. <태양의 도시 II>는 전시 공간 전체- 길이 33미터, 높이 7미터의 전시 공간 전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는 조형에서 멀찍이 떨어져 점잖은 표정을 짓고 그 형태를 안전하게 바라볼 수 없다. 우리는 완전히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 안에서 스스로 거닐면서 사방의 벽을 덮은 흐릿한 거울들과 직접 마주해야 한다. 느린 걸음으로 좁은 거울 사이 통로를 스스로 지나가야 한다. 그 길은 때로 막혀있기도 하고 이어져 있기도 해서 길이 막혀있을 때 우리는 다시 방향을 틀어 걸음을 옮겨야 한다.


전혀 가본 적이 없는 길을 걷는 것처럼, 이어지고 파편 난 조경들이 작품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이어진 공간을 무한하게 탐색하는 기분을 맞이한다. 방의 가장 왼편에 모여 불투명한 불빛을 내는 전구에 가까워지면 공간의 경계는 점차로 흐릿해진다. 사방에 반사되며 이어지는 불빛과 함께 사방에 내가 놓인 듯 도처가 어지럽게 확장된다. 저 반사된 전경 너머에 무언가 무수하게 존재하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전혀 아는 바가 없는데도, 그 빛이 아득하게 그립다. 지나온 유토피아를 그리워하는 아담과 이브처럼. 작품 밖을 나온 후에도 여전히 눈을 감을 때마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붉은 잔상에 여전히 작품 밖을 나오지 못한 채 있다. 무한히 이어진다. 전혀 다가설 수 없는 유토피아를 향해 헤매는 일을 지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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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헤매다 돌아오면서, 또다시 그 잔상 속에 헤매고 마는 즐거운 경험을 선물 받고 싶은 이라면 이 전시를 꼭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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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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