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보이첵을 보고_현실은 나약한 인간이 견디기엔 너무나도 잔혹했다.

글 입력 2014.12.29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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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09~2014.11.08

LG아트센터 공연

김다현,김수용,김소향,김법래 등 출연

러닝타임 150분


  공연이 시작하기에 앞서 하우스 매니저님의 멘트가 흥미로웠다. ‘단체로 오신 관객 여러분은 공연 도중 만남을 갖거나, 조직의 단합을 보여주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는 매니저님의 멘트를 듣고 한참을 웃었다. 단순히 휴대폰의 전원을 꺼달라는 형식의 딱딱한 말투보다 더 주의를 집중시키는 것 같아서 재미있었다.

  LG아트센터의 무대는 약간 우측으로 치우쳐있다. 무대의 방향이나 인물들의 등장 방향을 미리 알고 티켓을 예매하는 것이 좋은데모든 객석의 중앙부분은 인기가 많기 때문에 비교적 좋은 자리에서 보고 싶다면 정보를 미리 알아가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보이첵>의 경우 무대방향 뿐만 아니라 군인들의 막사, 창녀촌, 마리의 집 등의 주인공들의 이동식 무대가 모두 우측에 설치되어 있고 실제로 인물들이 무대의 우측에서 등장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다음에 공연을 본다면 객석의 좌측보다는 우측에 앉는 것이 더 잘 보일 것 같다. 내 좌석은 2층의 중앙 5열이었는데, 사실 2층에서 공연을 본 것은 처음이어서 신기하기도 했고 답답하기도 했다. 2층에서 보면 무대를 위에서 보게 되기 때문에, 전체적인 뷰를 더 잘 볼 수 있다는 장점과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지휘자의 지휘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주인공들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섬세한 연기를 제대로 볼 수가 없다. 특히 이번 공연의 경우, 보이첵 역할을 맡은 김다현씨는 쓰러지거나, 온 몸이 부르르 떨리는 등의 표정 뿐 아니라 신체적인 연기도 많아서 그를 가까이서 볼 수 없었다는 것이 매우 아쉬웠다.

  내용으로 들어가보면, 보이첵은 가난한 말단 군인이다. 그에게는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사랑하는 아내 마리와 아들 알렉스가 있다. 과거에는 조금 더 희망에 부풀고, 용기 넘쳤던 보이첵은 삶의 이유인 아내와 아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생체실험에 참가하고 완두콩만 먹으면서 살아간다. 신체에는 이상변화가 보이고, 환시를 보는 등 보이첵의 몸과 마음은 망가져 가고 온갖 조롱을 받지만 마리가 곁에 있어서 행복하다. 그러던 나날중, 축제에 갔다가 마리를 눈여겨 보는 군악대장이 루비목걸이로 그녀를 유혹하면서 둘은 하룻밤을 보내고 그 일은 삽시간에 마을에 소문이 돌게 된다. 보이첵은 이를 생체실험의 극단적인 결과 도출을 위하여 눈을 번뜩이는 박사에 의해 강연 도중 극적으로 알게 되고, 광기에 휩싸이게 된다. 여기서 강연하는 장면이 매우 인상깊었는데 보이첵이 피실험자로써 나체로 강연장에 등장하고 박사들의 학생들이 그를 만져보면서 노래부르는 장면이 무서웠다. 보이첵에게 전기충격을 가하면서 그에게 나타나는 표정변화를 관찰하는 학생들과 박사는 그를 정말 실험실의 하얀쥐로 바라보며 눈을 번뜩이고 관찰할 뿐, 그의 고통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또한 보이첵이 내뱉는 말 한마디를 모두 조롱하고 심신이 모두 피폐해진 그에게 마리의 바람을 태연하게를 넘어서, 즐기며 말하는 중대장과 박사의 모습은 보이첵이 보여준 광기보다도 무서운 장면들이었다. 결국 보이첵은 탈영을 하고 마리를 사랑하지만 그녀가 부정한 짓을 했다는 사실 때문에 분노를 참지 못하게 된다. 보이첵은 분노에 휩싸여 군악대장을 찾아가지만 그를 때리지 못하고 되려 맞기만 하는 장면에서는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한다. 점점 더 상태가 악화된 보이첵은 결국 마리와 동반자살을 함으로써 극의 결말을 맞는다. 극의 중간중간 느낀 것은 상징성과 복선이 많이 깔려있는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극의 종반부에 할머니가 마리에게 불러준 노래나, 축제 때 마리가 부정한 짓을 저지르기 직전 쇼 무대에서 본능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멘트들이나, 루비목걸이로 대표되는 상징들이 특히 그러했다.

  <보이첵>의 부제는 루비목걸이이다. 이 극에서 루비 목걸이는 많은 것을 상징하는데 우선은 부의 상징이고 다음은 마리의 이상향이다. 마리는 우아한 루비 목걸이를 목에 걸고, 비단 옷을 입은 정숙한 숙녀를 꿈꾸지만 그는 군악대장과의 하룻밤으로 인해 휴지조각이 되어버린다. 하룻밤을 보내기 전 마리는 많은 갈등을 하는데, 이것이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아들의 미래를 약속해 달라며 그의 꾐에 넘어가게 된다. 마리의 부정한 짓이 단순한 생활고와, 창녀의 사생아라는 꼬리표가 붙을 아들의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된 것 순수한 것이라고만은 볼 수 없는 이유는 그녀의 망상에 있다. 축제 내내 마리의 시선은 보이첵 보다도 군악대장을 향해있다. 좋은 옷과 시계를 뽐내는 멋진 군악대장에게 내내 끌리고 있었고 그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줄 수 있는 남자라는 생각에, 결국은 거절하지 못한 그의 유혹이 자신의 사랑하는 프란츠(보이첵)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 지를 생각지 못한 것이다. 이 사실을 후에 알게되고 미쳐버린 보이첵도 안쓰럽고 이해가 갔다. 보이첵은 삭막한 삶 속에서도 사랑하는 아내가 자신의 삶의 이유였고 죽음의 문턱을 밟을 정도로 힘들었던 생체실험을 견디고 수치심 가득한 강연을 견딘 이유가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한 을 받기 위해서였는데 그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리를 찾아가 자신으로는 부족했던 것이냐고 외치는 장면과, 생체실험으로 번 모든 돈을 칼 한자루를 사는데에 써버리는 것은 보이첵이 삶의 의욕을 잃었음을 알게 해준다. 그러나 그들이 그럼에도 끝까지 사랑했음을 알 수 있는 것은 극의 결말 때문이다. 마리는 사라진 프란츠를 찾겠다며 아이를 할머니에게 맡기는데,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아들을 잘 보살펴 달라고 당부한다. 이는 마리가 동반 자살을 염두에 두고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마리를 찾아온 프란츠에게 마리는 사랑한다면이라는 삽입곡을 부르며 당신도 날 사랑한다면 우리 저 멀리 떠나자고 말하고 있다. 프란츠가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는 것을 아는 마리는, 그가 자신을 죽이는 복수로 끝낼 남자가 아니라는 강한 믿음이 있는 것 같다. 이는 죽음이 복수의 도구가 아닌 용서와 화해의 도구라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마리를 죽고 자신도 죽음을 함께 하는 것은, 저 멀리서도 함께하자는 맹세이며 그녀는 죽음을 그가 자신을 용서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프란츠는 그녀를 안고 칼로 목을 베고 그녀를 안고 달을 향해 걸어간다. 후에 보이첵 자신도 자살을 했음을 알려주는 것은 두 개의 관으로 표현되는데 그것으로 공연은 막을 내린다.

단순한 줄거리 뿐이 아니라, <보이첵>은 많은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데 전쟁과 여성차별, 생체실험의 잔혹성이 그것이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마음이 무거워지는 플롯을 가진 공연이기는 하나, 그만큼 다시 생각해 볼 거리가 많았다는 점에서 <보이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김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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