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 레드 >-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겪는 비극

글 입력 2014.12.29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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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레드>
일시 : 2013.12.21 ~ 2014.01.26
장소 :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관람시간 : 100분


마크 로스코는 처음 자신의 작업실을 방문한 조수 '켄'에게 레드로 가득찬 자신의 캔버스를 보여주며 질문한다. "자네, 이 그림에서 뭐가 보이나?" 레드에서 켄은 무엇을 보았을까. 또 우리는 레드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을 봐야 하나.

 

  레드는 요동친다. 어떤 사람에게는 단지 '레드'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레드는 그냥 '레드'가 아니다. 레드라는 색상 안에서는 생명력이 들끓는다. 용암과 같이. 펄펄. 마크 로스코에게도 레드라는 색은 보통 색이 아닌 모양이다.  그는 레드에서 자신의 삶 전체를 비추어본다. 화가로서 아무것도 아닌 시절에서부터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유명한 예술가가 되기까지의 치열하고 고독했던 하지만 찬란했던 그의 삶은 레드로 표상된다. 그런 그에게 미술작품은 죽어있는 대상이 아닌 살아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럼으로써 관객에게 특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동인자'인 셈이다.

 

 험난한 예술가의 길을 걸어오면서 마크 로스코는 자신만의 고유한 신념과 예술관들로 똘똘 뭉쳐왔다. 진지함과 사유, 철학을 논하는 다소 격앙된 그의 모습에서 마치 이성과 관념으로 점철된 단단한 갑옷을 입고 있는 것과 같이 느껴졌다. 그렇게 그는 당당했고 굽힐줄 모르는 대나무 같았다. 작업실은 그에게 만물의 진리가 담겨있는 우주였고 캔버스와 페인트는 그 진리를 담는 도구였다. 그렇게 완성된 그의 그림에는 세상의 진리가 담겨있어 그것을 마주하는 사람들은 마치 '예배당'에 온 것과 같은 숭고함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마크 로스코는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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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로 색면추상을 그리는 로스코와 그의 조수 켄-


하지만, 마크 로스코의 믿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사람들은 마크 로크소가 생각했던 것 만큼 그의 작품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의 작품보다 받아들이기 쉽고 대중적인 '팝아트'에 열광했다. 마크 로스코가 그토록 두려워 하던 '블랙이 레드를 집어삼키는'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그는 직감했을 것이다. 마크 로스코가 치밀어오르는 분노와 모욕감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을 때, 그의 조수 '켄'이 그의 정곡을 찌른다.

마크 로스코가 큐비즘과 초현실주의를 짓밟고 추상표현주의로 유명 예술가의 반열에 올라선 것과 같이 팝아트 역시 그렇다는 것. 마크 로스코는 머리로는 켄의 날카로운 의견을 인정하지만 예술의 본질을 내팽개치고 장식품으로 전락해가는 팝아트에 대해 여전히 구역질을 느끼는 듯 했다.

 

 시간의 연속선상 위에서 세대는 진화하고 또 발전한다. 아무리 뛰어난 문명을 가진 세대라고 해도 결국은 시간이 흐르게 되면 그 자리를 다음 세대에게 내어주게 되어있다. 마크 로스코 역시 연속적으로 존재하는 서양미술사 위에 존재하던 한 세대일 뿐이었다. 그가 옳다고 믿어왔던 예술관도 다음 세대에겐 그저 관심없는 하나의 사조에 불과할 것이다. 또한, 그가 죽음으로 치부하며 두려워하던 '블랙'도 다음 세대에겐 새로운 시작을 의미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마크 로스코의 말대로 '아들은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살해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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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속으로 깊이 침잠하는 로스코-


 사람들은 예술작품을 보며 즐거워했다. 예술작품이 아닌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그들은 즐거움을 느꼈다. 사람들과의 모임,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시덥지않은 농담, TV프로그램, 잠시 후 먹게될 저녁식사까지도. 하지만, 마크 로스코는 여전히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인간의 본질은 비극이야.' 감성으로 대표되는 디오니소스적 특질과 이성으로 대표되는 아폴론적 특질, 이 두 특질이 만나 인간의 본질을 이룬다. 이성과 감성, 두 가지가 만나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인간은 완전한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성과 감성은 전혀 균형을 이룰 수 없다. 이것이 마크 로스코가 말하는 인간이 비극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자신의 작품을 걸 포시즌 레스토랑에 다녀온 마크 로스코는 지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교만과 허영으로 가득찬 그 공간에 자신의 작품이 걸릴 것이라는 생각에 몸서리를 친다. 여기서 마크 로스코의 다른 의미에서의 비극이 드러나게 된다. 자신의 작품을 알아봐 줄 수 있는 '충분한' 교양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 결국, 로스코는 포시즌 레스토랑에 자신의 벽화를 거는 시도를 포기한다. 그리고 그는 그의 조수 '켄'을 해고함으로써 더욱 철저히 그의 우주 속에 침잠한다. 그는 블랙이 레드를 집어삼키는 상황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얼마 남지 않은 '레드'에 열중하고 집착했다. 마크 로스코 역시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비극을 피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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