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미쳤어? 약간.
비둘기를 튀겨 맛있는 치킨이라고 먹는다. 달팽이를 삶아 골뱅이무침을 만든다. 수백 년을 산 뱀파이어는 화투판에서 전 재산을 날리고, 인터넷 밈으로까지 살아남은 빨간 도끼의 주인공은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이다. 누군가 황당하다는 듯 묻는다. "당신 미쳤어?" 돌아오는 대답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약간."
『안녕, 프란체스카』는 피를 먹는 뱀파이어보다 상식을 먼저 잡아먹는 드라마다. 더 이상한 것은 이쯤 되면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화면 속 사람들도, 화면 밖에서 낄낄대고 있는 우리도. 정신을 차리고 보면 말도 안 되는 세계가 어느새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 되어 있다.
2005년 방영된 MBC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는 멸종 위기를 피해 루마니아에서 실수로 한국으로 잘못 건너온 뱀파이어 가족의 생존기를 그린다. 절대적 카리스마를 지닌 “깜장드레스” 프란체스카를 중심으로 한 뱀파이어 가족과, 우연히 이들과 엮인 인간 두일과 주변 인물들이 뒤섞이며 이야기가 흘러간다. 뱀파이어들이 월세를 걱정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사기를 당하고, 사랑하고, 싸우는 설정 자체가 이 시트콤의 출발점이다. 소녀의 외모를 한 왕고모 소피아, 평생 검은 드레스만 입는 프란체스카, 명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엘리자베스, 그리고 기근 시절 닭피로 연명하다 세상에서 가장 순진한 뱀파이어가 되버린 켠.
모든 것이 비정상인데, 그 누구도 그것을 비정상이라 여기지 않는 세계. 『안녕, 프란체스카』는 그 태연함으로 시청자를 웃게 만든다.

좌측 순서대로 켠, 프란체스카, 소피아, 두일이, 엘리자베스
이게 무슨 퐝당한 시츄에이션
『안녕, 프란체스카』는 언제나 평범하게 웃기지 않는다. 부동산 사기를 당해 집을 잃은 이들은 봉고차에 국화꽃을 달아 마치 운구차처럼 꾸민 채 길 위를 떠돈다. 생계는 막막한데 연출만큼은 기괴하게 장엄하다. 노숙조차 비장함 대신 블랙코미디가 되는 세계. 웃음은 언제나 한 박자 앞서고, 슬픔은 늘 그 뒤를 따라온다.

비둘기(닭둘기)를 맛있게 먹고 난 뒤 사실을 알고 절규하는 두일이

노숙을 하면서도 화투에 몰두하는 프란체스카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그렇게 웃던 우리가, 어느 순간부터는 이 이상한 가족을 걱정하기 시작한다.
우스꽝스러운 나날 사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다정함이 불쑥 끼어든다. 우연히 이 가족과 엮였던 두일은 어느새 가장 먼저 프란체스카의 슬픔을 알아채는 사람이 된다. 오래전 잃어버린 아이를 떠올리며 밤새 멍하니 슬픔에 잠긴 프란체스카에게 두일은 별다른 위로의 말 대신 귤을 까서 한 조각씩 입에 넣어준다. 프란체스카 역시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받아먹는다. 마음은 좀처럼 말로 고백되지 않는다. 함께 굶고, 함께 도망치고, 누군가의 입에 귤을 넣어주는 사소한 행동 속에서 슬며시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결국 두일이 세상을 떠나고 이들이 작별해야 하는 순간, 그리고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열대어로 매운탕을 끓여 먹고 삼겹살에는 마늘을 빼놓지 않는 이 기묘한 뱀파이어 무리는 어느새 가족이 되어 있다.
당신의 고단한 이마에 입을 맞추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뱀파이어들이지만, 우리는 단 한 번도 그들을 가족이 아닌 무엇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상하게도 그 순서가 바뀐다. 우리는 함께 살아온 시간보다 혈연인지, 혼인했는지, 법적으로 어떤 관계인지부터 확인한다. 비혼과 동거, 입양가족, 동성 부부, 돌봄 공동체처럼 가족의 모습은 이미 오래전부터 다양해졌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우리의 언어는 아직도 조금 느리다.
그래서 『안녕, 프란체스카』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의외로 낯설지 않다.
“두일아. 널 만나기 전 나, 아니 우리 가족들에겐 시간이라는 게 없었어. 우리에게 시간은 흐르는게 아니었어, 견디는 거였지. 널 만나면서 시간이라는 게 흐르기 시작했어. (중략) 넌 떠났어, 하지만 시간은 멈추지 않았어. 나와 우리 가족은 너의 추억으로 시간을 흐르게 할거야. 고마워, 두일아. 넌 너무 큰 것을 줬어.“
-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프란체스카가 두일에게

우리는 뱀파이어와 함께 흐르는 시간을 보내고, 그들을 가족이라 믿을 만큼의 상상력을 이미 가진 사람들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새로운 상상력이 아니라 그 상상력이 현실에서는 누구에게까지 닿을 수 있는지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일이다.
『안녕, 프란체스카』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바로 그 질문을 우리 앞에 남겨 둔다.
